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지켜달라"...고 김충현 씨 호소에도 "카톡으로 작업 지시・강요한 한전KPS"

“과장님 TBM(작업 전 안전회의)일지 싸인을 받아야 작업 가능합니다. 지나시는 김에 일지 싸인 좀 해주세요.”

“여기서 가공을 진행하신다면 소장님(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O&M 현장 소장)을 통해 업무절차에 따라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좀 벅찹니다. 책임지는 업무범위도 넓은 데다, 대응해주는 사람도 없다 보니 저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 며칠 잠도 못 자고 맘 고생이 많았습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7일 오후, 고인이 한전KPS 관리자와 수년간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한전KPS가 공식적인 작업 절차를 무시하고, 고인에게 구두나 카카오톡을 통한 직접 지시를 반복해 온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서부발전의 1차 하청이자, 고인이 소속된 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O&M의 원청인 한전KPS에, 사망사고 당시 작업을 비롯한 고인의 업무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작업지휘 책임'이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정식 절차 무시하고 카톡으로 직접 지시・작업 강요 

한전KPS가 자체 규정으로 정한 ‘공작기계 정비절차’에 따르면, 공작기계 작업은 원칙적으로 ‘작업지시서 발행 → TBM(작업 전 안전회의) 진행 → 작업계획 승인 후 작업’ 순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김충현 노동자가 일해온 현장에서는 이 절차가 사실상 무력화돼 있었다. 동료들의 증언과 고인의 메시지에서는 한전KPS가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두나 카카오톡을 통해 직접 작업을 지시해 왔다는 정황이 수차례 확인된다. 

예컨대 지난 2017년 11월, 한전KPS 관리자는 아래와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고인에게 ' '긴급 스페이서 가공 작업'을 직접 지시했다.

“긴급 스페이서 제작요망. 내경 13.5mm × 외경 28mm × 두께 13.5mm (재질무관). 수량 4개.”

“정정 내경 16.0mm × 외경 28mm × 두께 13.5mm. 내경 치수 정정함.”

고인은 해당 작업을 직접 진행했을 때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을 우려해 '외주업체 가공'을 제안했지만, 한전KPS 관리자는 거듭 김충현 노동자를 압박하면서 작업을 요구했다. 

“무진이 주말 가공이 불가능해서 피치 못하게 진행입니다. 뭐 걱정하시는지도 알고 저도 깔끔하게 외주 주고 싶은데 상황이 아무리 알아봐도 해결이 안돼서요.”

“저희도 외주가공 하고 싶은데 너무 긴급하고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정지기간에 진행해야 해서 사정이 좀 많습니다…”

이에 고인은 '이례적'으로 “(고인이 소속된 한국파워O&M의)현장 소장을 통해 업무절차에 따라 진행해달라”면서 "작업지시서를 소장에게 드리며 업무 협조를 지시하시면 될 것"이라 요청했지만, 한전KPS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책위는 이에 대해 "외주 의뢰가 필요한 작업도 '빨리빨리 관행'에 따라 고인에게 강요된 것"이라 지적했다. 

한전KPS가 고인에게 직접 작업을 지시・강요한 카톡 메시지. 대책위 제공

한전KPS소속 한 정규직 노동자는 대책위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작업의뢰서 작성해 직접 의뢰하는 일이 많았다”며, “보통 처음부터 제작하지는 않고, 제품을 구매하고 깎거나 해야 할 때, 혹은 임시로 작업할 때가 잦았는데, 아마 기계 쪽은 의뢰할 일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고인의 업무를 이전에 맡았던 한 동료 노동자도 이러한 절차 무시가 일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작업의뢰서 가져오는 게) 1년에 서너 번? 5% 안 되지, 안 돼요. 절차대로 진행되는 건 1% 정도만입니다.”

“급하게 올 때도 작업의뢰서는 1%도 안돼요. 쓰라고 해도 안 써요. 처음 입사해서 시스템도 모른 채 일을 하게 되는데, 인수인계해주는 사람도 없고, 신경 안 쓰고 해버린 거죠. 지금 생각하니 섬찟해요.”

"책임진다는 감독은 누구?"...다단계 하청 구조 속 파묻힌 정체 밝혀야

대책위는 한전KPS 측이 앞서 소개한 카카오톡 대화에서 절차를 준수하고 외주 업체에 의뢰하자는 고인의 요청에 대해 “그런 문제는 감독하고 다 협의했고, 제작이나 사용 중 문제에 대해선 감독이 책임지기로 했다"고 회신한 부분에도 주목한다. 

해당 대화에서 한전KPS 측이 말하는 ‘감독’이 “한국서부발전 소속 현장 감독인지, 혹은 한전KPS 또는 2차 하청의 감리 감독인지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핵심”으로 “만약 서부발전 감독과의 협의였다면, 이는 원청이 지시 체계에 실질적으로 개입된 구조적 강요였음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대책위는 "이러한 정황은, 위험하고 무리한 작업이 한국서부발전-한전KPS-한국파워O&M으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 속에서 관행처럼 반복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수사당국은 이 지점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감독’의 정체와 지시 권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작실 일상 운영도 한전KPS 관리 아래..."업무 범위 밖 작업에도 '비공식 인력'처럼 활용"

이 밖에도 한전KPS가 고인의 작업과 작업장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수년간의 카카오톡 대화 곳곳에서 확인됐다. 

고인의 작업·작업장에 대한 한전KPS의 실질적 지휘·감독 정황. 대책위 제공

지난해 1월 대화에서는 김충현 노동자는 정기예방정비공사(OH) 일정을 고려해 공작실에 필요한 공구와 자재를 사전에 챙기면서 한전KPS 관리자에게 보고했다. 해당 작업은 고인이 소속된 한국파워O&M의 계약상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임에도 한전KPS가 "고인을 원청의 '비공식 인력'처럼 활용한 정황"이다. 

또한 고인은 공작실 운영과 관련한 안전진단 대응 방안, 정리 기준 등도 한전KPS 직원에게 직접 문의했다. 이는 한국파워O&M의 현장소장이 맡아야 할 일이나, 고인은 원청의 직원을 일상적인 관리 책임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작실에서 사용할 청소용 빗자루조차 한전KPS에 구입 요청을 한 사실도 메시지에 남아 있었다. 공작실의 일상 운영과 구매, 관리가 모두 KPS의 책임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다.

"구조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좀 벅찹니다. 책임지는 업무범위도 넓은 데다, 대응해주는 사람도 없다 보니 저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 며칠 잠도 못 자고 맘 고생이 많았습니다.”

김충현 노동자는 조직 구조 상 '기계1팀'의 소속이었으나 실제로는 혼자 공작실 업무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일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인은 고민 끝에 선반과 용접을 별도의 팀으로 구성해달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고인의 이 마지막 기록을 환기하면서 "고 김충현 노동자는 생전 절차를 지키려 애썼고, 위험 앞에서 멈추고자 했으나 작업은 관행대로 밀어붙여졌고, 아무도 그의 말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며 "책임은 묻지 않으면서, 위험은 전가하는 구조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한국서부발전-한전KPS-한국파워O&M으로 이어진 책임 불명의 지시 체계를 수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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