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납을 금으로 변환한 대형 하드론 충돌기

ALICE 실험에서의 양성자 손실을 통한 원소 전이 관측

출처Sunny Young, Unsplash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꿈을 꾸었다오늘날 우리는 납과 금이 서로 다른 원소이며어떤 화학 반응으로도 하나를 다른 하나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우리에게 납 원자와 금 원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준다납 원자는 정확히 세 개의 양성자를 더 가지고 있다그렇다면 납 원자에서 양성자 세 개를 제거하면 금 원자를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어렵다.

스위스에 위치한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ALICE 실험에 참여한 물리학자들은 빅뱅 직후의 우주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납 원자핵을 극초고속으로 충돌시키는 실험 중에극소량의 금을 우연히 만들어냈다그 양은 아주 작아서총량이 약 29조분의 1그램에 불과하다.

양성자 훔치기

양성자는 원자핵 안에 있다그렇다면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양성자는 전기적 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전기장이 이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낼 수 있다원자핵을 전기장 안에 두면 양성자를 꺼낼 수 있다.

하지만 원자핵은 '강한 핵력'이라고 불리는 극히 강한 힘으로 결합해 있다이 힘은 작용 범위가 매우 짧고전기장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따라서 양성자를 빼내려면 낙뢰를 일으키는 대기 중의 전기장보다 약 백만 배는 더 강한 전기장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납 원자핵을 거의 빛의 속도로 서로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러한 강한 전기장을 만들어냈다.

아슬아슬한 스침의 마법

납 원자핵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강한 핵력이 작용해 완전히 파괴된다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핵이 비껴 지나가며이때는 전자기력만이 작용한다.

전기장의 세기는 전하를 띤 물체(양성자)로부터 멀어질수록 급격히 약해진다하지만 매우 짧은 거리에서는 아주 작은 전하도 매우 강한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납 원자핵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스치면 그 사이에 형성되는 전기장은 엄청나게 강하다이 강한 전기장은 원자핵을 진동시키며때때로 양성자를 몇 개 방출하게 만든다만약 양성자를 정확히 세 개 방출하면납 원자핵은 금 원자핵으로 바뀐다.

출처Alexander Grey, Unsplash

양성자 개수 세기

그렇다면 납을 금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ALICE 실험에서는 '제로도 칼로리미터(zero-degree calorimeters)'라는 특수 검출기를 사용해 납 원자핵에서 떨어져 나온 양성자의 수를 센다.

연구진은 금 원자핵 자체를 직접 관측할 수는 없지만이와 같은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존재를 파악한다.

ALICE 실험팀은 납 원자핵을 충돌시키는 동안 초당 약 8만 9천 개의 금 원자핵이 생성된다고 계산했다또한 납에서 양성자 한 개를 잃어 생성되는 탈륨(thallium)두 개를 잃어 생성되는 수은(mercury)도 관측했다.

귀찮은 연금술

납 원자핵이 양성자를 잃고 변형되면 더 이상 진공 빔 파이프 내에서 이상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이렇게 변형된 원자핵은 마이크로초 단위의 짧은 시간 내에 파이프 벽과 충돌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시간에 따라 입자 빔의 강도를 감소시킨다따라서 과학자들에게는 충돌기에서 금이 생성되는 현상이 오히려 불편한 문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연한 연금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실험 결과를 정확히 해석하고향후 더 대규모의 실험을 설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Physicists at the Large Hadron Collider turned lead into gold – by accident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울리크 에게데(Ulrik Egede)는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 대학교(Monash University) 물리학 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연금술 ALICE 대형 하드론 충돌기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