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좀비 군대, 10년 동안 3.1조 달러 쓰고도 남은 게 없다

“10년 동안 유럽 방위에 3.1조 달러... 정말이라고그 자료 좀 보내줄 수 있나.”

내 최근 유럽 방위 정책에 관한 오피니언 칼럼 초안을 본 <파이낸셜타임스편집자들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정말로 사실일 수 있을까?

황제에게는 전차가 없다
유럽은 죽어가는 무장군을 개조하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 국경을 넘는 협력이 더 필요하다

유럽 군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수년 동안 유럽 군대는 근시안적인 정치인들로부터 예산을 삭감당해왔다고들 말한다현재의 위기에 대한 해법은 국내총생산(GDP)의 3.5퍼센트혹은 집계 방식에 따라서는 5퍼센트까지 국방 예산을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된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유럽이 자국 방어에 실제로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알게 되면그리고 그 막대한 지출에도 그다지 큰 성과를 얻지 못한 듯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소 충격을 받게 된다.

의심이 드는 사람들을 위해여기 SIPRI(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수치를 제시한다.

10년 동안 3.1조 달러다.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그 수치는 정말로 어마어마해진다. 1991년부터 2021년까지를 하나의 시기로 본다면—소련 해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미국을 제외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총 국방 지출은 2023년 기준 물가로 8.9조 달러에 달한다이는 유럽 군사 체계의 쇠퇴하는 제도들에 낭비된지구를 뒤흔들고 세계를 바꿀 만큼 막대한 액수다그런데도 그 체계는 지금 푸틴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물론이러한 규모의 금액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일부 타당하다.

국내총생산(GDP)과 마찬가지로국방 지출도 흐름이다안보는 매일매일매 순간 제공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비용도 치러져야 한다매해의 지출을 모두 더한 뒤 거대한 총액을 내세우고그 결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방식은 핵심을 놓친 것이다이는 마치 10년 치 장보기 비용을 다 더해놓고그 많은 음식이 어디 갔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우리는 그 음식을 먹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질문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유럽은 매일매일매순간 방어되고 있었다국방 지출은 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일정한 한계까지만 유효하다.

그렇다방어에는 서비스’ 성격이 있는 요소가 있어서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이는 군인과 국방 관련 인력에게 지급되는 급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그리고 유럽은 군인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국방 지출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어쩌면 이처럼 많은 유럽인이 군복을 입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1990년대 초냉전이 끝날 무렵미국을 제외한 나토 병력은 약 200만 명에 달했다수년간 감축을 거친 뒤 2000년 무렵에는 유럽연합(EU) 군대 규모가 130~140만 명 수준으로 안정되었고그 이후 지금까지 그 규모는 유지되고 있다이 병력은 하나의 통합된 전력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고, 29개의 각기 다른 군대로 분산되어 있다.

다음은 신뢰할 만한 출처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2023년 기준 EU 군사력 규모에 대한 ChatGPT의 편집본이다.

1800대에 이르는 그리스의 과도하게 많은 전차 보유량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그것만으로도 따로 하나의 글로 다룰 만한 주제다이 전차들은 상당 부분이 구식 장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기증받거나 헐값에 구매했거나보조금이 붙은 대출을 통해 도입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너무 작고 독립적인 전투 부대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이들은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리비아에 대한 잘못된 군사 공격이 있었고프랑스는 사헬 지역에 병력을 파병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규칙을 증명해 주는 예외일 뿐이다독일처럼 병력 규모가 거의 20만 명에 이르지만 실제로는 전투 여단 몇 개조차 제대로 파병하기 어려운 사례가 더 일반적이다.

