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통령 프라보워(Prabowo)는 시계를 되돌려 수하르토(Suharto) 독재 체제의 암흑기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수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경찰의 청년 살해 사건 이후, 예상치 못한 대규모 시위 물결에 직면하게 됐다.
출처: 현지 방송화면 갈무리
자카르타가 불타고 있다. 마카사르(Makassar), 반둥(Bandung), 수라바야(Surabaya), 마타람(Mataram) 그리고 인도네시아 전역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의원들의 호화 특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불만이, 빠르게 경찰 폭력, 엘리트 특권, 경제적 불안정, 부의 격차, 민주주의의 침식에 대한 격렬한 고발로 번졌다.
경찰에 의해 살해된 청년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의 참혹한 죽음은 인도네시아 사회를 한계점까지 몰아넣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심지어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닌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조차도 거대한 사회적 분노의 폭발에 일부 양보를 강요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둠의 인도네시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적어도 현재까지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Suharto)의 독재적 신질서 체제를 무너뜨린 국민 권력 봉기 이후, 권위주의의 유산과 자유시장 규율 사이에서 오랜 시간 갈등을 겪어 왔다.
지난 한 주 동안,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다양한 형태의 불만과 저항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격렬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전례 없는 속도와 강도로 수많은 환멸에 빠진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집단적 저항을 벌였다.
2025년 들어 긴장은 꾸준히 고조되고 있었다. 2월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학생 시위가 벌어져 프라보워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IndonesiaGelap(인도네시아는 어둡다) 또는 #DarkIndonesia(어두운인도네시아)라는 해시태그 아래 조직된 이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대규모 예산 삭감, 군의 국내 통치 개입, 족벌주의, 부패, 그리고 논란이 된 무상 점심 급식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들에 반대했다.
청년 운동은 펑크 DIY 미학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스카타니(Sukatani)의 노래 〈Bayar, Bayar, Bayar〉(“내라, 내라, 내라”)를 자신들의 저항가로 채택했다. 이 혼성 듀오의 곡은 펑크, 고스, 레트로 뉴웨이브 감각을 뒤섞어 경찰 부패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시위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들었지만, “어두운 인도네시아”라는 비관적 정서는 빠르게 확산됐다. 많은 이들이 자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고, 특히 #KaburAjaDulu(“일단 도망가자”)라는 해시태그가 바이럴되며, 취약한 국내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한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프라보워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했다.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일축하며, 청년들을 조롱하고, 심지어 이 현상이 “음모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 찰스 호노리스(Charles Honoris)는 이에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해시태그는 젊은 세대를 비애국적이라고 낙인찍거나 귀국을 막기 위한 구실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경고’이다. 정부는 부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배치 및 보호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역사 다시 쓰기
5월, 프라보워의 오랜 측근이자 극단적인 반중 성향을 가진 파들리 존(Fadli Zon) 문화부 장관은 자신이 새로운 국가 역사서를 집필 중이라고 발표해 많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명백히 수하르토 정권 시절의 인권 탄압을 세탁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이후 존 장관은 신질서 체제가 붕괴하던 혼란의 시기 동안 발생한 중국계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해, “소문이 과장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며, 문서화된 범죄 사실을 축소·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1998년 반중 폭력 사태는 대중의 분노를 수하르토에서 중국계 공동체로 돌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당시 프라보워는 고위 장성이자 수하르토의 사위였으며, 활동가 납치, 고문, 실종 사건에 연루된 책임으로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인 머시 크리스티 바렌즈(Mercy Chriesty Barends)와 보니 트리야나(Bonnie Triyana)는 존 장관이 이 같은 범죄들을 역사 기록에서 지우려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여러 방면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한 프라보워 대통령은 결국 국기를 중심으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8월 17일은 수카르노(Sukarno)가 인도네시아 독립을 선언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국민에게 애국심의 표현으로 적백(赤白) 국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통상적으로 명절을 앞두고 장식이 시작되는 시점보다 몇 주나 이른 시기에, 17,000여 개의 섬 전체에서 깃발과 애국적인 조명 장식이 빠르게 설치됐다.
그러나 그 직후 인도네시아의 악명 높은 혼잡한 도로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규제를 견디지 못해 불만을 품은 트럭 운전사들이 국기 게양을 거부한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One Piece)에서 따온, 밀짚모자가 씌워진 해골 문양의 “원피스 해적기”를 게양했다.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자, 이 깃발은 전국 곳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프라보워는 격분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착을 연상케 하는 편협한 대응으로, 인도네시아의 정치·안보 조정장관인 부디 구나완(Budi Gunawan)은 밀짚모자 해골 문양 깃발을 게양하는 자에게 최대 징역 5년 또는 미화 3만 달러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 대응의 우스꽝스러움은 오히려 원피스 깃발 판매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인도네시아 하원의장 푸안 마하라니(Puan Maharani)는 한층 유연하고 화해적인 접근을 제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러한 표현들은 ‘Kabur Aja Dulu(일단 도망가자)’ 같은 짧은 문장, ‘Dark Indonesia(어두운 인도네시아)’ 같은 날카로운 풍자, ‘코노하 나라(Konoha country)’ 같은 정치적 농담(또 다른 애니메이션 레퍼런스), 그리고 원피스 깃발과 같은 새로운 상징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표현들이 확산되고 있다.”
