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과 농민들

경제학의 초급 교과서는 예외 없이 하나의 완전히 신화적인 개념즉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한다이 개념은 고전경제학자들과 칼 마르크스가 사용했던 자유경쟁(free competition)”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자유경쟁은 임금(동일한 기술에 대해)과 이윤율이 부문 간에 동일하다는 특징을 가진다그것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문 간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뿐이었고이는 독점 이전 시대에는 결코 비현실적인 가정이 아니었다반면에 완전경쟁은 여기에 더해 이윤이 0이라는 특징을 추가한다이는 오직 한 가지 상황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어떤 부문에서라도 양의 이윤이 발생하면 너무나 많은 자본가들이 그 부문으로 몰려들어 그 이윤이 사라지게 되는 경우다이는 부문 간의 자유로운 이동뿐 아니라 자본가 계급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즉 노동자들이 이윤이 존재할 때 언제든 자본가가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완전경쟁은 따라서 완전한 사회이동성즉 계급이 없는 사회를 전제로 한다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터무니없는 가정이며따라서 오늘날 맥락에서 완전히 신화적인 상태를 뜻한다그러나 이 완전경쟁” 하의 균형가격은 몇 가지 최적성의 속성을 가지므로만약 그 가격이 실현된다면 그로부터의 어떤 일탈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세계무역기구(WTO)는 새로운 국제무역규칙을 설계하면서 이 신화적인 완전경쟁” 상태가 실제로 세계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완전히 부당한 가정을 했다그래서 실제로 존재하는 가격으로부터의 어떤 일탈도 피해야 한다고 규정했다이에 따라 WTO는 어떤 부문의 생산자에게 가격지지를 통해 제공되는 보조금은 무역왜곡적이므로 피해야 하지만동일한 생산자에게 소득이전 형식으로 제공되는 보조금은 완전히 허용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의 터무니없는 성격은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 독점자본의 이윤을 통제하기 위해 이윤율에 대한 규제를 가하면 그것이 가격왜곡적이며 무역왜곡적이고 따라서 최적이 아니라고 금지된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실제로 오늘날 세계가 완전경쟁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가정에 근거하여실제 존재하는 가격에 대한 어떤 개입도 피해야 한다는 이 터무니없는 규정이 글로벌 사우스의 수많은 나라들에 WTO 합의를 통해 억지로 강요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이 나라들은 더 잘 알았어야 했다그러나 그들은 위협에 굴복했고그 명백한 결과 중 하나가 농민 농업에 대한 공격이었다.

