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지난 여름은 잔인했다
36도. 37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지난 여름 어느 날 발달장애청년 정호 씨는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얼굴은 빨갛고 손을 자꾸 흔들었다.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아 정호 씨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분명히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다고만 했다. 그늘에 가서 쉬자고 하여도 일행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인지 시선을 피했다. 정호 씨는 이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늘로 옮기고 물을 마시게 하고 눕혔다. 열사병인 걸까. 119를 불렀다. 정호 씨는 자기 몸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의료진과 소통하기 위해 정호 씨를 잘 아는 동료가 따라나섰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자기 몸의 상태가 어떤지 설명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아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괜찮으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러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괴로워하는데 왜 그러는지, 언제부터 그런 건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병원에 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발달장애인은 병원 진료도, 치료도, 검진도 쉽지 않고,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예 병원 문앞에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팔에 깊은 상처를 입은 발달장애인이 27곳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중증 발달장애인일수록 신체적 위기 상황에 자주 노출될 수 있기에 더 많은 지원과 조력이 필요하다. 진료와 치료 과정의 불안으로 치료 협조가 잘 안되거나 치료를 기다리다 병세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프면 제때 치료받고 돌봄을 받는 것은 기본권이자 생존권이다.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함이 기후위기라는 전 세계적 문제와 교차하며 더욱 복합적이고 중첩되어 장애인의 삶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적응이 필요한 새로운 여름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주영 씨는 이번 여름 흐르는 땀과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살이 헐고 땀띠가 나고 욕창이 생겼다. 휠체어 위에 욕창을 예방하는 방석을 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영 씨는 침대에 누우면 자세를 바꿀 수 없다. 엎드려 잘 수도 없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야간에는 체위를 변경해줄 활동지원사가 없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열대야로 인해 아침이면 침대 시트와 매트리스가 물에 담궜다 뺀 것마냥 온통 젖었다. 이러니 등에 욕창이 생길 수밖에. 아침마다 활동지원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주영 씨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몸을 닦는 것이다.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만큼 활동지원사의 노동강도 역시 높아졌다.
더위로 땀을 비오듯 흘리는 것도, 스스로 자세를 바꿀 수 없는 것도, 주영 씨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주영 씨는 활동지원사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잘 맞는 활동지원사와 매칭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까지 호흡을 맞춰온 활동지원사가 고된 노동으로 자신의 활동지원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커졌다.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더위를 식혀보려 하지만,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서인지 하체는 이내 차갑고 파랗게 변했고, 다리는 코끼리처럼 퉁퉁 부었다. 상체는 열이 오르고 비오듯 땀이 났다. 주영 씨는 자기 몸의 상태와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적확한 말을 찾기 위해 항상 허둥댄다.
집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외출하는 것도 주영 씨에게는 힘든 일이다. 어느 곳은 에어컨이 너무 춥고, 어느 곳은 너무 덥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의 상태가 변한다. 주영 씨는 자신의 몸이 왜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변화하는지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휠체어와 엉덩이 사이로 통풍이 되지 않아 옷이 땀으로 젖고 욕창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주영 씨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 필사적으로 젖은 몸을 닦고 약을 바른다. 욕창이 커지면 길어지는 여름을 더는 견딜 수 없으니까.
지하철의 휠체어석은 냉방으로 유난히 추웠다. 주영 씨는 휠체어석이 없는 칸을 이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영 씨에게 ‘장애인석은 여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장애인석에만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햇볕이 강한 날이면 빛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지열 때문인지 전동휠체어도 과열되어서 경고등이 켜지고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전동휠체어가 멈췄다. 휠체어의 무게는 약 200kg. 비장애 성인남성 3-4명이 함께 밀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주영 씨는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전동을 수동으로 전환하고 그늘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늘이라지만 푹푹 찌는 폭염 속에 주영 씨는 휠체어가 작동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물을 사서 마실 수 없었다. 가까운 곳에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편의점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늘에서 쉬고 나니 휠체어가 작동되었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주영 씨는 너무 뜨거운 날의 외출을 겁내고 있다.
올해 2월 12일, 서울 지하철 안국역 3호선 승강장, '평등으로 가는 지하철' 다이인(Die-in) 행동 현장. 참세상
기후 재난을 맞는 장애인에 대한 공공의 대책은 어디에?
올해도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훨씬 잔인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매 순간 위협받는다.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와 특성, 환경과 조건에 따라, 날씨에 대한 영향이 다르고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에게 닥쳐온 기후위기 재난에 대한 대책은 없다. 2022년 반지하에서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폭탄처럼 쏟아지는 폭우로 사망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 요구했지만, 반지하 폭우 참사 3주기가 지나도록 정부는 말이 없다.
기후로 인한 재난 상황이 닥쳐왔을 때,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전달과 지체장애인에 대한 이동권,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 등 일상에서부터 준비되는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사람을 잃었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가 있다면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먹고 자라 재난에 가장 취약한 이들의 생을 가장 먼저 흔든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 속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욕창처럼 피어난다.
지구 행성에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연대의 힘이 가장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시민으로 명명되지 못했던 더 많은 사람들이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존중되고 지구정의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분명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고리가 튼튼하고 강해질 때 지구온난화에 대응력을 키워낼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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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영희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