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 캠페인이 한창이다.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는 이 법이 "에너지 전환의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며 적극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13년 결성된 TUED에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를 포함하여 48개국 120여 개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션 스위니는 TUED를 이끌면서 시장주의적 기후 대응 정책의 실패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에너지 전환의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다수의 연구를 발표한 국제 에너지 전환 운동의 대표적 전문가다.
션 스위니는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재생에너지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하면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시장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민간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public pathway)’를 짚었다.
션 스위니는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전환 정책이 붕괴"하는 가운데 "에너지를 공공의 소유로 되돌리려는 전 지구적 흐름"들 사이에 있다면서, 지난 30년간 거듭된 "부정의한 시장주의적 기후 정책들의 세계적 '전염' 현상"과 단절하고, 공공적 에너지 전환 정책의 국제적 '확산'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스위니는 그 선례가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운동)이 될 수 있다면서, 노동조합과 기후운동, 시민사회 사이의 강력한 연대에 바탕을 둔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국제사회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세상'은 지난 6월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션 스위니와 만나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선철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활동가가 통역을 맡아 도움을 주었다.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 참세상
지난 국제 심포지엄에서 “신자유주의적 민간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실패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요. 한국사회는 그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국제 사회의 '기후 정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는 ‘시장은 절대 틀린 일을 하지 않고, 정부는 절대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1990년경 시작된 유엔 기후 협상의 분위기에도 강하게 반영됐습니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 역시 “시장 메커니즘이 기후위기를 포함한 모든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었죠.
이후 30년간 이러한 시장주의적 기후 대응은 세 단계의 실패를 경험해 왔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실패한 것입니다. 화석연료가 점점 고갈되고 있으니, 시장이 알아서 대안을 찾을 거란 논리였는데, 이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죠.
2006년 무렵부터 실패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때는 “정부가 오염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탄소 가격제), 민간 재생에너지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접근이 나오죠. 즉, 민간 재생에너지와 '녹색 기술' 기업들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접근은 흔히 ‘채찍(탄소 가격)’과 ‘당근(보조금)’ 전략으로 불렸습니다. 이러한 전략도 시장이 '기후위기 대응'이 큰돈을 벌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오염자에게 가격을 매길 수 없다면, 국가가 나서 위험을 제거(de-risk)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합니다. 이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개념은 즉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적 민영화는 에너지 시장에 ‘위험’을 도입하면서 효율성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 위험을 국가가 제거해 민간 투자자들의 수익을 보장하려 한다는 겁니다.
북반구 국가들은 이를 위한 재정을 당장은 감당할 수 있다고는 해도, 남반구 국가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북반구 국가들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의 붕괴로 '기후 재정'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엉뚱하긴 하지만, 사실상 진실을 말한 셈이에요. 기후위기 대응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2019년경부터 정부들은 넷제로를 마치 유행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050년, 2060년까지 넷제로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선전용일 뿐 실질적 계획이나 정책은 아닙니다.
어떤 정부는 “우리는 여전히 넷제로에 헌신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거의 없고, 어떤 정부는 대놓고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정책이 붕괴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약속들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북반구 정부들이 돈을 아끼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그것을 ‘기후 재정’이라 부르려는 모델 자체가 실패하고 있는 겁니다. 민간 부문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후 보호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성장을 민간 부문이 주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죠. 저는 그것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만의 실수가 아닙니다. 국제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경험들을 살펴볼 때 실제로 민간 부문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그렇게 나서지도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한편, "시장주의적 기후대응의 실패"에 맞서 "에너지를 공공의 소유로 되돌리려는 세계적 흐름"에 대해서도 짚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시점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붕괴하는 국면입니다. 진보 진영, 기후운동, 노동운동 입장에서 보자면, 기후를 위한 정책이라고 간주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속 따라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그걸 따라가는 건 전략적으로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붕괴 중인 ‘녹색성장’ 모델을 뒷받침하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모델의 붕괴를 막을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붕괴하게 두어야 합니다. 다만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죠. 바로 그 지점에서 ‘공공에너지’가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기후 보호 2.0’을 원한다면, 공공재생에너지와 공공에너지 체제로의 새로운 정책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를 제어하려면, 전체 에너지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 모델을 거부하는 두 가지 형태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략적 대안이 부재한 '즉흥적(impromptu)' 거부에 가깝고 , 다른 하나는 보다 의식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거부입니다. 저는 멕시코의 사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2018년, 모레나(Morena)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예기치 못한 승리였죠. 멕시코는 50년 넘게 우파가 통치해 왔고, 콜롬비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좌파 정부들이 집권하면서, 에너지 안보와 전환 문제를 동시에 다루게 됐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오브라도르 대통령과 그 후계자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명확하게 말했어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는 여기서 끝내겠다.” 이 정도로 분명하게 말한 정부는 전 세계에서 거의 없습니다.
