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차 유엔 총회 고위급 회기가 오는 9월 23일(현지 시각 기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막한다. 이번 회기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 문제다. 프랑스와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 정상들도 이번 회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에 공모하는 미국의 입장과 선을 긋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도 이번 회기에 참여하면서 국제 다자 외교 무대에 전면에 나선다. 이 대통령은 개막일인 23일 기조연설을 하고, 다음날 24일에는 ‘인공지능과 국제 평화·안보’를 주제로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 안보리’) 공개 토의를 직접 주재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9월 한 달간 유엔 안보리 의장국 역할을 맡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는 이재명 정부가 유엔 안보리 의장국의 권한과 책임에 걸맞은 역할을 다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한 공모와 동조를 중단”하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적극적 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팔레스타인 평화에 앞장서라!". 진보 3당과 노동사회단체 기자회견 현장. 노동당 제공
지난 21대 대선에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를 구성했던 진보3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노동사회단체(노동자가 여는 평등의길, 노동·정치·사람,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 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들은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팔레스타인 평화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탄압은 집단학살이며, 이스라엘은 전쟁범죄국”이라 선언하고, “매일 최악의 학살극으로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인륜을 저버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폭주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환기된 가자지구의 현실은 참혹하다. “지난 2년간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해 약 6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80% 이상이 민간인이라는 분석이 존재”하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병원의 환자 중 3분의 1이 15세 미만 아동”이라고 한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이처럼 참혹한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미국은 신탁통치 계획에 여념이 없다”고 지적하고,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땅에 해변 리조트와 전기차 공장,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면서, 제국주의적 팽창 의도를 조금도 숨기지 않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 의장국을 맡게 된 대한민국 정부에 “그 권한과 명예에 맞는 책임을 다해, 가자지구의 평화와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위한 외교적 조치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문명국가이자 평화세력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피해 가면서 의장국이라는 명예만 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즉각 중단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과 집단학살을 통해 이윤을 거두는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한국과 이스라엘이 맺은 FTA 협약 파기 △이스라엘 대사 추방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 해소를 위한 신속하고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 동참을 요구했다.
"유엔 안보리 의장국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끝내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 갈무리
앞선 17일 오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종식을 위한 한국 정부의 책임있는 역할 이행을 촉구했다.
긴급행동은 “이스라엘은 그 어떤 휴전협상도 관심이 없으며, 가자지구에서의 폭격을 멈출 생각이 없다”면서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는 팔레스타인인의 절멸”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집단학살에 동조하는 국제사회의 책임도 강조했다. 긴급행동은 “6만 4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들은 이스라엘에 면책권을 부여하며, 무기 지원 등을 통해 이스라엘 전쟁범죄에 공모해 왔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지지 아래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더 노골적이고, 잔혹하게, 가속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자지구가 불타고, 가자지구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병원이 폭격당하고, 언론인, 구호대원, 의료인들이 표적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을 타깃으로 한 총성에 1천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당해도 ‘하마스 궤멸’이라는 명분 앞에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면서 “지난 700여 일 동안 우리는 인간성이 완전히 말살된 세계를 목도했다”고 참담한 현실을 환기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이같은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도 짚었다. 긴급행동은 “한국 정부 역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침묵하고, 이스라엘과 군사협력, 무기 거래를 지속하며 전쟁범죄에 공모해 왔다”면서 “지금, 즉시 집단학살을 끝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전 세계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즉각적이며 영구적인 휴전, 가자지구의 주민에 대한 보호, 가자 북부를 포함한 가자지구 전역에 대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침묵을 끝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종식을 위해” 적극적 노력에 나설 것을 당부하고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할 것 △이스라엘이 기아학살을 종식하고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가자지구 봉쇄 해제 요구할 것 △이스라엘에 포괄적인 무기 금수조치 시행 △대 이스라엘 독자 제재를 부과할 것 △‘헤이그 그룹’ 가입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을 이행 과제로 제시했다.
긴급행동은 “전 세계의 침묵 속에서 64,656개의 우주가 사라졌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한국 정부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묵인, 용인, 공모하는 것을 지켜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이 종식되는 그날까지 존재로서 저항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과 끝까지 연대하며 함께할 것”이라 결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