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새, 사람 행진”과 함께 남태령을 넘자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더위입니다! 

33도가 넘으면 잠시만 쉬어요! 물을 충분히 마셔요! 이웃을 살펴요!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꾸가 절로 나오는, 달리 표현할 바 없는 당혹스런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현수막을 만난 건 행진 18일차(8월 29일) 천안역에서 성환역으로 향하던 길에서였다. 행진을 시작한 8월 12일만 해도 며칠 지나면 더위가 좀 수그러들겠거니 했다. 하지만 8월이 다 가도록 한낮 기온은 30도를 가뿐히 넘어갔고, 오후에 15km 내외의 행진을 마치고 나면 옷에는 진한 소금꽃이 피었다. 찬물로 씻고 선풍기 바람을 쐬어 봐도 달궈진 얼굴은 밤에도 쉽게 식지 않았다. 

기록적 더위가 걸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는 새, 사람 행진.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수라의 외침’ 담은 250km의 발걸음

그 더위를 안고 한달 동안(8월 12일~9월 11일) 전주에서 서울까지 250km를 걸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새, 사람 행진단>이다. <새, 사람 행진단>은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리는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의 1심 선고를 앞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라갯벌 보존과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가 필요한 이유를 알리며 그들과 함께 더 큰 목소리로 재판부에 취소판결을 촉구하기 위해 꾸려졌다. 

말 그대로 <새, 사람 행진단>은 사람과 새가 함께 하는 행진이다. 사람들은 수라갯벌에서 살고 있는 저어새, 황조롱이, 검은머리물떼새 등 여러 가지 새들의 모습을 본 딴 종이모자를 쓰고 행진한다. 머리 위에 예쁜 새가 앉아있는 모습은 신기하고도 사랑스러워서 행진에 온 사람은 누구든 기꺼이 새 집사를 자처한다. 알록달록한 새모자를 쓴 사람들이 “이러다 다 죽는다! 새, 사람 함께 살자”를 외치는 모습은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새, 사람 행진단>은 행진하는 모든 날에 ‘큰뒷부리도요의 날’, ‘퉁퉁마디의 날’, ‘양뿔사초의 날’처럼 수라갯벌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의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 뭇 생명을 기억하고 그들이 끝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수라의 외침’을 나눈다. 여기엔 전라북도와 군산에서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이 지역사회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과 새만금신공항이 왜 지어져서는 안 되는지의 이유가 조목조목 담겨 있다.

서해안 갯벌에서 쉬어가는 큰뒷부리도요가 새, 사람 행진단의 선두다. 새,사람행진단/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공. 

비옥한 갯벌은 마른 땅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세계 최대의 간척지”를 만들면 새만금 일대는 저절로 기회와 번영의 땅이 될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오랜 시간 바다를 막고 땅을 메우는 일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그들이 약속했던 ‘동북아 물류 허브’나 ‘최첨단 그린에너지 도시’ ‘친환경 첨단농업육성거점’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넓고 비옥한 바다와 갯벌을 마른 땅과 맞바꾸었지만 희망과 가능성의 땅이 되지 못하자 사람들은 떠나가고 어느새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작은 도시로 전락했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계획은 잼버리를 핑계로 등장했다. 잼버리가 끝난 후에야 개항을 할 수 있는데도 수천억 원의 사업 계획은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하루 만에 통과됐다. 국가 통치와 토건 자본의 논리를 빌려 지역을 수탈할 때 공항은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전북 시민사회는 공항의 수요, 입지, 규모의 한계로 인해 새만금신공항이 전북지역의 경제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지적해왔다. 이미 국내 15개 공항(11개는 적자)이 있는데도 또다시 10개 공항 신설을 운운하는 것은 지역 공항이 여전히 자본과 통치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뜻이다. 이 앞에서 기후재난의 시대에 항공기 이용을 줄여가자는 성찰과 재편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한편에서는 공항을 짓겠다고 수천 년 된 갯벌을 파괴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2025 탄소중립’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갯발 복원사업을 벌이는 모순적 행태는 바로 이 위에 있다.

철새를 내몰고 공항을, 전쟁을 초대할 수 없다

새만금신공항 부지의 조류충돌 위험도는 제주항공여객기 참사가 있었던 무안공항보다 최소 600배 이상 높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공항을 지을 수 없는 땅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국제적 평가 기준을 임의로 축소·변경하여 안전하다고 발표하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시민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드넓은 갯벌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새들이 서식지를 잃고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그런데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고 내놓은 대책이 장구한 시간 동안 하늘과 땅을 경계 없이 무리지어 날고 번식해왔던 새들에게 대체서식지를 제공하여 저절로 옮겨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후붕괴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절멸의 위기 앞에서도 자연의 질서와 생태적 연결성을 가벼이 여기는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불가역적 파괴와 희생을 상쇄하는 국익이 존재할 수 있는가? 새만금신공항에 활주로를 추가하여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 노릇을 하며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일에 어떠한 이익도 있을 수 없음은 명백하다.

공주를 향하는 새, 사람 행진단. 9월 5일 새, 사람 행진단이 남태령고개를 넘는다. 김성이 제공 

‘새, 사람’이 되어 함께 넘자 남태령, 함께 열자 새 세상

그래서 <새, 사람 행진단>은 행진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만금신공항뿐만 아니라, 다른 신공항 건설계획들도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기후재난을 가속하는 생태환경에 대한 침탈과 훼손을 멈춰 세우고, 인간과 자연이 깊이 연결된 존재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을 기후재난 시대에 새로운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도 외친다. 

<새, 사람 행진단>은 전주에서 출발해 군산 수라갯벌을 지나 충남 서천, 부여, 공주, 세종, 천안, 경기 평택, 오산을 거쳐 9월 2일 화성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 외침들을 9월 5일 남태령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외치고 싶다.

남태령은 지난 겨울 시민들이 내란세력의 폭거에 맞서 소외되고 외로웠던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켜냈지만, 아직도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함께 개발과 착취의 시대와 결별하고 생명과 공존의 시대로 가야 하는 여정이 남아 있다. 그 길을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9월 5일 남태령에서 만나자. 모두 함께 새사람이 되어 남태령을 함께 넘자. 혹독한 기후위기의 시대,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민주주의를 완성할 새 세상을 함께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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