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하청 노동자 고 김충현 씨의 휴대전화에서 고인이 작업 결과를 원청인 한전KPS 관리자에게 보고한 카카오톡 메시지와 사진이 발견됐다. 고인이 "작업 오더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을 임의로" 수행하다가 사망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한전KPS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자료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1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인의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한전KPS로부터 지시받은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내용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대책위는 "고 김충현 노동자는 한전KPS 직원으로부터 작업을 지시받아 작업 전 안전회의(TBM) 일지를 작성하고 지시받은 작업이 완료되면 카카오톡으로 보고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인이 사망사고 1시간 전, 한전KPS 관리자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대책위 제공
지난 2일 사고 발생 약 1시간 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고인은 한전KPS 관리자 김모 씨에게 작업한 공작물 사진을 보내면서 "다 됐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김모 씨는 "애썻네"라고 답했다. 해당 사진에 나온 작업물은 사고가 일어난 공작실의 작업대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공작물로, 고인은 해당 작업을 완료한 후 사고가 발생한 작업을 이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김모 씨는 한전KPS 기계1팀 소속 직원으로, 김충현 노동자가 사망 사고 당시 수행하려던 작업 내용이 기록된 작업 전 안전회의(TBM) 일지의 '공사감독'란에 서명한 사람과 같은 인물로 알려졌다.
고인이 사고 당일뿐만 아니라 수 차례, 일상적으로 김 모씨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작업 지시를 받고 작업 결과를 보고한 정황도 확인되었다.
5월 13일 오전에는 고인이 김모 씨에게 작업 결과물 사진과 함께 "홈을 다 가공하기엔 가공부가 넘 넓어질 듯해 흠이 좀 남아 있습니다"라고 결과를 보고하자 김모 씨가 "괜찮다"는 답을 남겼다. 5월 14일과 15일, 같은달 26일 등에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서 작업 결과를 보고하고 이를 김모 씨가 확인한 것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일상적으로 한전KPS 관리자에게 작업결과를 보고한 대화 내역. 대책위 제공
한전KPS와 고인이 소속되었던 한국파워O&M이 맺은 도급계약서는, 원청인 한전KPS가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 지시를 할 때에는 작업의뢰서를 발행해야 하고, 이에 대해 하청업체 현장대리인 혹은 관리자가 작업허가서를 발행한 후 작업자가 이를 수행하도록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부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와 구체적인 작업 내용 등이 작업 전에 작업자에게 공유되어야 하고, 작업 전 안전회의(TBM)를 통해 작업지시자와 작업자가 관련 위험 요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소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고 김충현 노동자가 일해온 현장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무시되고 원청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구두 통보 등을 통한 '긴급 지시'를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번 휴대전화 자료들을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와 같이 원청이 직접고용을 하지 않은 하청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 등 지휘·명령을 하는 것은 불법파견의 핵심 요소다.
자료가 공개된 12일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추모 발언에 나선 김영훈 한전KPS 지회장은 "(원청인 한전KPS가 고인에게) 작업을 직접 지시한 증거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작업을 지시하였는지까지 볼 수 있었다"면서 "이는 명백한 불법파견의 증거였다, 공기업이라는 곳이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고 불법파견을 통해 하청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라 짚었다.
김영훈 지회장은 "김충현 동지의 사망사고는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청이 다단계 하청을 만들며 책임을 전가하고 불법파견을 자행하여 일어난 구조적 타살"이라며 "반드시 이 구조적 살인의 진상을 밝혀내 공범들(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을 처벌하고 단죄할 것"이라 힘 주어 말했다.
대책위원회는 "중층적이고 위계적인 원·하청 구조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가 고 김용균 이후 다시 반복된 참사의 원인"이라며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의 책임을 묻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법적 처벌"과 함께 "발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촉구하고 있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은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의 권고 사항이기도 했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한편 고인이 소속되었던 한국파워O&M 소속 노동자 11명과 삼신 소속 노동자 13명은 현재 원청 한전KPS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 중으로, 오는 19일 최종 변론 기일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