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뉴욕시(New York City)는 여전히 궁극적인 도시로 남아 있다. 20세기 동안 뉴욕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적 삶을 정의했는데, 눈부신 고층 건물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놀라운 혼합, 자본주의적 부의 극단과 역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멕시코시티나 상하이 같은 광대한 메가시티들과 비교하면 뉴욕은 여전히 콤팩트한 도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건축과 기반시설의 역사적 층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뉴욕은 방치된 폐허, 오물, 쥐들의 창궐을 포함한 밀도 높은 현대성의 ‘클래식’한 경험을 제공한다. 뉴욕에 살면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 폭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인파의 동조로 진동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한 대학들과 미디어가 자리한 이 도시는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활력이 넘치고, 격렬한 논쟁과 진정한 놀라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다.
뉴욕 같은 도시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정말 뜻밖이었다. 중국 톈진에서 열린 여름 다보스 회의에서 리창 중국 총리가 연설하던 도중, 수백 명의 참석자들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는 뉴스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뉴욕, 즉 세계 자본주의의 본거지이자 달러 체제의 수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맘다니가 앤드루 쿠오모를 압도적으로 이긴 원인은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우리는 이 ‘이변’이 사실상 과잉결정된 결과였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나와 카메론 아바디는 이 사건 직후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녹음한 팟캐스트에서 관련 이슈들을 다루었다.
맘다니는 뛰어난 후보였다. 그는 정말 형편없는 민주당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웠다. 그는 지하철 문제부터 이스라엘-가자 분쟁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이고, 어떤 사람들은 급진적이라고 부르지만, 분명 상식적인 입장을 취했다. 뉴욕 유권자 다수와 그의 경쟁자들 중 일부—특히 브래드 랜더에게 찬사를 보낸다—는 맘다니의 이성과 상식에 반응할 만큼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뉴욕은 획일성을 기대하는 도시가 아니다. 맘다니는 임대료, 세금, 대중교통, 육아 등에 관한 진보적 공약들을 내세우며 이 도시가 겪고 있는 체감 가능한 감당 불가능성의 위기를 정면으로 다뤘다. 누군가는 맘다니의 승리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임대료 규제에 대한 의견이었는지, 아니면 가자지구에 대한 의견이었는지를 분석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맘다니가 새로운 연합을 결집했다는 사실이다. 그 연합의 중심은 뉴욕 기준으로 연소득 6만 달러에서 15만 달러 사이의 ‘중간소득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가 주로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들, 그리고 많은 경우 저소득층 구역에서도 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의 사회경제적 구조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정도에서도 전형적인 도시다. 미국 기준으로 보더라도 뉴욕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러한 불평등이 콤팩트한 도시 공간 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전국 정치의 혼란스러운 난장판과는 달리, 보다 '고전적인' 형태의 전장이 만들어진다.
뉴욕 같은 도시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고전적 긴장이 여전히 느껴진다. 한때 미국에서도 재분배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미국의 소득세 체계는 여전히 누진적이고, 기초적인 복지 구조도 존재하며, 공교육 시스템도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국가 차원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거의 일방통행이 되었다. 다수의 미국인이 부유층에게서 자원을 더 많이 걷어 공공서비스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통해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점점 낡아 보이는 개념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라는, 상류층을 위한 대규모 감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있다. 이는 매우 역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인구 850만 명이 밀집해 사는 뉴욕 같은 도시 안에서는 분배를 둘러싼 투쟁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뉴욕에서는 타협과 갈등이 실제로 체감된다. 미국의 다른 지역처럼 부유층, 중산층, 저소득층이 서로를 피하며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학교나 과밀하고 위험한 거리 같은 공공 인프라를 공유하면서, 주택 부족과 생필품 가격 상승 속에서 소비 여력과 계급의 차이를 둘러싼 경쟁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한편으로 뉴욕 지하철의 충격적인 상태는 공공정책의 수많은 실패를 몸소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부유한 도시가 어쩌다 이토록 낡고 악취 나는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었을까? 뉴욕시의 상류층이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민주주의를 더 두려워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재분배와 강력한 시장 규제, 민영화 반대에 찬성하는 다수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시의 조세 권한은 제한되어 있다. 맘다니는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몇 퍼센트의 세율을 추가하자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북쪽으로 140마일 떨어진, 훨씬 더 보수적인 주도(州都) 올버니(Albany)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조차 제기되지 못하게 하려는 반발은 거세게 일어날 것이고,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할 것이다.