이 정부는 공기업을 재구성하고, 특히 미국산 가스 수입을 줄이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췄습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방치됐던 수력발전소를 손 봐서, 태양광이나 풍력에서보다도 더 많은 전력을 확보했죠.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송전·배전 인프라에도 투자했습니다.
스페인의 다국적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Iberdrola)의 자산을 재국유화했고, 이에 대해 보상한 후 이 회사는 신속히 멕시코에서 철수했습니다. 이 조치를 두고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은 WTO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ISDS)를 근거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멕시코에 경고장을 보냈지만, 실제 조치는 아직 없습니다. 현재는 멕시코가 가장 멀리 나아갔고, 콜롬비아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그러한 국제적 흐름에서 어떤 위치와 의미를 갖고 있나요.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과 기후운동, 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한국이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이 함께 협력하는 측면에서 어쩌면 가장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공재생에너지 입법 운동의 경우도 노동조합과 기후운동이 함께 좋은 연대체를 구성했고,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공동의 입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의된 것은 아니지만요. 비슷한 사례를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서 이 대화에 함께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쁩니다. 이곳의 운동이 무엇을 성취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앞에 아직도 큰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는 걸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5~10년 동안, 세계 어디서든 에너지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에너지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에너지와 이민 문제가 핵심입니다. 이민 문제는 더 '독성'이 강한 이슈일 수 있지만요.
그렇기에 한국의 운동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중요한 겁니다. 그건 하나의 정치적 방법론이에요. “우리가 어떤 전환을 원하는가? 그걸 실현하려면 법의 수준에서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접근 방식이죠. 그래서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법제화하려는 이번 시도는 굉장히 큰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법이 통과된다면,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비시장(non-market) 모델로 되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향후 몇 년 안에 발생할 정책적 공백을 고려할 때, 기후 운동과 노동조합은 더 체계적이고 정책 지향적인 접근, 즉 공공적 전환 경로에 더 강하게 결합해 나가야 할 겁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에너지 법제를 폐지하는 하나의 나라, 선례가 필요해요. 그럼 어떻게 되냐면, 저는 그걸 '정책의 전염(policy contagion)'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이 태양광 발전에 대한 고정가격매입제도(feed-in-tariff)를 도입했을 때, 많은 나라들이 “이건 효과 있다”며 따라 했고, 150개국이 비슷한 모델을 채택했어요. 하지만 곧 실패했고, 이후 경쟁입찰 모델로 넘어갔죠. 그런데 그 모델도 이제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어요. 다음 단계는 뭐가 될까요?
한국처럼 경제적 무게가 있는 나라가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을 폐기하고 공공전환의 길을 여는 법을 통과시킨다면,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하게 될 겁니다. 우리에겐 ‘좋은 선례가 전파되는 힘’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에너지 전환의 세계사를 바꿀 나라일 수 있어요.