출처: Unsplash, amol sonar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국 농업인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들 보조금은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을 통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소득이전의 형태를 띤다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이러한 보조금은 전체 생산물 가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일본에서는 거의 생산물 전체의 가치와 맞먹는다그러나 이 보조금이 아무리 막대하더라도 WTO는 이를 비가격왜곡적이라고 간주하여 문제 삼지 않는다왜냐하면 세계가 완전경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조차도 이론적으로는 오류다왜냐하면 완전경쟁이 실현된 경제에서는 직접 소득이전이 노동과 여가 사이의 상대가격을 왜곡한다고 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비가격왜곡적이라고 할 수 없다그러나 여기서는 이 점을 무시하자). 반면인도와 같은 나라에서 정부가 농민들에게 가격지지를 제공하는 경우즉 최소지원가격(MSP)이나 정부수매가격을 통해 가격에 개입함으로써 농민을 보조하는 경우그러한 지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WTO에 의해 가격왜곡적”, “무역왜곡적”, 그리고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비가격왜곡적” 보조금에 대한 고집은 세계가 완전경쟁” 경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않다미국에서는 농민 수가 수천 명에 불과하므로 정부가 개별 농가에 소득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그러나 인도와 같이 1억 가구가 넘는 농가가 있는 경제에서는 각 가구에 개별적인 소득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다이처럼 수많은 농민에게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즉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가격을 일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따라서 가격이 아닌 소득을 통해서만 지원을 제공하라는 요구는 사실상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 농민에 대한 모든 지원을 폐지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이는 실제로 인도의 수출 작물 재배 농민들과 관련해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그들은 더 이상 이전에 누리던 가격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신자유주의 체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세계 가격이 폭락하는 해마다 차(위원회커피 위원회코이어 위원회 등 정부기관들이 개입하여 국내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해당 가격으로 농산물을 매입했고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관세율도 적절히 조정되었다그러나 이러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WTO 규정에 따른 수출작물에 대한 가격지지 철회는 지난 수십 년간 인도에서 수많은 농민 자살이 발생한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이는 독립 이후 자유화” 이전 시기의 인도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던 현상이었다정부는 식량작물에 대한 가격지지도 철회하려 했는데이전까지는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이는 악명 높은 세 개의 농업법을 통해 이루어지려 했다그러나 1년에 걸친 농민들의 대규모 항의로 인해 정부는 일시적으로 이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정부는 가격지지를 철회하려는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이제 이 문제를 다시 당면한 의제로 끌어올렸다만약 인도가 단순히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맞서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거기서 멈췄다면농민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인도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 동의함으로써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인도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지 않는 대가로 인도가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데 동의했다는 의미이며이는 명백히 지금까지 식량작물 생산자들이 누려왔던 가격 보호가 더 이상 제공되지 않음을 뜻한다이러한 협상의 순결과는 미국 상품에 대한 인도의 관세율이 낮아지는 것이며이는 식량작물의 최소지원가격이 낮아질 것을 의미한다(그 가격이 계속 존재한다 해도), 그리고 소득이전을 통해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미국산 곡물이 인도 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녹색혁명 이래 실현되지 못했던 미국의 오랜 꿈즉 자국 곡물을 인도에 수출하는 꿈이 마침내 실현될 것이다.

이것은 인도의 관점에서 보면 재앙이 될 것이다이는 농민들에게 훨씬 더 큰 고통을 안기고따라서 곡물 농민의 경우 그동안 덜 심각했던 농민 자살률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국가의 식량안보까지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인도는 미국으로부터 식량 수입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이는 미국이 인도 정책 결정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또한 기근 발생률도 증가할 것이다농민들이 곡물 생산에서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다른 작물로 전환하게 되면그 작물의 가격이 세계 시장에서 필연적으로 폭락할 때인도는 국제적으로 곡물을 구매할 외환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게다가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더라도혹은 미국으로부터 식량 원조가 제공된다 하더라도(물론 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농민들은 그러한 수입 곡물을 구매할 구매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어느 쪽이든 이 나라는 기근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비교우위를 활용한다는 명목 아래 식량작물 생산을 포기하고 대신 수입국이 되도록 유도되었지만그들이 수출하던 작물의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기근에 시달려왔다경제학자 아미야 바그치(Amiya Bagchi)는 이러한 기근을 세계화 기근이라고 부른다이는 세계화가 유도한 식량 자급의 포기로 인해 발생한 기근이다지금까지는 아프리카가 세계화 기근의 희생자였지만이제 인도도 그렇게 될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이는 트럼프가 세계화에서 탈피하겠다고 위협한 결과다.

정부는 틀림없이 농민들의 이익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희생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그러나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가 인하되면 농민들의 이익은 반드시 타격을 입게 된다따라서 인도가 미국과 무역협상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농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다미국이 인도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지 않는 대가로 인도가 미국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는 것은 인도의 곡물 재배 농민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다왜냐하면 그들은 미국에 곡물을 많이 수출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는 인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독점 자본가들에게는 일부 이익을 줄 수 있겠지만그것이 농민들의 참담한 운명에 단 1그램의 변화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출처Tariff Negotiations and the Farmers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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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농민 농업 보조금 관세 인도경제 완전경쟁 자유경쟁 글로벌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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