유럽의 문제는 국방을 일종의 서비스로 보는 데 과도하게 지출하고—즉 급여임금연금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고—투자로서의 국방—즉 무기기타 장비인프라—에는 지나치게 적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인다이러한 판단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인력 규모와 국방 조달 예산을 비교해보면 강하게 뒷받침된다이 표에서 나타난 독일의 수치는 2022년 이후 지출이 급증한 덕분에 부풀려진 것이다그 이전 수년 동안의 독일 지출은 프랑스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신은 미국의 수치가 악명 높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비대화로 인해 부풀려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나 역시 그런 점을 과소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하지만 여러 증거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의 편향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미국의 국방 지출이 유럽의 유로화 지출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최신 3세대 전차나 자주곡사포의 가격을 살펴보라독일의 가격은 미국의 동급 장비에 비해 훨씬 더 높다.

출처브뤼겔(Bruegel)

그리고 브뤼겔 정책 싱크탱크 소속 후안 메히노-로페스(Juan Mejino-López)와 군트람 B. 볼프(Guntram B. Wolff)의 연구에 따르면이러한 높은 비용은 소규모 조달 규모와 관련이 있으며이러한 소규모 조달은 다시 유럽 군대의 분절성과 자국 중심 조달 선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 유럽 군대가 핵심 무기 체계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경향에 대한 한탄이 자주 들린다물론이러한 조달에는 지정학적·정치적 계산이 크게 작용한다예를 들어베를린이 미국과 이스라엘 미사일에 강하게 의존하는 방공체계를 구축하려는 구상에는 다양한 정치적 셈법이 얽혀 있다자료에서 나타나듯이독일은 유럽 이웃 국가들보다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도표 2: 특정 EU 국가들영국미국의 무기 수입 출처별 비중

하지만 전체 국방 예산 전반을 평균적으로 살펴보면유럽 군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국 무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외국산 무기를 충분히 수입하지 않는 데 있다유럽 군대는 지나치게 자급자족적이다문제는 독일이 미국산 무기를 너무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독일산 무기를 너무 많이 사는 데 있다.

방위 장비 지출 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주요 국가들

국가별 분절성은 방위 시장을 발칸화된 상태로 만든다이는 주요 무기 체계의 비효율적인 난립을 초래하며세계 산업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 방산업체들의 규모가 작다는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2016년에 발표된 유명한 자료에 따르면유럽은 미국보다 군사 예산이 절반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무기 체계를 여섯 배나 더 많이 유지하고 있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그 결과는 실질적인 전투 효율성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20여 개 군대에 걸쳐 고급 무기 체계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많은 주목을 받아온 유럽의 대표적 방위 산업 챔피언’ 라인메탈(Rheinmetall)은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방산 기업 순위에서 28위에 머물렀다.

이 정도 규모의 낭비는 단순한 부주의나 비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조 단위의 달러가 잘못 배분된다면거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이 경우정중하게 표현하자면 그 논리는 보수적이었다덜 정중하게 표현하자면그것은 좀비 군대들이었다유럽의 군사 체계는 위축되고 기능 장애를 겪었지만여전히 명맥을 유지했다유럽의 방산업체들은 무기를 공급하는 면에서 비효율적이었고통합이 고도로 진행된 미국 경쟁업체들과는 달리 세계 주요 방산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지 못했지만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었다통합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갈등을 회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국가와 정치인들은 실제로는 무력하고 역량이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지 않은 채주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허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전쟁의 전개는 이 수조 유로 규모의 교착 상태를 뒤흔들었다국가안보 관료 집단은 기꺼이 이 상황에 발맞춰 움직일 것이다런던과 파리에도 블롭(blob)”이 존재한다.

진보 정치가 요구해야 할 것은 이것보다 더 많다.

비상사태라는 명목 아래 막대한 자원이 익숙한 경로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우리는 유럽에 걸맞은 합리적인 안보 전략이 무엇인지 묻고 고민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한 가지는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긴축이라는 이름 아래 한 세대에 걸친 유럽 청년들의 미래가 파괴되었던 시기에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괴이할 정도로 낭비적이었던 기존 질서는 눈앞에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묵인되던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출처Chartbook 389: Europe's zombie armies. Or how to spend $3.1 trillion and have precious little to show for it.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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