이 반발은 뉴욕의 부유한 상류층 자본이 주도할 것이다. 투표 자료에 따르면, 연소득 15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 사이에서 맘다니에 대한 지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상위 계층을 보면, 약 2만 8천 명의 뉴욕 시민이 조정 총소득(AGI) 100만 달러 이상을 신고했으며, 이는 전체 신고자의 0.7%에 불과하지만, 전체 AGI의 35.6%, 뉴욕시 개인소득세(PIT)의 42.4%를 차지했다. 약 4,400명이 500만 달러 이상을 신고했고, 1,600명은 1,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이 그룹은 전체 소득신고의 0.04%에 불과했지만, AGI의 17.9%, 뉴욕시 소득세의 21.3%를 부담했다. 포브스(Forbes) 억만장자 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123명이 뉴욕에 거주 등록을 해두고 있다.
이 상류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넓은 불평등의 양상은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 같은 통계 지표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 점에서 뉴욕은 지니 계수 0.5547로, 미국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비교해도 뚜렷하게 불평등이 심한 도시로 드러난다.
비교를 위해 보자면, 뉴욕시의 지니 계수는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수치인 0.58과 비슷한 수준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지니 계수가 0.3에 불과하다.
뉴욕시는 미국에서 압도적으로 생활비가 가장 비싼 도시다.
출처: Coli
이 도시는 2010년대 이후 양극화가 국가적 수준에서는 다소 완화됐지만, 오히려 급격히 심화한 곳이다. 상위 3%에 해당하는 고소득자들의 소득은 급등했지만, 나머지 인구는 생계비 상승을 간신히 따라가는 수준의 증가만을 경험했다.
뉴욕에서 최고 소득자들이 종사하는 산업들은 상당한 임금 상승을 기록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 격차는 너무도 극단적이어서 순간적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출처: Center NYCAffairs
하지만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아벨(Abel)과 다이츠(Deitz)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격차의 확대는 뉴욕시와 북부 뉴저지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양극화의 패턴을 반영한 것이며, 이는 전국적 추세를 극단적으로 증폭시킨 결과다. 뉴욕시와 그 인접 지역 전역에서 고숙련 직종과 저숙련 직종은 모두 증가했지만, 중간 수준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출처: New York Fed
고숙련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은 전국 평균을 웃돈 반면, 뉴욕의 저숙련 노동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 결과 임금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했다. 1980년만 해도 뉴욕의 지니 계수는 약 0.4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3분의 1이나 더 높아졌다.
이처럼 극단적인 불평등이 콤팩트한 도시 공간에 압축되어 있으면,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거의 영웅적인 수준의 도시 운영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뉴욕시는 부유함만으로 눈에 띄는 도시가 아니다.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이 빈곤 속에 갇혀 있다.
그리고 뉴욕시의 빈곤은 단순한 경계선 수준이 아니다.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뉴욕시에서 빈곤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집단은 '극빈층(deep poverty)'이었는데, 이는 연방 빈곤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정의된다. 2022년 기준 연방 빈곤선은 1인 가구의 경우 14,880달러, 성인 2명과 어린이 2명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의 경우 29,678달러였다. 뉴욕시에서는 2022년 전체 빈곤 인구 150만 명 중 거의 52%에 해당하는 약 75만 명이 극빈 상태에 놓여 있었다.
빈곤은 도시 전체의 여러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브롱크스(Bronx) 자치구의 경우 인구가 140만 명에 달하지만, 중위소득은 45,517달러로, 4인 가족 기준 연방 빈곤선과 불편할 정도로 가까운 수준이다. 2022년 뉴욕시는 아동 빈곤율이 거의 25%에 달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출처: Parrott Center for NYC Affairs New School
뉴욕시는 여전히 수백만 명에게 엄청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구 대다수가 가진 자원과 치솟는 생활비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도시는 어떻게든 유지되고 있다. 뉴욕 시민들은 지혜롭고 회복력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버팀에는 대가가 따른다. 스트레스와 분노,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나 감당할 수 없고, 이렇게나 기능 불량하고, 이렇게나 허술할 수 있는가? 왜 이 도시는 분명히 될 수 있는 위대함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물론, 소수는 매우 잘 살고 있다. 그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흐름과, 특히 코로나 이후 나타난 최근의 흐름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압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대담하고 창의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정치—맘다니와 뉴욕의 좌파가 보여주는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 정부의 정당성을 되찾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의 성공은 미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희망의 신호다. 만약 기득권 세력이 그를 낙마시키고 기계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후보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특권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참패가 될 것이며, 그 파장은 뉴욕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출처] Chartbook 394 "A City we can afford": capitalism and democracy in New York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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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