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시대: 분열된 정치와 균형 잡히지 않은 담론

오늘 나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약 1년 반 전 학생 시위가 있었던 탓에 여전히 요새처럼 보인다)에서 열린 정책대화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Dialogue) 25주년 기념 회의에 참석했다내가 참여한 패널은 원래 민주주의와 불평등에 관한 것이었지만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주로 불평등에 관해 이야기했다함께한 패널리스트는 유엔(이전에 옥스팜에서 활동출신의 위니 비야니마코넬대학교 경제학 교수 라비 칸부르오픈 소사이어티 재단 대표 비나이퍼 노로지였다. <뉴욕타임스>의 피터 굿맨이 토론을 진행했다.

위니와 노로지는 특히 민주주의를 강조했다참여주체성투명성정의부패 없음낮은 불평등 등 흔히 쓰이는 좋은 말들이 다 동원되었다그러나 질문은 이것이다오늘날 민주주의에 이 단어들을 적용할 때 그것들이 과연 여전히 의미가 있고 관련성이 있는가?

간단한 역사적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간결한 정의는 1942년 요제프 슘페터가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에서 내린 정의다정치 정당들이 가장 많은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따라서 통치할 권리를 얻는 것이다이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 정의에 따르면, 1930년대 권위주의 정권들도 그 정의를 준수하며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1932년 독일의 마지막 두 차례 선거에서 나치당(NSDAP)은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으나일단 집권하면 독재적으로 통치할 것이라 여겨져 정부 진입을 저지당했다결국 대기업가들과 대지주들이 히틀러를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힌덴부르크가 히틀러에게 정부를 구성하도록 위임했다(헨리 터너의 뛰어난 저서 ⟪히틀러의 권력 장악 30일⟫을 보라). 당시 독일은 의회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사실상 통치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930년대 유럽 전역에서는 이와 유사한 독재 정권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통치했다그리스의 메탁사스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드르 국왕폴란드의 필수츠키 원수와 베크 대령헝가리의 호르티 제독오스트리아의 슈슈니크이탈리아의 무솔리니리투아니아의 스메토나스페인의 프랑코 장군포르투갈의 살라자르 등이 그러했다마크 마조워는 이를 ⟪암흑의 대륙⟫에서 잘 설명했다. ‘암흑은 물론 1920~30년대 유럽을 가리킨다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지도자들이 인기가 있었으며일부는 매우 인기가 있었고많은 경우 민주적 또는 반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이다이안 커쇼는 히틀러 평전 두 권에서, 1937년 히틀러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 원수였다고 썼다오스트리아 합병(Anschluss) 이후그리고 보헤미아 대부분과 거기에 살던 수데텐 독일인을 합병한 이후 그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현재 상황으로 오면우리는 비슷한 것을 목격한다여론 형성자들이 나쁘다고 믿는 정부들이 여론조사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바로 지금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히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다모든 국제 규범을 어긴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도하는 푸틴은 2000년 이래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고상당한 부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선거가 완전히 자유로웠더라도 그가 승리했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에르도안은 현재 야당을 탄압하려 하고 있지만지난 22년 동안 선거를 통해 통치해왔으며그 결과는 야당도 인정했다(마지막 선거는 제외하고야당이 부정 선거라고 주장했다). 헝가리의 오르반슬로바키아의 피초세르비아의 부치치 같은 소위 비민주적 지도자들도 언젠가는 선거에서 질 수 있겠지만지금까지는 10년 넘게 연이어 승리해왔고 여전히 상당하거나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세르비아에서는 거의 1년간 학생과 시민 사회일반 대중이 함께한 끊임없는 시위에도 여론조사에서 부치치의 정당은 여전히 45%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2당은 고작 6%에 불과하다모디는 2014년 이래 총선에서 세 번 승리했다그리고 트럼프를 잊지 말자그는 현직 부통령이라는 본래 막대한 이점을 가진 상대를 상대로도 77백만 표를 얻었다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무엇인가 잘못된 것일까혹시 보통 사람들은 사회과학자들이 반민주적이라고 낙인찍는 정당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혹은 민주주의를 이용해 비민주적 정당과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일까?

