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는 18세기 말에 활동하며,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이는 어떤 경제에서든 생산된 재화의 총량에 비해 불충분한 수요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어떤 것이 생산되면, 그것의 생산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소득이 창출된다. 이 소득은 소비되거나 '저축'된다 (즉, 소비되지 않는다). 소비된 부분은 그만큼의 소비재 수요를 낳으며, '저축된' 부분은 자본재 구매에 직접 사용되거나, 자본재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즉, 투자하려는 이들)에게 대출 형식으로 제공된다. 이 저축과 투자는 이자율 조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일치하게 되므로, 그러한 조정 과정을 통해 전체적으로는 생산된 모든 재화가 결국 수요를 갖게 되며, 자본주의 경제는 최대 생산 상태, 즉 완전고용 상태에 있게 된다. 개별 시장에서는 수요-공급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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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의 법칙의 문제점은, 현시점에서 창출된 소득으로부터의 수요가 모두 현 시점에서 생산된 재화에 대한 수요라고 간주된다는 데 있다. 이것이 소비를 위한 것이든,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한 것이든(즉, 투자) 말이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현 시점에서 생산된 재화가 아닌 화폐의 형태로 보유하고 싶어 한다면 (예: 종이 화폐를 소득 중 일부로 보유하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생산된 재화의 공급이 그 자체와 동일한 수준의 수요를 창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C-M-C 회로에서, 만약 사람들이 M을 C로 다시 전환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C 즉 생산재의 과잉 생산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 부족 상황에서 생산재의 화폐 가격을 낮추는 조치는, 오히려 화폐를 부의 한 형태로 보유하려는 수요를 강화해, 과잉 생산 경향을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세이의 법칙을 전제로 한 주류 부르주아 경제학은, 사람들이 결코 화폐를 부의 한 형태로 보유하려 하지 않는다고 간주했다. 즉, 화폐는 단지 유통의 매개일 뿐, 결코 부 보유의 수단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 실증적으로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이의 법칙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설정하기에 어처구니없는 가정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세이의 법칙과 세이라는 경제학자 자신에 대해 매우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세이를 “진부한 세이 씨”라 불렀으며, 자본주의하에서 과잉 생산 위기의 가능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이 고리타분한 경제학 논쟁을 다시 꺼내는가? 이 논쟁은 단지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 케인스주의 혁명에 의해 부르주아 경제학 내부에서도 재정리된 사안이 아닌가? 당시에는 자본주의 경제가 생산재에 대한 총수요 부족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하는 것 자체가 극도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서구 자본주의를 볼셰비키 식 혁명으로부터 구하려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본주의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실패를 바로잡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혁명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용히 경제 담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며, 그 조용함 자체가 그것을 교묘하고도 강력한 영향력으로 만든다. 사실상,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전체는 세이의 법칙이 타당하다는 전제 위에 성립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를 위한 지적 기반, 그리고 그 이전까지 주류 전략이었던 디리지즘(계획·개입 경제 전략)을 폐기하기 위한 기반은 1970년대 초에 정비되었다.(인도에서 디리지즘은 흔히 ‘네루-마할라노비스 전략(Nehru-Mahalanobis Strategy)’으로 불린다.) 당시 제기된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이 네 동아시아 ‘호랑이’ 국가들이, 인도처럼 디리지스트 전략을 채택했던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도 세계은행이 ‘내향적 발전 전략(inward-looking strategy)’이라 비판한 디리지즘을 버리고 ‘수출 주도 성장(export-led growth)’을 채택한다면, 이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세계 전체의 총수요가 일정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면, 모든 국가의 총산출량은 그보다 빠르게 증가할 수 없다. 어떤 국가의 생산이 세계 수요 증가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국가의 생산 증가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저성장하던 국가들의 생산 증가가 가속화되려면, 기존의 고성장 국가들이 그만큼 덜 성장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출 주도 전략’만 채택하면 모든 국가가 ‘아시아 호랑이’들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유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는 총수요라는 제약을 무시하는 것이며, 결국 세이의 법칙을 전제로 삼는 것과 같다. 네루주의 전략을 폐기하라는 주장은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세이의 법칙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호출은 위장되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위장의 핵심은 바로 ‘소국 가정(small country assumption)’이었다. 소국은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자국 수출을 늘리더라도 다른 대국들에게 눈에 띄는 피해를 주지 않고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따라서, 소국에게는 ‘수요 제약이 없다’는 전제가 어느 정도는 말이 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모든 국가에 팔아먹었고, 각 국가가 ‘마치 소국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이것은 명백한 ‘총합 오류의 역설’이며, 세이의 법칙이 뒷문으로 다시 들어온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네 ‘호랑이 국가’들의 성공 이후,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더욱 눈부신 성장 성공 사례들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이들 성공 사례는 반드시 신자유주의 전략이나 ‘순수한 수출 주도 성장’의 결과는 아니었다. 이들이 수출에 성공한 것은 서구 자본이 서구 시장을 위한 생산 공장을 이들 국가에 설치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이들 성공의 이면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수도(capital)’가 아닌 ‘경제 전체’의 성장 둔화였다. 더구나,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은 이 경쟁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결국 그것은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었다.
세이의 법칙을 잘못 전제로 삼음으로써,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은 실질적으로 국가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을 서로 경쟁하게 했다. 예컨대, 인도가 더 많은 의류를 수출하려면 방글라데시의 몫을 빼앗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국가가 수출에 더 성공하려면,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고, 더 많은 노동 시간을 강요하고, 정당한 임금을 사기로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노동계급을 더 많이 착취해야만 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장, 심지어 빈곤을 낳는 성장이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논리 자체에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평등을 확대하는 성장은 결국 세계 경제 전체의 수요 증가율을 둔화시키게 되고, 이는 결국 ‘수출 주도 전략’ 자체의 위기를 초래했다. 팬데믹 이전에도, 세계 경제의 10년 단위 GDP 성장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시기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그 성장률은 더더욱 둔화했다.
이 전략은 윤리적으로도 혐오스러운 전략이다. 왜냐하면 피억압자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세계 경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제3세계 경제가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국가가 더 큰 지출을 통해 국내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을 확대하려면, 농민과 농업 노동자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농업 성장률을 높이고, 노동자의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전체 노동계급의 실질 생활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복지국가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지출은 자산과 상속에 대한 과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 통제, 특히 금융 자본의 유출에 대한 통제를 요구하며, 이는 곧 무역 통제가 필요하다. 요컨대, 이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폐기하고, 이미 막대한 해악을 초래한 세이의 법칙의 족쇄를 끊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The Havoc Caused by Say’s Law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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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