TUED는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를 강조하면서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주장해 왔습니다.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운동도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한국 시민사회 내에서는 시장주의적 기후대응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국가나 공공기관을 통한 '공공 소유' 모델에 대한 우려를 갖는 이들이 많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경험을 비롯해 공공기관이 지역 공동체와 환경을 파괴해 온 사례들이 이어져 온 한국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소유의 문제와 함께 '민주적 통제'가 무척 중요할 텐데요. 어떻게 '공공 소유' 뿐만 아니라 국가와 공공기관에 대한 노동자·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혹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례가 있나요.
그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일 거예요. 이미 많은 공공 소유 형태가 존재합니다. 석유와 가스 분야의 공공기업들처럼요. ‘공공소유와 민주적 통제’라는 개념은 기후위기 이전부터 좌파 진영에서 형성된 구호였죠. 공공 소유는 중요하다고 인식됐지만, 민주적 통제는 그만큼 중시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는 다른 공공서비스와 달리, 의사결정이 어디에서 이뤄져야 하는지가 매우 모호합니다. 결정이 국가 수준에서 내려져야 할까요? 한 가지 인상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2006년경 에콰도르에서 코레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농촌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지 여부를 두고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코레아는 “우리에겐 수력발전 잠재력이 있고, 농촌 인구의 절반이 전기를 쓰지 못하고 있으니, 총 8기가와트 규모의 수력발전소 5개를 지어 농촌의 에너지 빈곤을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농촌 주민들, 특히 원주민 공동체 일부는 이 전력공급을 원하지 않았어요. 전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댐 건설로 인해 자신들의 조상 대대로 이어진 터전이 훼손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이건 큰 사회적 논쟁이 되었습니다. 코레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이건 민주주의다. 국민이 나를 뽑았고, 우리는 민주적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래도 이건 우리가 직접 영향을 받는 문제다. 대저택에 사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피해를 입는다”고 맞섰죠. 이 논쟁은 결국 명확한 해결 없이 정부 권력 쪽으로 귀결됐습니다. 결국 수력발전소는 지어졌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그 과정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요. 어쨌든 발전소는 완공됐고,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공 사례였지만, 원주민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공기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만족스러운 답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뉴딜 시기엔 ‘공공서비스위원회’ 같은 규제 기관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매년 공기업의 지출 내역과 전기요금 책정 근거 등을 보고받았죠. 하지만 1990년대 민영화 바람 속에서 민간자본이 위원들을 매수하면서, 이 제도의 명성은 크게 추락했습니다. 그래서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는 있지만, 운동 차원에서도 이 영역에 훨씬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기업은 부패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민간 기업도 부패했기 때문이죠. 공기업이 사람들을 강제로 억압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공 소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듯, 민간 기업의 지배가 해결책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에게 더 나은 모델이고, 무엇이 우리가 개입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모델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정치문화 속에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대중이 주요 경제사회적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문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통제'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체제 안과 밖에서 어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저는 자본주의 체제가 기후의 가장 근본적인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차단하기 위해 어떤 전략 산업들을 장악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만약 내일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좌파가 집권해 혁명정당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여전히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라는 문제와 마주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통제는 혁명적 프로젝트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물론 다른 산업들에 대한 통제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좌파, 특히 급진좌파의 많은 이들은 금융 시스템에 집중하는데, 제 생각엔 돈보다 에너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정부는 통화를 찍어낼 수 있죠. 물론 국제 경제 체제 안에서 그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게 그거였다면 진작 해결됐을 거예요. 핵심은 에너지입니다. 에너지에 대한 통제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프로젝트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논의는 대체로 행정적이거나 기술관료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위원회가 있고, 그들이 1년에 한 번 회의한다”는 식이죠. 그게 민주적 통제인가요? 아마도 아니겠죠. 자본주의 기업들도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들이 화석연료에서 철수하자는 결의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만약 대중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즉 화석연료에서 저탄소 에너지, 나아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사회적 지지가 있다면,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에너지 사용을 훨씬 더 세밀하게 관리하게 되면, 대중 참여의 문도 열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공공 소유와 통제가 수반될 때 가능하겠죠. 예를 들어, 슈퍼마켓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게 지역 주민들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들은 어떤 상품을 둘지, 냉장고가 필요한지, 조명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지역 주민들은 슈퍼마켓 운영에 의미 있는 참여를 할 수 있는 거죠. 그건 당연히 에너지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공공 유틸리티 회사가 지금처럼 전기를 많이 팔수록 수익을 내는 방식, 즉 상품화 모델로 운영되지 않게 되죠.
