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연준 이사인 리사 쿡(Lisa Cook)을 '사유를 들어' 해임하겠다고 나서면서, 미국 중앙은행과 벌여 온 그의 오랜 갈등이 다시 격화했다.
이 소식은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파이낸셜타임스(FT) 지면에서 브루킹스 연구소의 허친스 재정·통화정책센터 소장인 데이비드 웨셀(David Wessel)은 이렇게 경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을 장악하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이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of Governors)에서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훼손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웨셀이 말한 '우리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울림을 주었다면,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한층 더 나아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거침없는 크루그먼은 그의 결연한 발언을 “나는 스파르타쿠스다(I’m Spartacus)!”라는 외침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트럼프의 움직임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는 연준뿐 아니라 전체 행정 국가와의 오랜 갈등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5월, 트럼프가 국가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 고위직들을 해임한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면서, “연방준비제도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준사적 기관이며, 이는 미국의 제1·제2 국립은행이라는 뚜렷한 역사적 전통을 잇는 존재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대통령은 연준 의장이나 이사를 단순한 이유 없이 해임할 수 없다. 다만, 1913년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에는 ‘사유가 있을 경우’ 의장이나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조항이 존재한다. 그리고 5월 이후, 트럼프 측은 그 '사유'를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연준 건물 개보수 비용 문제가 나왔고, 이제는 리사 쿡의 주택담보대출 신청이 도마에 올랐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은, 왜 트럼프 측이 이렇게 빠르고 거세게 수위를 올리는가이다. 어차피 연준은 금리 인하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원하는 것을 곧 얻게 될 텐데, 왜 서두르는 걸까?
기회를 포착한 걸까? 약점을 발견했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걸까? 아니면 MAGA 진영의 자만심과 통제욕 때문일까? 그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깨뜨리려는 의지를 품고 있는 걸까? 이것이 은행 규제에 대한 장기 전략의 일부일까? 혹은 그들이 진심으로 미국 경제의 상태를 우려하고 있으며, 그래서 연준의 정책을 장악해서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려는 걸까?
그런데 여기서 자유주의 진영의 반응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 역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개인적인 동일시를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보라. “우리 민주주의(our democracy).” “나는 스파르타쿠스다(I’m Spartacus)!”
한편으로는 유치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뼈아플 정도로 사실이기도 하다.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연준 자체가 매우 비민주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연준 이사회 내 힘의 균형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내년에 지역 연준 의장직이 새로 임명되기 때문이다. 지역 연준 의장을 선출할 때, 워싱턴의 연준은 지역 경제계 인사들이 주도하는, 책임도 없고 투명성도 부족한 지역 위원회들의 활동을 감독하게 된다. 연준은 미국 정부 내에서 기업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지점이다. 이 점을 잠시 곱씹어 보라. “나는 스파르타쿠스다!”
그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권력을 갖고 있다. 리사 쿡은 단순히 트럼프와 견해가 다른 평범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연준 이사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 기구 중 하나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그런 권한이 없다. 나도 없다. 우리는 모두 리사 쿡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분노와 과장된 일반화를 걷어내면, 문득 드러나는 고통스러운 진실이 있다.
리사 쿡은 전형적으로 성공한 전문가 계층(PMC) 인물이다. 적어도 예전에 내가 그와 한 위원회에서 함께 일할 기회를 가졌을 때 그렇게 느꼈다. 그는 ‘우리 중 하나’였다. 그런 제한된 의미에서라면, 크루그먼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정도 권한과 통제력을 행사하는 전문가 계층의 누구든, 쿡이 겪고 있는 이와 같은 괴롭힘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다. 이 뉴스레터나 크루그먼의 칼럼을 읽는 독자 중 상당수도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잘 안다. 윤리, 보고, 공시 같은 것이 바로 우리가 다루는 일이다.
이 더 좁은 의미의 ‘우리’에 관해서라면, 웨셀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우리 민주주의”가 브루킹스연구소식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는 확실히 위협받고 있다.
MAGA 2.0은 분명히 “우리”의 권위를 정면으로 도전하고, “우리”의 미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려 한다. 물론 그들은 선거구 조정이나 투표 조작처럼 훨씬 노골적인 일들도 하려고 하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공포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잠시 멈추어 곱씹어야 한다. 이번 순간 역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분노와 동시에 뼈를 찌르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 “내가 이런 짓을 단 하나라도 했다고 상상해 봐라.” 그래, 맞다. 상상해 보자…
오바마: 내가 이런 일 중 단 하나라도 했다고 상상해 봐라.
왜 민주당 행정부는 MAGA 진영이 그들의 아젠다를 추구할 때처럼 야심차고, 단호하고, 냉혹하고, 공격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더 나아가 용기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MAGA는 미친 것 같고 무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감히 하지 못한 방식으로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우리 민주주의”는 유능했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순응적이기도 했다.
내가 리사 쿡과 함께 일했던 위원회는 녹색 에너지 전환과 금융을 주제로 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전 연준 이사인 사라 블룸 래스킨(Sarah Bloom Raskin)도 함께 있었다. 2022년, 그는 연준의 핵심 규제 직위에 지명되었다. 하지만 공화당의 스캔들 몰이와, 그의 기후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문제 삼은 웨스트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조 맨친(Joe Manchin)의 반대에 직면하면서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제약이 얼마나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공화당은 완전히 냉혹하게 움직였고, 사실상 공화당원이나 다름없는 맨친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물론 민주당도 결백하진 않다. 그들 역시 다른 분야에선 법적 전략을 구사하지만, 금융에 있어선 그렇지 않았다. 금융은 ‘진짜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중앙은행이 녹색 에너지 전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정당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국에선 처음부터 그 누구도 그런 시도가 성공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맨친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런데 맨친에 대한 약점은 정말 없었을까?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까?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쥐고 있던 그 장애물을 치울 수 있는 뭔가가 정말 전혀 없었던 걸까?
