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설 우리의 전략은 '평등'이다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2022년 처음 행성인 회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성소수자들이 왜 행진에 참여하느냐”고. 멋진 답을 내놔야 할 것 같았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성소수자 역시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기후위기의 책임과 영향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인간은 똑같이 지구에 산다’는 추상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소수자는 제도적 안전망 없이 살아왔고, 그 조건은 기후위기 앞에서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가져올 타격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예감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민영화는 취약한 삶에 더 많이 징수한다

냉난방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인과 저소득층, 재난 방송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거나 이동의 제약으로 대피하기 어려운 장애인, 반지하와 쪽방에서 지내는 사람들, 안전한 대피소에서 배제되기 쉬운 성소수자와 이주민. HIV/AIDS 감염인은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의료기관을 찾기 힘들고, 동성 커플은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돌보는 데 제약을 받는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에어컨 전기요금이나 병원비가 목숨을 위협하는 비용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차별과 불평등의 조건들은 기후위기 속에서 약자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불평등을 더욱 키우는 것이 바로 공공성이 약화된 현실이다.

의료, 교육, 주거, 돌봄, 에너지와 같은 삶의 기본 영역들이 점차 시장에 맡겨지고 있다. 돈이 있어야만 안전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공공성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기반이다. 공공성이 약해질수록 기후불평등은 깊어진다. 의료 공공성이 부족하면 폭염이나 감염병 상황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이 방치된다. 주거 공공성이 무너지면 안전한 집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홍수와 폭염은 삶을 위협하는 현실이 된다. 에너지와 교통이 시장 논리에 맡겨지면, 저소득층과 비수도권의 지역민들은 냉방과 난방, 이동권이 제한된다. 공공성이 약화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이들은 이미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조건에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이들의 고통은 사회 전체의 균형을 흔들고 불안을 키우며 불평등의 재난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불평등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공공성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성별, 장애, 연령, 성적지향, 출신국가, 병력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이는 곧 의료·교육·주거·에너지 같은 공공정책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해야 하는 기준이 된다.

윤석열 퇴진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기후위기에 맞서는 우리의 전략 또한 '평등'을 향해야

지난 5년 사이 한국 사회를 관통한 사건의 중심에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19 시기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차별과 혐오로 누군가를 배제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똑똑히 배웠다. 지난 겨울 윤석열 퇴진 광장은 어떤가.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극우 세력의 힘이 자라난 배경에도 혐오와 차별이 있었다. 이는 더이상 차별과 혐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차별금지법은 이 사회가 더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다. 평등은 공허한 권리 선언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조건인 것이다. 지금 이 법을 제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위기를 반복해서 더 심각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다.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에서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안전망도 크게 부족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기후정의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기후정의운동은 불평등과 안전의 문제이자,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지를 묻는 질문이다. 차별금지법은 기후의 문제를 내 삶의 조건과 연결된 문제로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평등을 보장하지 않고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말할 수 있는가? 공공성이 무너진 채로 어떻게 모두가 살아남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가? 차별금지법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광장을 잇는 무지개 다리,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나자!

다가오는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에서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으로 함께 걷는다. 지난 광장에서 울려 퍼진 평등과 민주주의의 외침이, 기후정의와 공공성을 잇는 새로운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평등은 기후정의를 위한 토대이며, 공공성을 회복하는 길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9월 27일의 행진은 그 길을 열어가는 시작이다.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과 함께 걷자. 광장에서 외친 평등이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지고, 더 넓은 삶의 영역으로 퍼져 나가도록,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평등의 광장을 잇자. 

2025년 6월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1만 인의 요구, 이재명 정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합시다’라는 피켓을 들고 정부에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덧붙이는 말

지오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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