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폴리네시아 핵실험 30년 후, 남겨진 독성 유산

1995년 6월 13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2021에마뉘엘 마크롱(Macron) 대통령은 프랑스가 마오후이 누이(Maʻohi Nui)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주요 문서 기록의 공개를 촉구했다이후 프랑스 의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1995년 7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있는 유럽의회를 공식 방문하는 동안무루로아(Moruroa)에서 핵실험을 재개하기로 한 프랑스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와 유럽의회 의원들 사이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출처유럽의회 멀티미디어센터

최근 몇 달 동안 프랑스 핵무기 체계의 지속 가능성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유럽 대륙의 동맹국들을 보호할 수 있는 프랑스 핵우산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그리고 이 분쟁에 핵무기를 투입할 수도 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유럽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냉전 시기의 가장 긴장된 시기 이래로 전례 없는 긴급한 사안이 되었다.

핵전력이 더 강력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 이후로 NATO 동맹 방어에 대한 헌신이 줄어든 듯한 모습을 보였다프랑스 핵우산에 대한 논쟁과 별개로세계 곳곳에서 군사비 지출이 증가하고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프랑스의 핵무기 준비와 실험의 역사는 고통스럽게도 다시 현재의 문제로 떠올랐다.

1995년 6월 13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불과 몇 주 만에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1992년 4월 도입한 3년간의 핵실험 유예 조치를 종료시켰다.

자크 시라크는 이번 새로운 핵실험 시리즈가 프랑스의 국가 안보와 독립적인 핵억지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향후 몇 달간 계획된 8차례의 핵실험은 실제 폭발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그는 또 이를 통해 프랑스가 1996년 가을까지 모든 핵폭발을 군사적 목적이든 다른 목적이든 금지하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에 서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핵실험의 역사


무루로아 파일(Moruroa Files) – 남태평양에서 이루어진 프랑스 핵실험에 대한 조사 보고
남태평양에서 이루어진 프랑스의 핵실험에 관한 보도 영상이다.(디스클로즈 Disclose)

1995년 6월 자크 시라크가 발표한 내용과 같은 해 9월에 이뤄진 첫 핵폭발은 환경운동가들과 평화주의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파리에서 파페에테(Papeete)까지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시위가 확산했다.

세계 주요 핵보유국의 대표자들은 프랑스가 전면적인 핵실험 금지 조약 발효를 앞두고 핵실험을 재개한 결정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호주뉴질랜드일본 정부도 외교 성명을 통해 강력히 반대 관점을 밝혔고프랑스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기타 보복 조치를 촉구했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 레강(Reggane)에서 70킬로톤급 핵폭탄 제르부아즈 블뢰(Gerboise Bleue)’를 폭발시키며 핵무기 보유국 클럽에 들어선 이후핵무장 정책에서 방어적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이후 세 차례의 대기 중 실험과 사하라 사막에서 이뤄진 열세 차례의 지하 실험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장기적 건강 피해와 환경 오염을 초래했다.

1966프랑스는 핵실험 프로그램을 마오후이 누이(Maʻohi Nui, 식민지 명칭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이전했다.

그 뒤 26년 동안 프랑스는 모루로아(Moruroa)와 팡가타우파(Fangataufa)라는 태평양 산호초 섬에서 지상 및 지하 방식으로 총 187회의 핵 및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이 실험들은 현지 주민들을 위험한 방사선에 노출했고식량과 식수 자원을 오염시켰으며산호와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

이러한 실험들—1995년과 1996년에 이뤄진 마지막 6회의 지하 폭발을 포함해—은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질 독성 유산을 남겼다.

지속되는 피해불충분한 보상

1995년 6자크 시라크는 엘리제궁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핵실험 계획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예정된 이 실험들과 기존의 모든 프랑스 핵폭발이 생태학적으로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발언이 단순한 부정확함을 넘어서 명백한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이는 프랑스의 핵실험 프로그램이 프랑스군 병사들과 민간인 근무자들실험장 인근 주민들그리고 실험이 이루어진 생태환경에 끼친 해로운 영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한 자료와 결론에 기반한 거짓이었다.

최근 파리 2024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가 서핑 대회를 위한 관광 천국이자 낙원 같은 장소로 묘사되는 것과핵실험 피해자들에게 계속해서 가해지는 구조적 불의 사이의 분명한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이는 프랑스가 해당 지역에서 자행한 핵제국주의의 역사와 그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1995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핵실험 반대 시위출처위키미디어Yann ForgetWikimedia CommonsCC-BY-SA

2010프랑스 정부는 1960년부터 1996년 사이 핵폭발로 인해 방사능에 심각하게 노출된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보상하기 위해 모랭 법(Loi Morin)’을 제정했다.

하지만 보상과 피해 인정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특히 알제리에서는 그 부족함이 더욱 두드러진다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피해자 중 극히 일부만이 신청한 2,846건 가운데마오후이 누이(Maʻohi Nui)에서는 400여 명만이알제리에서는 단 한 명만이 2010년 이후 보상을 받았다.

2021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마오후이 누이 주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인정했다그는 이후 이 역사와 관련된 핵심 기록들의 공개를 촉구했지만모든 측면에서 여전히 큰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프랑스 의회가 태평양 핵실험의 영향을 조사한 보고서의 결론이 곧 발표될 예정이며이 보고서는 향후 더 큰 투명성과 피해자들에게 더 나은 정의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오후이 누이에서는 피해 인정과 보상 요구가 독립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알제리에서 핵폭발의 영향과 유산은 식민지 과거와 얽힌 채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계속되는 긴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의 미래

1996년 1프랑스는 남태평양 지하에서 120킬로톤급 폭탄을 폭발시키며 마지막 핵실험을 실시했다같은 해 9프랑스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에 서명했고이는 미국러시아영국중국그리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66개국과 함께 더 이상 어떠한 이유로도 핵폭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동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CTBT는 아직 발효되지 못했다서명국 대다수가 조약을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중국이집트이란이스라엘미국 등 아홉 개국은 여전히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게다가 러시아는 2023년에 이미 비준을 철회했다인도북한파키스탄은 주요 비서명국이며이들 모두는 1996년 이후 독자적인 핵실험을 감행한 핵보유국이다.

이처럼 핵실험 금지에 대한 주요 예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2017년에 채택된 핵무기 금지 조약(TPNW)처럼 더 야심 찬 조약의 전망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해당 조약에 서명한 핵보유국은 단 한 곳도 없다.

[출처] Trente ans après les derniers essais nucléaires français en Polynésie, un héritage toxique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록산 팡차시(Roxanne Panchasi)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 역사학과 부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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