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된 ‘민주노총 전직’
당선된 대통령은 소년공 출신이라 한다. 5월 7일 전직 민주노총 간부 204명이 ‘소년공 이재명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자 가운데 중량감 있는 민주노총 중앙 간부 출신만 20명에 달했다.
조준호, 김영훈, 신승철 전 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2006년 2월에 8일 동안 맡았던 ‘비상대책위원장’을 전직이랍시고 써 올린 남궁현도 있다. 10여 년 전 안철수 캠프부터 선거판이라면 이리저리 얼굴을 내밀었던 김태일, 이용식 전 사무총장들도 있다. 오랜 기간 ‘정치위원장’을 맡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까지 했던 이영희도 있다.
민주택시연맹 위원장 시절이던 2001년부터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된 2004년까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회장에게 금품을 여러 차례 받은 사실이 밝혀져 구속된 강승규도 이름을 올렸다. 검은돈을 받는 힘도, 적어 올리는 이름의 힘도 전직이든 현직이든 ‘노조 간부’라는 직책에서 나왔을 터다.
이미 오래전 민주노총이 가는 방향과는 다른 길로 꺾어졌던 이들이 민주노총에서 맡았던 ‘전직’만큼은 ‘전가의 보도’처럼 추켜올린다. 그들에게 ‘민주노총’이라는 이름은 무엇인가.
전직 내세워 ‘위성정당’ 비례대표, 이제 장관 후보로
그리고 또 한 명의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이 고용노동부장관을 맡으려 한다.
김영훈, 그는 2022년 대선 때 이재명캠프에서 노동위원장을 맡았고 2024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급조한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국민 후보’로 참여했다. 그 위성정당 내부는 서로의 가치가 달랐던 것인지 반미투쟁을 했다거나 병역을 기피(양심적 병역거부)했다는 이유로 자진사퇴 또는 컷오프당하는 후보들이 늘어났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경력을 내세운 김영훈은 비례대표 20번에 자리 잡았다. 선순위가 속속 국회에 입성하며 승계 가능성이 커진 그가 6월 23일, 고용노동부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6월 25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오래도록 요구해 왔고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 과제이자 민주당의 대선·총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되자 노란봉투법을 처리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노란봉투법에 법률 원칙을 흔드는 조항이 많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야당이 된 민주당이 다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고 2023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물론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다시 거대 여당이 됐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란봉투법 재추진을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끌어들였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여튼 그가 걷는 길을 지켜볼 일이다.
출처: 민주노총
‘전직’ 따르는 ‘현직’이 하는 일
지난 6.3 대선에서 진보 3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는 ‘가자 평등으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를 통해 권영국 후보를 선출하고 공동 대응했다. 민주노총은 2023년 9월 14일 대의원대회에서 ‘친자본 보수 양당 지지 금지’와 ‘진보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뼈대로 하는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대선이 닥치자 유일한 진보후보인 권영국 지지를 끝내 결정하지 않았다. 양경수 위원장은 대선이 끝난 뒤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2025년 6월 16일 자 게재)에서 “(그 국면에서 권영국 전 후보 지지는) 상층 간부들의 자족”이며 “현장에 대한 아무런 조직력과 침투력을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선이 본격화되던 5월 12일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정책협약을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사흘 뒤 열린 중집위 회의에서 거센 반대가 쏟아져 민주노총이 출범 이후 최초로 민주당과 맺을뻔한 정책협약 추진은 중단됐다. 양경수 위원장은 대선이 끝난 뒤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정책협약이 중단된 게 “아깝다”고 했다. “체결했다면 이후 민주당 정부 출범 뒤 보다 명분을 갖고 투쟁에 나설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서 진심 어린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 아쉬움이 체결을 못 해서인지, 명분을 갖고 투쟁할 수 없어서인지, 투쟁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아쉬움 때문일까. 양 위원장은 올해 들어 처음 소집하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 ‘국회 사회적 대화’ 안건을 직권으로 상정했다. 이른바 ‘국회 주도의 사회적 대화’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야당’이던 지난해 8월 21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중집위 결정 없이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사회적 대화 운영협의회’에 참여해 왔다. 양경수 위원장은 “직권 추진”이라고 했다. 6월 19일 민주노총 중집위 회의가 대선 평가를 논의하다 중단되는 바람에 6월 24일로 공고됐던 중앙위는 기약 없이 연기됐다.
가고 싶은 길, 홀로 가시길
‘민주노총 전직 임원’이라는 경력, 덕분에 출세의 길이 트이고 정부기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공기업 임원이 된 자들. 그들이 정작 ‘전직’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과문한 탓에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소년공 출신 대통령, 그가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지명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그리고 민주당과 ‘대화’하고 싶은 현직 민주노총 위원장, 그들의 세계는 전-현직을 넘나들며 어떻게든 연결되고 있나 보다.
윤석열 내란 직후 첫 번째 탄핵 표결이 진행되던 지난해 12월 7일, 여의도에 몰려든 수십만 명의 시민이 경찰의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혔다. 양경수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민주노총 조합원 여러분 일어나 주십시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일어나 길을 열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열광했다.
민주노총이 출범 후 30년 동안 부단하게 추구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 역시, 막혔다면 열어야 한다. 이전에도 그 길을 몇몇 지도부가 열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민주노총 조합원과 노동자들이 열어나갈 것이다.
그 길을 전직의 이름으로, 현직의 이름으로, 장(長)의 이름으로 막지 말라. 동지들과 함께 가는 길옆으로 새어있는 꽃길이 좋아 보인다면 조용히 그 길로 가시라. 다만 다른 이들이 가는 길목은 막지 말고, 그저 홀로 가시라. 그리고 전직이든 현직이든 ‘직책’은 내려두고 가시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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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