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씨가 목숨을 잃은 지 2주가 지나고 있다.
고인의 동료인 발전 노동자들을 비롯해 노동계와 시민사회 각계에서는 대책위원회를 함께 구성해, 고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죽음의 발전소, 위험의 외주화"를 끝낼 수 있는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고인이 사망한 지난 2일 페이스북에 "6년 전 김용균 군이 세상을 떠난 그 현장에서,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났다"면서 "일하다 죽는 나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고인의 죽음이 또 하나의 경고로 끝나지 않도록, 저 이재명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썼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6일 추모문화제 이후 대통령실 앞으로 행진해 온 노동자들을 만나 직접 진상조사 요구안을 받고 "노동자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재명 정부”라며 “우리 정부에서만큼은 노동자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 열흘이 넘도록, 대통령실의 구체적 대책은 깜깜무소식이다. 정부의 실효적 대안 마련을 위한 첫 단추로 대책위가 요구한 대통령실과의 논의 테이블 구성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실 행정관과 면담 중인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활동가들. 참세상
이에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12일 오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위의 공식 출범과 이후 투쟁계획을 알리면서, 다시 한번 이재명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대책위 활동가들이 대통령실에 직접 요구안을 전달하려 나서자, 뒤늦게 대통령 노동비서관실 소속 이창주 행정관이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대책위 관계자들과 짧은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서 이 행정관은 대통령실의 논의 현황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고 6월 10일부터 고용노동부에서 착수한 기획감독과 경찰 수사 상황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고용노동부의 기획감독을 비롯해 고인의 죽음과 관련한 조사 절차 등이 유족의 위임을 받은 대책위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실효적 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대통령실과 대책위가 함께하는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이 행정관은 대책위의 요구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기획감독이나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대책위의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할 계획을 갖고, 부처 간 협의도 이어가면서 빠르게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대책위와 협의를 위한 논의 테이블 구성의 구체적 일정이나 형식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대책위는 "정부의 책임 있는 약속이 있어야 유족들도 정부를 믿고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서 "오는 13일 금요일까지 대책위와의 논의 테이블 구성에 대해 대통령실이 책임 있는 답변을 줄 것"을 당부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참세상
이날 앞선 기자회견에서 대책위 공동대표이자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대표를 맡고 있는 조현철 신부는 여는 발언으로 고 김충현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만이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유족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라며 대책위 결성 이유를 밝혔다.
조 신부는 “김용균 사망사고를 계기로 어렵게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도, 같은 사업장에서 6년 만에 또다시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일이 일어났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차별이 존재하는 한 이런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유족과 대책위와 긴밀히 소통하며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해야 하며, 그 모든 과정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시민들도 함께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민주노총 이미선 부위원장은 "고 김충현 노동자는 내란 수괴 윤석열 파면과 정권 교체를 위해 탄핵 광장에도 참여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들과 새 대통령에게 큰 숙제를 남기셨다"면서 그 숙제는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계속되는 노동자 죽음을 막아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과 안전한 일터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새 대통령은 역대 정권들처럼 노동자 무시하고 탄압하지 말라, 정권 초기 노동자 요구를 미루지 말고 빠르게 실현하라,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광장의 힘으로 규탄받을 것이다"라는 것이리라 짚고는 "다시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받고 사망하지 않도록 싸울 것"이라 결의를 밝혔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도 대책위의 공동대표로서 "(지난 6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접 요구안을 전달했으나 아직까지 (대통령실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면서 "그사이 서부발전은 하청사를 단속하며 근로감독을 철저히 대비하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당사자를 배제하고 조사에 나섰다. 모든 일을 신속하게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답만은 늦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길용 위원장은 "그래서 오늘 우리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계획을 발표한다"며 "△14일 이후 태안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거점을 옮겨 문제해결을 위한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될 때까지 무기한 투쟁에 돌입할 것 △발전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 쟁취를 위한 8월 파업에 적극 함께할 것 △진상조사 과정에서 대책위원회를 배제한 고용노동부를 향한 투쟁을 전개할 것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할 것"이라 밝혔다.
고인과 같은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이날 추모 발언에서 "돌아가신 김용균 청년노동자의 죽음에도 사측의 수많은 은폐와 훼손이 있었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에도 사측은 여전히 거짓을 일삼고 사건을 덮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면서 "사과는커녕 '금일 작업오더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으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라며 뻔뻔한 거짓말로 고인의 명예까지 훼손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김 지회장은 "사고현장에 고인이 남긴 기록과 증거들은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가 모두 공범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최근 경찰이 진행한 고인의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 결과도 원청이 직접 작업을 지시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김충현 동지의 사망사고는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청이 다단계 하청을 만들며 책임을 전가하고 불법파견을 자행하여 일어난 구조적 타살"이라 짚었다.
그는 또한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김충현의 죽음 앞에 눈 돌리지 말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유가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면서 "김충현 동지가 남긴 투쟁의 의지를 이어 모든 진실을 밝혀내고 우리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이 싸움 멈추지 않을 것"이라 힘 주어 말했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 규탄 기자회견. 대책위 제공
한편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에 모여, 사고 조사에서 유족과 대책위를 배제하는 고용노동부를 규탄하는 긴급 항의행동에 돌입했다.
대책위는 고인의 명예를 지킴과 동시에 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진상을 명확히 밝혀내,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책위의 조사 참여를 고용노동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대책위와의 면담 과정에서 이를 약속한 바 있으나, 고인의 사망 이후 11일째인 12일까지도 대책위를 사고 조사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다.
대책위는 “사고 조사에 대책위를 빼느니 마느니 얘기할 그 시간에, 김충현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험한 업무로 일하도록 내몬 구조들을 바꾸는 데 앞장서라"면서 이날 오후 3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사고 조사 과정에 대책위 참여를 실질화하기 위한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대책위는 같은 날 저녁 태안터미널 앞에서 진행하기로 한 추모문화제의 장소도 오후 5시 30분 천안지청 앞으로 변경했다.
오는 14일에는 오후 4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차 추모문화제를 개최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중단, 발전소 폐쇄 관련 총고용 보장"을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