푸안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자, 첫 여성 대통령의 딸이자, 독립 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손녀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반대와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전지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던 시점, 정부에 대한 분노는 중부 자바 파티군(Pati Regency)에서 폭력 사태로 번졌다.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최소 8만 5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토지·건물세 250% 인상에 격렬히 반대했다. 처음에는 퇴행적 세금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였지만, 곧 수데워(Sudewo) 군수의 사임과 여러 인기 없는 지역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산됐다.
분노한 시위대에 맞서 수데워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맞섰지만, 곧 대중의 거대한 분노에 압도됐다. 그는 진압경찰 브리몹(Brimob, Mobile Brigade)을 호출해 자신을 구출하려 했으나, 오히려 경찰과 함께 쓰레기 세례를 맞고 시청 광장에서 쫓겨났다. 수일간 벌어진 시위대와 브리몹 간의 격렬한 충돌 끝에, 지역 의회는 결국 세금 인상안을 철회했고, 수데워에 대한 탄핵 절차를 시작했다. 이 드문 승리는 자카르타의 활동가들에게도 큰 자신감을 주었다.
대부분의 평가에 따르면, 독립 80주년 기념일(Hari Merdeka)은 여전히 크고 즐거운 행사로 치러졌다. 물론,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스타나(Istana) — 옛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부 청사를 개조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통령궁 — 에서 대규모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군사 퍼레이드, 의장대 사열, 기마 행진뿐만 아니라, 군인·장교·관료·과두제 엘리트가 함께 참여하는 합동 군무 공연까지 포함됐다. VIP가 아닌 시민들은 국립기념탑(Monas) 주변에서 열린 대규모 거리 퍼레이드와 공군 전투기 편대 비행 행사에 참여해 행사를 즐겼다.
8월 25일 월요일, 단 일주일 만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날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은 충격적인 폭로였다. 하원의원 580명 전원이 매달 5천만 루피아(약 미화 3,000달러,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약 10배)에 달하는 주거 수당을 급여와 별도로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미 누적된 특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학생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돌진했다. 진압경찰 브리몹은 최루탄을 발사했고, 학생들은 이에 돌을 던지고 고가도로 아래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격렬히 맞섰다. 도로는 차단됐고, 도시 전체가 뒤흔들렸다.
시위는 곧 규모와 성격을 동시에 확대했다. 8월 28일, 노동조합까지 합세하며 시위는 전국적인 규모로 번졌다. 수천 명의 학생, 노동자, 그리고 녹색 재킷을 입은 오젝 라이더(오토바이 호출 플랫폼 기사)들이 아웃소싱 중단, 최저임금 인상, 대규모 해고 방지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과 시위대 간의 대립은 전면적인 거리 전투로 격화됐다. 브리몹은 국회 주변에서 최루탄과 고압 살수포를 사용했고, 충돌은 쇼핑몰, 고속도로, 기차역으로 확산되며 중앙 자카르타 전체가 마비됐다.
봉기
그리고 아판 쿠르니아완의 참혹한 죽음이 사태를 극적으로 악화시켰다. 목요일 저녁, 인도네시아 국회의사당 밖에서 장갑 경찰차 한 대가 21세 오젝 라이더 아판을 들이받은 뒤, 그대로 깔아뭉개고 현장을 고속으로 도주한 것이다. 아판은 힘들고 위험한 저임금 라이더로 일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영상으로 촬영돼 소셜미디어에 즉시 업로드됐고, 2020년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장면은 곧바로 전국적인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봉기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아체(Aceh)에서 파푸아(Papua)에 이르기까지 25개 이상의 도시가 시위와 폭동의 무대로 변했다. 메단(Medan)에서는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우며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폰티아낙(Pontianak)에서는 학생 지도부가 체포됐다가 “행동 재발 금지” 조건부로 석방됐다. 마카사르(Makassar)에서는 시위대가 지방 의회 건물을 방화했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롬복(Lombok)에서는 청년들이 지역 의회 건물에 불을 지르는 방화를 저질렀고, 수라바야(Surabaya)에서는 동자바 주지사 집무실이 약탈당하고 방화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욕야카르타(Yogyakarta)에서는 시위대가 종합 운전면허 서비스센터 건물에 방화하며 상징적인 저항 행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욕야카르타 술탄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려 했지만, 분노를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폭력 사태는 자바(Java) 전역으로 확산되며, 건물들이 방화되고, 경찰 초소가 파괴되며, 쇼핑몰들이 폐쇄됐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찰은 완전히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분노와 공포에 빠진 수많은 경찰관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대응했다. 최루탄, 물대포, 실탄 발포가 대도시뿐 아니라 일부 중소도시에서도 흔한 광경이 됐다.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상당수가 중상이다. 사망자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시위가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 많은 희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의 불법 진압과 시위대의 집단적 저항을 담은 영상들이 연이어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되자, 틱톡(TikTok)은 폭력 확산을 늦추고 허위 정보의 유포를 차단하려는 시도로 일시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소용이 없었다. 모든 소셜 플랫폼에서 경찰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군중을 선동하는 ‘위장 도발자’에 대한 루머가 확산됐다.