우리가 원하는 건, 전환 임무를 부여받은 공공 에너지 회사입니다. 예를 들어, 감시원이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지난 두 달 동안 전력 사용량이 10% 증가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과 진열대를 같이 살펴봅시다. 어디에서 전력을 더 쓰고 있죠?” “보세요. 이 에어컨은 지난 10년 동안 청소 한 번 안 해서 효율이 20%밖에 안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 절약이 훨씬 중요한 사안이 되고, 동시에 대중 참여의 공간도 열리게 됩니다. 시민 대표가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걸 상상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떠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가 통제권을 가져야 해요. 소유를 해야 하죠. 그리고 공공회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 수준을 저해하지 않고도 에너지 소비를 10% 줄였습니다.”
운송 부문에서도 같은 접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나 예시를 들어 볼게요. 지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가면 자동으로 요금을 내죠. 만약 대형 SUV를 몰고 주유소에 가면 센서가 그 차량의 연비가 리터당 5km밖에 안 된다는 걸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센서는 즉시 연료비를 두 배로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건 법으로 만들 수 있어요. 의회 수준의 민주적 통제만 있으면 됩니다.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에너지를 남용하는 것, 예를 들어 전용기 같은 걸 억제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미래의 세계에서는 자본주의적 축적과는 다른 우선순위를 기반으로, 대중 참여를 가능하게 할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 참세상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앞에는 아직도 큰 장애물이 여럿 놓여 있고,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풍부하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면서 낙관적인 전망을 밝혔습니다. 실제 우리의 운동은 어떤 조건에 놓여있고, 정말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 생각에는 기후 문제가 당장에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는 그런 사안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사람들, 특히 기후정의 운동가들에게는 최우선 과제일 수 있지만, 대중을 실제로 움직이는 이슈가 무엇이 될지는 달라요. 그게 기후일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크죠. 정치적 부패일 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듯이, 정세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 미국의 트럼프는 이란 사태로 인해 지지 기반을 잃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평화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서 찍었는데 말이죠.
어떤 이슈든 간에, 정부가 집권하고 나면 ‘이제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하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저는 콜롬비아에서 그걸 직접 봤어요. 그러고 나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관련 전문가가 누구인지 찾는 데만 몇 년이 걸려요. 1973년 칠레의 쿠데타를 생각해 보면, 그건 명백히 CIA가 개입한 잔혹한 쿠데타였죠. 그때 그들이 한 일은 뭐였을까요?
그들은 시카고대학교 경제학파, 이른바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를 불러와서 나라 전체의 경제를 재설계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시카고 보이즈’는 어디에 있죠? 만약 좌파가 집권한다면, 그들은 “한국의 이 연합체에 가서 우리 정책을 함께 설계하자”고 말해야 해요. 바로 그런 야망이 필요합니다. 제 낙관은 여기서 옵니다. 기후 문제 자체만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핵심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무엇이 그 계기가 될지는 몰라요. 외계에서 UFO가 올 수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건 투쟁이 있을 것이고, 승리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그게 핵심입니다.
