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외주화한 한전KPS, 법의 심판 받았다"... 고 김충현의 동료들 "원청은 즉각 직접고용 이행해야"

서울중앙지법, 한전KPS 불법파견 인정 판결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어온 불법파견·간접고용의 구조적 부당함을 드러낸 역사적 판단입니다. 오늘의 판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불법파견 없는 사회, 차별 없는 일터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입장문 중에서

한전KPS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22년 6월 소를 제기한 이후, 3년 3개월여 만에 '투쟁'으로 얻은 결과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소송 판결 입장발표 기자회견".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정회일)는 28일, 한전KPS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24명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은 피고와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피고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파견법이 정한 파견 근로에 해당하며 이에 따라 피고가 직접 고용 의무를 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24명의 노동자들은, 지난 6월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충현 씨의 동료들로, 고인이 그랬듯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위탁받은 정비 업무를 재하청받은 소규모 하도급업체인 한국파워오엔앰과 삼신에 소속된 2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판결 직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죽음을 외주화해온 공기업 한전KPS의 구조적 범죄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서 “이번 판결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과 같은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에 사회가 응답한 결과”이고, “김충현의 죽음 이후, 90일 가까이 길 위에서 농성을 이어오며 더위와 폭우를 견뎌낸 노동자들의 투쟁이 만들어낸 결실이자, 더 큰 싸움의 시작”이라 짚었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소송 판결 입장발표 기자회견". 대책위 제공

대책위는 “한전KPS는 판결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면서 “항소는 책임 회피일 뿐이며, 노동자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강요하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지적하고, “불법파견이 확인된 이상, 항소하지 말고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지체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책임도 짚었다.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제26차 국무회의에서 “위험의 외주화,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을 환기하면서, “그 ‘위험의 외주화’야말로 김충현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며, 공공기관 한전KPS가 저지른 불법파견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 판결은 정부 스스로에게 되돌아가야 할 질문이자 질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청은 이윤만 취하고 책임은 피하며, 하청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구조는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산업 전반에도 똑같이 존재한다”며 “정부는 법원의 판결을 핑계 삼지 말고, 공공부문부터 불법파견과 외주화를 철폐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 대책위 제공

원고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도 이날 입장문을 발표해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어온 불법파견·간접고용의 구조적 부당함을 드러낸 역사적 판단”이라고 평했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름만 다른 비정규직 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왔다”면서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과 “그동안 차별로 인해 발생한 임금 손실과 고통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촉구했다.

또한 “이번 승소는 한전KPS 비정규직 조합원 몇 명의 승리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곳곳,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불법파견과 간접고용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망이며, 앞으로의 투쟁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이 판결을 발판으로,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불법파견 없는 사회, 차별 없는 일터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도급 공사계약서를 찢는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책위 제공

이날 노동자들은 도급 공사계약서를 찢는 퍼포먼스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오후 1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불법파견 및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직접고용 쟁취”를 내걸고 투쟁문화제를 이어갔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 이후 작업중지 상태로 노숙농성 등 여러 투쟁을 이어온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오는 9월 1일, 작업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들은 현장에서도 “죽음의 발전소”를 “일하다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안전한 일터로” 바꾸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국면에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일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함께하겠다”며 마음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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