한편, 러시아 언론은 익숙한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꺼내들며,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이번 사태의 배후”라고 보도했다. 반면, 인도네시아 좌파 활동가들은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국가경찰(PolRI)에 집중되고, 인도네시아 국가군(TNI)에는 피해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TNI와 PolRI 간의 오랜 갈등과 때로는 폭력적 충돌의 역사를 고려하면, 군 내부 일부 세력이 이번 사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이번 시위 사태가 프라보워 대통령과 국회의 평판을 동시에 크게 훼손하면서, 2024년 대선 패배자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에게 가장 큰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아니스는 과거 경쟁자였던 바수키 차하자 푸르나마(Basuki Tjahaja Purnama)를 정치적으로 몰락시킬 때도 이슬람 정체성 정치, 대규모 동원 전략, 반중(反中) 선동을 활용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회유와 강압
토요일에도 폭력 사태는 계속됐다. 자카르타를 포함한 여러 도시에서 경찰서가 집중 공격을 받았고, 시위대는 돌을 던질 뿐 아니라 화염병(몰로토프 칵테일)까지 사용했다. 동자카르타 경찰서는 결국 불타 완전히 전소됐다. 소셜미디어에는 충격적인 폭력 장면이 담긴 수백 개의 영상이 쏟아졌다.
자카르타의 부유층 거주지에서도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폐쇄형 커뮤니티 단지를 강제로 돌파해, 특히 악명 높은 정치인들의 집을 공격한 것이다. 코미디언 출신 의원 에코 파트리오(Eko Patrio)는 시위대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린 뒤 자택이 약탈당했다. 영상에는 사람들이 의자, 조명, 여행가방, 스튜디오 스피커, 매트리스까지 들고 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또 다른 국회의원 아흐맛 사흐로니(Ahmad Sahroni)의 자택 역시 침입을 당해, 명품 가방, 대형 금고, TV, 운동기구, 피아노, 실물 크기의 아이언맨 조형물까지 약탈당했다. 심지어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Sri Mulyani Indrawati) 재무장관의 집 역시 난장판이 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마운틴헤드〉(Mountainhead)의 줄거리를 연상케 하는 이 사건은, 재무장관이 공립학교 교사를 조롱하는 듯한 AI 생성 영상이 퍼진 뒤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전국적 봉기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자, 프라보워 대통령은 예정돼 있던 중국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사태 수습을 위해 직접 위기 대응에 나섰다. 그는 성명을 통해 “깊은 애도”를 표하며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특히, 1998년 민주화 시위 당시의 강경 대응과 달리, 이번에는 아판 쿠르니아완의 유가족을 직접 방문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였다.
8월 31일 일요일, 프라보워 대통령은 주로 회유적인 연설을 하며 과도한 국회의원 주거 수당과 다른 특권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경찰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을 추적할 것을 장려했다.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는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 밖의 행위, 심지어 법을 위반하는 행위, 심지어 반역과 테러에 기울어지는 행위의 징후를 부정할 수 없다.”
국가는 시위를 강하게 탄압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만 1,000명 이상의 체포자가 발생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수천 명이 추가로 구금되면서, 과부하 상태인 경찰과 법원이 적법 절차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국가 경찰과 군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배치되었는데, 이 “질서”라는 표현은 점점 더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계속해서 국가의 과잉 대응을 기록하고 있다.
‘앰네스티 인도네시아’의 사무국장 우스만 하미드(Usman Hamid)는 대통령의 연설을 무감각하고 본질을 놓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프라보워에게 시민들의 불만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위기의 단면
2025년의 시위는 이제 더 광범위한 위기의 단면이 되었다. 그것은 공공기관에 타격을 주는 긴축 정책, 엘리트들의 멈출 수 없는 부의 축적, 그리고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구조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보여준다. 시민들, 특히 청년, 노동자, 그리고 긱 경제 노동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이 정부는 정확히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이번 봉기는 인도네시아 정치경제의 근본적인 모순을 폭로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간극, 긴축과 과도한 혜택의 결탁,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저당 잡힌 세대의 격렬한 분노가 그것이다.
국가의 양보와 탄압이라는 두 가지 충동은 국가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드러낸다. 파티(Pati)에서의 승리나 자카르타에서의 수사 약속 같은 사건들은 구조적 긴장을 바꾸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반발은 민주적 책임성의 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과 같은 인접국들의 사례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2025년 8월은 단순히 또 한 번의 시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의 시민 정신이 엘리트의 면책 특권과 정면으로 충돌한 잠재적인 전환점이다.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까? 탄압인가, 개혁인가? 인도네시아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
[출처] The Indonesian Protests Are a Revolt Against Oligarchy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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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G. 밴(Michael G. Vann)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새크라멘토 캠퍼스의 역사학 교수이며, ⟪위대한 하노이 쥐 사냥: 제국, 질병,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의 근대성⟫의 공동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