제가 이 나이에 아직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도 우리가 준비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에요. 지금은 정치적으로 암울해 보일 수 있지만, 5년 뒤에 어떤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제 에너지는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을 활용해야 해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미국 속담으로 ‘오리들을 한 줄로 세워라(get your ducks in a row)’는 말이 있죠. 우리가 그 준비를 해놓는다면 빠르게 움직일 기회가 생길 수도 있어요. 트럼프 시절 헤리티지 재단이 한 것과 똑같아요. 그들은 트럼프의 연설문을 쓰고, 대본을 쓰죠. 트럼프는 자기가 뭘 말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들은 지난 50년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준비를 위해서 당신은 오랫동안 TUED 활동을 이끌어 왔습니다. 지난 경험들에서 무엇을 얻었고, 현재 집중하고 있는 의제와 이후의 전망들은 무엇인가요.
저는 대부분 긍정적인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들’이라는 이름은 긍정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에너지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열린 채로 남겨뒀기 때문이죠. 이 개념은 미국의 물 운동, 즉 ‘물 민주주의’에서 차용한 건데, 지금은 그 틀에 잘 맞지 않아요. 하지만 그 문제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고요.
정치적 방법론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면, 그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노동조합들을 모아야 했고, 그런 다음엔 모인 사람들 각자의 경험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그게 2012년 뉴욕이었고, 제가 그때 논문을 하나 썼어요. 지금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해서 다시 들여다보진 않지만요. 거기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저탄소 미래로의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후퇴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책 담론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아주 싸질 것이고, 에너지가 어디에나 존재하게 될 것이며, 모두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 에너지 전환의 흐름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 담론을 비판했어요. 하지만 소수였죠. 아무도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돈도 안 주었어요. 노동조합들만 빼고요.
처음 6년간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에 기반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환경운동과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이건 정치적 의지만의 문제다’라는 환상을 마치 마법의 음료처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 시기에 제가 “이건 야망과 정치적 의지의 문제야”라는 말을 들은 횟수는 셀 수 없어요. 하지만 이건 야망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정치경제의 역학을 바꾸는 문제이고, 결국 사회주의적 의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주의 전통으로부터,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고 특히 여성 문제에서는 부족하지만, 계획경제의 중요성과 공공재 접근의 중요성을 빌려왔습니다.
이것이 TUED 프로젝트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초기 몇 년은 완전히 ‘신화 깨기’였죠.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그 생각을 깨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지난 6년은 대안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2017년에 ‘공공적 경로(Public Pathway)’ 문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제가 뭘 말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논문 하나는 쓸 만큼은 알고 있었죠. 그리고 그게 당시 노동운동 내에서 나왔던 것들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기된 그 아름다운 질문들에 대해 프로그램적으로 훨씬 더 강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최종 해답이다. 나는 모세다. 여기에 십계명이 있다”는 식으로 답할 수는 없죠. 결국 그 돌판들도 길에서 잃어버렸잖아요. 그래서 이건 훨씬 유기적인 과정이고, 학습의 과정입니다.
이제 운동은 단순한 저항 모델을 넘어설 준비가 점점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운동의 지도자들조차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요.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자본주의 모델에 얽매여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이건, 에너지와 기후 문제에 뿌리내린 현대적 사회주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법은 노동, 보건, 교육 등 다른 경제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어요. 지난 30~40년간의 이데올로기적 붕괴를, 우리는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재건해야 합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거예요. 제 생애에는 아닐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는 올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우리는 모두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미래에 도달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어요.
그게 정말 핵심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그 승리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시도해야 해요. 어떤 다른 선택지가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정말 중요한 순간들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특히 남한은 새로운 접근법의 최전선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어딘가에서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공통된 사상과 명확한 정책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때가 오면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활동이 아주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계속 이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입법 캠페인 과정에서 혹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을 진지하게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지도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오늘의 상황일 뿐입니다. 3년 후의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다음 주에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1980년대의 경험 등 강력한 노동자 투쟁과 사회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죠. 그 용기는 전 세계에 영감을 줬습니다. 저에게도 한국의 사회운동의 역사적 경험들은 체 게바라보다도 훨씬 먼저 영감을 줬어요.
최근 탄핵 때나 다른 여러 순간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커다란 대중운동은 다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된 명확한 대안을 구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