출처 : Unsplash, Element5 Digital

정치학자들과 일부 패널 참가자들이 이에 답하길민주주의란 단순히 투표권이 아니라고 한다차별 없음자유로운 사법 제도독립 언론권력 분립 등이 포함된다고물론 투표만이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민주주의가 기능하는 가장 주요하고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바로 투표다투표를 통해 실제로 다수나 최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그런데 사람들은 단지 잘못된’ 정당에 투표할 뿐 아니라애초에 투표 자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미국 유권자의 거의 40%가 지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미국에서 트럼프선거민주당그리고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이집트 사막의 초대 기독교인들처럼 홀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미국에서 정상적인’ 선거의 투표율은 고작 50%이는 두 명 중 한 명은 누가 자신을 통치할지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뜻이다.

이 두 현상곧 민주주의에 무관심한 사람들과참여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 혹은 다수가 사회과학자들이 잘못된 정당이라고 말하는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유권자의 4분의 1만이 정치학자들의 선호와 일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그렇다면 정치학자들이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사람들이 왜 잘못된’ 정당에 투표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로 많은 상관관계와 인과 메커니즘이 제안되었다사회적 지위소득 수준소수자 여부농촌 지역교육인종성별 등등그러나 이는 흔히 잘못된’ 투표를 한 이들을 꾸짖는 무기로 사용되었다그들의 지능이나 교육 수준도덕성을 의심하며이는 결국 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거나 표의 가치를 낮추려는 시도로 이어진다(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도 이런 제안이 있다). 고집무지도덕적 타락이 잘못된’ 투표를 한 유권자에게 씌워졌다.

우리는 정치·사회과학자들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과 실제 정치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이 왜 생기는지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이 간극은 다른 많은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사람들은 잘못된’ 투표를 한 이들을 불만분자시기심 많은 자한심한 자파시스트라고 깎아내린다이에 대해 다른 쪽은 엘리트들이 교육과 부 덕분에 보통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동떨어져 있다고 역공한다양쪽의 주장은 모두 어느 정도 사실이다의견 차이와 양극화는 모욕이 상시적으로 오가는 상황을 낳았다정치 담론의 어조는 거의 히스테릭한 수준에 이르렀다미국 정치에는 언제나 일정한 히스테리적 요소가 있었다(이라크 침공 결정처럼 목표를 달성해야 할 때). 그러나 현재의 히스테리 수준은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고 점점 문화여가심지어 음식 선호까지 모든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이민이나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전쟁 같은 분열적 주제가 논의될 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상대를 조롱·비방·희화화하려는 강한 발언은 불가피하게 상대방의 더 거친 비난으로 이어진다어조가 높아지고 모든 주장이 정당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논쟁 속에서 다소 이성을 잃었다이런 수준의 양극화에서 각 진영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격하다 보면 이런 일은 불가피하다이것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지금으로서는 이 간극을 메우거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할 방법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오늘 회의로 돌아가 보자. ‘잘못된’ 선택을 하는 다수 유권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국제기구 이야기를 할 때 마치 완전히 다른 시대에서 온 언어를 쓰는 것처럼 들린다국제적 연대국가 간 협력 등을 말하는데지금 세계는 정치·경제·군사 블록으로 나뉘고 있는 중이다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국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기후 변화 대응전염병통화 정책 조정부채 재조정무역 규칙 같은 일들은 의제에서 사실상 사라지고이젠 양자 관계나 힘의 우위에 있는 쪽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세계 시민들이 어떤 공통의 이익을 공유한다는 전제는 오늘날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그런 발언을 듣다 보면그들이 아직도 1990년대(그런 환상을 조금이라도 품을 수 있었던 시기)에 머물러 세상이 바뀐 것을 보지 못한 듯하다.

반면오늘날 세계의 분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하려 하며책임 있는 다극 체제를 지지하고, ‘좋은’ 정부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해 선출되지 못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자들은정부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일부 국가들이 동의하는 사안에 대해 조각조각 국제 협력이 가능하다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양쪽은 서로 엇갈린 대화를 한다한쪽은 과거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을 말하고다른 한쪽은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말하지만 그것이 현재를 미화하고 인류 향상을 위한 비전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이로 인해 양쪽 모두 탈선하고편향되고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주장을 내놓게 된다.

[출처The Age of Discord: Fragmented politics and unhinged discourse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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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민주주의 자본주의 정당 정치 우파 투표 권력 선출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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