그리고 경제적 논리들도 있었다. 연준의 입장에서 MMT(현대통화이론)는 금기였고, 정치적 개입은 “경제학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더 낫다”는 이유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논리들이 오늘날 다시 동원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2024년 5월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ors)가 발표한, 연준의 독립성 중요성에 관한 개요서를 인용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발췌하자면 아래와 같다.
바이든-해리스(Biden-Harris) 행정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속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끌어올려 왔다. 이 문제가 여러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만큼,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지금이 중앙은행 독립성(CBI)이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설명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이라는 것은, 통화정책을 정치적 간섭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도표 2는 선진국들 사이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훨씬 더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경험적 증거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되어 온 흐름은 선진국에서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하락과 함께 나타났고,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고정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이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 정부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1923년부터 2023년까지 370건의 중앙은행 개혁을 분석한 한 연구는, 2016년 이후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전 세계적 의지가 다시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깊은 동기를 얻고 있으며, 중앙은행 독립성(CBI)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어렵게 이루어낸 진전을 무시하거나 되돌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해롭고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논리가 MAGA 진영에게 큰 설득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물론 다시 말해 MAGA가 미쳤고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시험해 볼 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일반적 이점에 대한 결론은, 세계 경제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영향력도 제한적인 여러 나라들을 비교한 자료에서 도출된 것이다. 미국은 욕조 안의 고래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에게 조건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지나치게 특권적인 지위(exorbitant privileges)'를 누리고 있다.
누군가는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면, 미국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는 위상을 위협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주요 투자자들은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공공 부채(universe of public debt)의 현실이다.
출처: 2025 UNCTAD 세계 부채 보고서
수조 원을 투자하려면, 미국을 제외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중국이나 일본, 혹은 몇몇 소규모 유럽 국가 채권뿐이다. 유로화의 강세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유로는 여전히 미국 국채 시장을 대체할 만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시장은 차분하게 반응했다. 화요일 오전(유럽 시간 기준) 현재,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트럼프가 연준을 장악하게 될 경우 가장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은 이날 아침 4.94%까지 상승했다. 이는 이달 초의 4.75%에서 오른 수치지만, 2023년 5월과 10월에 돌파했던 5% 선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FT 알파빌(Alphaville)의 로빈 위글스워스(Robin Wigglesworth)는 이날 아침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혼란스럽고 앞뒤 맞지 않는 무역전쟁이 이미 기정사실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면, FT 알파빌이 트럼프 2.0 하에서 금융·경제 재앙이 올 것으로 내다본 핵심 시나리오는 연준에 대한 전면 공격이었다. 그게 지금 현실이 되었다.”
그의 칼럼 제목은 “미국 국채 시장을 위해 기도하라”였다. 그런데 위글스워스는 우리에게 정확히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국채 시장이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기길 기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등장해 트럼프를 통제해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사실상 위기를 바라게 되는 셈이다. 혹은 우리는 국채 시장 자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걸까? 이 시장이 MAGA의 광기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시장의 반응을 보면, 걱정할 만한 반응조차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위글스워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 시장의 초기 반응은 터무니없이 안이해 보인다. 이 사안을 고립된 사건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불과 몇 주 전, 트럼프는 일자리 관련 통계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 국장을 해임했다. 제도와 관행에 대한 믿음은 이미 무너졌다. 많은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조차 두려워할 만큼 강력한 채권시장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에 안도감을 느껴 왔다. 하지만 리사 쿡을 향한 명백히 정치적인 공격은, 시장의 반응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설령 쿡이 법정에서 승리하더라도, 그가 당한 공격 자체가 연준 이사회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망신을 주고 위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 정책 결정자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면 걱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중앙은행과 공공 부채에 대한 더 민주적인 정치가 더 나은 대안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전반적인 독성을 고려하면, 그런 입장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했다. 상대편은 매우 위험한 세력이다. 정치적 판을 열려면, 그 판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라 블룸 래스킨(Sarah Bloom Raskin) 같은 인물이 후보에서 탈락한 사례는, 우리가 얼마나 좁은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MAGA 진영의 공격성은 우리에게 사실상 선택지를 없애버렸다. 역사가 우리에게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위글스워스는 그의 칼럼을 라보뱅크(Rabobank)의 인용으로 마무리한다.
“명목상 독립적이고 기술적인 통화정책 결정 과정이 노골적으로 정치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이 더 이상 1990년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최적의 정책 전달, 중앙은행의 신뢰성, 대중의 의사로부터 중요한 결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기존의 낡은 이론은 이제 노골적인 권력 정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아무런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법의 해석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처럼, 금리의 결정 역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국가 정책의 모든 요소가 MAGA가 그리는 미국과 세계에서의 역할에 부합하도록 재편되고 있다.”
만약 브루킹스식 민주주의가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했다면, 만약 우리, 즉 PMC(전문관리계층)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이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일이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수세적일 것인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대법원의 개입이나 채권시장의 공황뿐인가? 우리는 “나는 스파르타쿠스다!”라는 구호 아래 연준의 독립성을 방어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물러설 것인가?
이제야말로 “우리 민주주의”의 매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해야 할 때다. 이제야말로 중앙은행의 민주적 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때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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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