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탈린이 다시 모스크바 지하철에 등장했는가?

2025년 5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동상이 모스크바 타간스카야(Taganskaya) 지하철역에 제막되었다이 동상은 수십 년 전 철거된 벽화를 재현한 것으로,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중앙 모스크바에 세워진 첫 번째 스탈린 동상이다이 일은 러시아가 권위주의적 길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불길한 새 단계를 나타낸다.

1924년부터 스탈린이 사망한 해까지수천만 명이 그의 정책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었다이 정책에는 농업의 강제 집산화굴라크(Gulag) 강제노동수용소 체계그리고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진행된 대숙청이 포함되었으며이 시기에는 군부 주요 인사들도 대거 체포되었다.

그러나 1945년 나치 독일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는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러시아의 현재 통치자들 눈에 스탈린을 구원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이 승리는 소련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며오늘날 러시아 사회를 결속시키는 힘으로 남아 있다.

1956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진행된 탈스탈린화는 스탈린의 정책과 유산을 해체하는 과정이었고그로 인해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이 붕괴된 1991년까지 그의 동상이 세워지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2023년 마지막으로 집계된 바에 따르면그 이후 110개의 기념물이 건립되었고이 중 95개는 푸틴 집권기에 세워졌다러시아가 2014년에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이들 기념물 건립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들 동상은 처음에는 야쿠티야북오세티야다게스탄 등 러시아 연방의 주변 지역에 세워졌고도시 중심부에는 세워지지 않았다따라서 2025년 4대통령령에 따라 볼고그라드의 공항 이름을 전쟁 당시 도시 이름을 반영한 스탈린그라드로 변경한 일은 중대한 순간이었다.

러시아 수도 한복판에 위치하고 매일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건축학적 걸작인 모스크바 지하철에 세워진 스탈린 동상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적 선언을 나타낸다.

스탈린 세탁(Stalinwashing)’

러시아에서 스탈린의 평판은 계속 회복되고 있다. 2015년 여론조사에 따르면러시아 국민의 45%가 스탈린의 행위로 인한 죽음을 정당하다고 여겼으며(2012년의 25%에서 증가), 2023년까지는 러시아인의 63%가 그의 지도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러한 인식은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러시아 언론이 증폭하는 관점과 일치하며그곳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드물게 나타난다심지어 2017년 영국산 풍자 코미디 영화 <스탈린의 죽음>(The Death of Stalin)도 대중의 찬양 환상을 깨뜨릴까 봐 러시아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

스탈린을 복권시키려는 목적은 푸틴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러시아인들의 순응 반응을 훈련시키며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있다하지만 이에는 대외적인 영향도 수반된다.

그의 고향인 조지아를 예외적으로 보더라도스탈린은 주변국들로부터 광범위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이들 국가는 종종 스탈린의 억압적 정책의 희생자였으며그중에서도 특히 우크라이나가 그렇다우크라이나인들이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부르는 대기근은 1932년부터 1933년 사이 집산화 정책의 일환으로 의도적으로 초래된 것이며최대 38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결과그의 죽음은 탈스탈린화의 물결을 불러일으켰으며이는 동유럽 전역에서 스탈린 동상을 철거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이 과정은 1956년 부다페스트 봉기 때 시작되었고이후 프라하 등지에서도 유사한 반응이 이어졌다.

1956부다페스트에 있던 스탈린 동상은 시위대에 의해 철거되었다출처위키미디어

봉기가 진압된 이후스탈린의 자리는 보통 논란이 상대적으로 덜한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대신했다레닌은 소비에트연방을 창립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성향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축출한 마이단 혁명 이후우크라이나인들도 레닌의 동상을 철거해 왔다. ‘레닌오파드(Leninopad, 레닌 낙하)’ 또는 레닌폴(Leninfall)’로 알려진 시위 물결 속에서다른 소련 시기의 상징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스탈린 세탁의 강화에 영향을 주었다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상징적 유산을 거부한 사실은러시아가 이를 되려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그 유산에는 스탈린도 포함된다.

러시아는 자국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레닌의 동상을 복원해왔다그리고 이제는 스탈린 동상도 세우기 시작했다대표적인 사례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도시 멜리토폴(Melitopol)이곳에서는 5월에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며 스탈린 동상이 제막되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법률에 위반된다우크라이나에서는 공산주의(및 전체주의선전 상징물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한편러시아군은 소련 유산의 의미를 둘러싼 전쟁 속에서 홀로도모르 기념물들을 파괴해왔다.

러시아의 군사력 강조

스탈린을 다시 들어 올리는 행위는 그의 통치를 협소하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그 핵심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강조하는 데 있다현대의 스탈린 동상은 일반적으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조각되며전시 승리의 상징으로서의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스탈린 상징의 일부 매력은 그의 통치 시기 복지 정책에 기반한다스탈린은 잔혹한 권위주의 체제를 강요했지만교육과 의료는 모두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었다그는 두려움을 노동 동기부여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러시아인들은 지금도 무능하거나 태만한 공직자를 비난할 때 스탈린이 있었다면 네놈들 제대로 혼쭐났을 텐데(Stalina na vas net)”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럼에도 스탈린을 기념하는 주된 방식은 제국적 상징으로서의 그를 중심에 둔다이는 러시아가 소비에트연방의 중심국으로서 자국의 식민 과거를 반성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정당화한다러시아 안에서는 스탈린의 기록을 옹호하는 논리로예컨대 윈스턴 처칠이 1943년 벵골 대기근에서의 책임 등 피비린내 나는 과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국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이 주장에는 일면 진실이 담겨 있지만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영국에서는 처칠의 한계와 대영제국에 의해 초래된 사망에 대한 그의 책임이 공개적으로 논의된다러시아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그러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심지어 이번 모스크바 동상도 대중의 감시와 논의를 피해 한밤중에 제막되었다.

영국이 자국의 역사적 영웅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사실은 그것이 러시아와 구별되는 지점이며그것이 곧 영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짓는 요소다적어도 지금 시점까지는 그렇다.

[출처Why is Stalin back in the Moscow metro?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제러미 힉스(Jeremy Hicks)는 런던 퀸메리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에서 탈소비에트 문화사 및 영화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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