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하원(하원은 의회의 하원이며 공화당이 근소한 다수당이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는 이 예산안을 “크고 아름다운 법안(The Big, Beautiful Bill)”이라고 부른다. 이 법안은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중인 2017년에 통과된 부유층과 고소득층을 위한 대대적인 감세 조치를 연장하려 한다. 이 '아름다운 법안'은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와 식량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대규모 삭감을 포함한다. 물론 재생에너지에 대한 세금 보조금도 삭감된다(‘드릴, 베이비, 드릴’이라는 구호 아래).
트럼프는 연방 지출에서 1,630억 달러 삭감을 요구했다. 국방 이외 지출은 22.6% 삭감되어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국방 예산은 대폭 증가한다. 비국방 정부 서비스는 대대적으로 삭감되는 반면, 국방 지출은 13% 증가하고 ‘국토안보’ 관련 예산은 65% 증가할 예정이다. 이는 이른바 ‘불법 이민’을 단속하려는 목적에서다.
메디케이드 삭감 계획은 특히 잔혹하다. 미국은 보편적 건강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미국은 매년 4조 5천억 달러 이상을 의료에 지출한다. 의료는 미국 소비자 서비스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여가, 외식, 호텔 지출보다 훨씬 많다. 메디케이드와 같은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미국인의 45%를 빈곤선 위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메디케이드에 대한 대폭적인 삭감은 수백만 명이 건강보험 없이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빈곤선 이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월급에서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거의 빈곤한’ 수백만 가구에게도 필수적이다.
세금 감면은 주로 고소득 가구와 기업에게 혜택을 줄 것이며, 지출 삭감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는 메디케이드와 영양 보조 프로그램에 대한 삭감, 수십만 명의 연방 직원 해고, 정부 기관 전체의 해체 등이 포함된다.
예일대학교 예산연구소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와 하위 2040%에 해당하는 가구의 세후·이전소득은 각각 5%와 1.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소득 상위 2040%와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은 각각 1.4%와 2.5%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손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중위 가계소득이 2.8%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치에 추가되는 것이다. ‘예산·정책 우선센터’는 이들 하위 소득계층의 추정 손실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이는 학생대출 상환 조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의 삭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말해주는 바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기존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정책을 어떤 보호무역주의 기반의 ‘산업 전략’으로 전환시켰다는 모든 주장들이 사실상 국제 무역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국내 정책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신자유주의’로서, 부유층에게는 더 많은 것을, 나머지에게는 더 적은 것을 제공하며, 군수산업에는 더 많은 지출을, 대중을 위한 공공 서비스에는 더 적은 지출을 제공한다. 트럼프는 대기업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노동자들과 중소기업에는 더 적은 지원을 제공한다. 트럼프의 예산안은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관찰된 자산과 소득의 기형적 불평등 심화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지배 엘리트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아름답지 않고 추악한 것은 불평등의 심화가 아니라, 이 예산안이 실행될 경우 나타날 정부 예산 적자와 공공 부채의 급격한 증가다. 초당적 기구인 ‘연방예산책임위원회’는 트럼프의 예산이 2034년 말까지 공공 부채를 최소 3조 3천억 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추산했다. 이 예산안은 정부 부채 대비 국내총생산(GDP) 비율을 현재의 100%에서 사상 최고치인 125%로 증가시킬 것이다. 이는 현재 법률 하에서 2034년까지 예상되는 117% 상승보다 높은 수치다. 한편, 연간 재정 적자는 2024년의 약 6.4%에서 6.9%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게 중요한가? 어차피 미국 당국은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은행들과 금융기관들로부터 더 많은 달러를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향후 10년 이상 그 추가 국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 정부가 지출을 통제하고 채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미국 최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더 이상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무디스는 미국 국채의 신용도를 하향 조정했다. 그 결과, 거의 즉각적으로 미국 국채를 사려는 금융기관들이 요구하는 이자율이 상승했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5.04%로 상승했고, 이는 2023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의 이자 지출은 2035년까지 연방정부 세수의 30%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이는 2021년의 9%와 비교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이자율 상승이 기업들의 모든 차입 비용과 가계의 모기지 이자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신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가 멈출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일자리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첫 주택 구매자들과 이사를 고려하는 가구들도 더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할 수 있다.
트럼프의 MAGA 정책 고문들은 이번 예산이 감세와 규제 완화로 인해 더 높은 경제성장을 일으켜 스스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낙수효과’ 이론의 고전적 형태로, 부자들에 대한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지속적 주장이지만, 그 효과는 반복적으로 반박되어 왔다. MAGA 진영은 또한, 외국산 수입품에 부과될 관세 인상으로 인한 세수 증가가 감세로 인한 수입 손실을 보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트럼프의 관세 인상이 2024 회계연도 대비 2,450억 달러의 세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는 올해 CBO가 예상하는 총 세입 5조 2천억 달러와 1조 8천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 적자에 비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MAGA 고문들은 연방준비제도가 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즉, 자산 매입 한도)에 대한 제한을 제거하고, 은행들이 더 많은 미국 국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3년 3월의 은행 위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에는 일부 지역 은행들이 지나치게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그 가치가 급락하면서 도산했다.
일부는 트럼프의 재정적 방만함이 오히려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는 2022년 영국에서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했던 것과 유사하다. 트러스는 보수당 정부 하에서 단 47일간 재임한 영국 총리였다. 그는 ‘성장을 위한 예산’이라는 명목으로 부유층 감세를 골자로 한 ‘낙수효과’식 예산안을 도입했다. 그 결과 예산 적자와 공공 부채의 급증 가능성이 시장을 겁먹게 만들었고, 특히 국채(‘gilts’)를 대량 보유하고 있던 연금 펀드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영국 국채의 가치가 급락했고, 영국은행은 금리 폭등을 막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며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파운드화는 외환시장(FX)에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과 몇 주 만에 보수당은 금융기관들의 압력에 따라 트러스를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골드만삭스 출신의 전 헤지펀드 매니저 리시 수낵(Rishi Sunak)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결국,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리즈 트러스는 트럼프 취임식 때 착용한 MAGA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리즈 트러스 순간‘은 미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국도 미국처럼 무역수지와 예산수지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영국은 훨씬 더 외국인의 ‘친절’에 의존하고 있다고 현 캐나다 총리이자 전 영국은행 총재인 마크 카니(Mark Carney)가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적자들은 외국인 투자를 통해 충당되어야 하며, 이는 영국 산업에 대한 직접 투자든, 영국의 채권이나 통화에 대한 투자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친절’은 트러스 집권 하에서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하지만 트럼프 하의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이자 주요 무역 및 투자 통화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 전쟁과 예산안 발표 이후 최근 몇 달 동안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제 쟁점은 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나 트럼프의 관세 전쟁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아니다. 트럼프가 유럽산 모든 수입품에 대해 다음 주부터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거래가 타결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최근 조치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과 투자은행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트럼프의 매번 다른 행동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타코(Taco)’ 요인이 작동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는 결국 항상 위협에서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개념 말이다. 아니다, 진짜 쟁점은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로 향하고 있는지, 즉 국민 총생산과 투자가 명백히 감소하고 실업률이 크게 상승하는 국면으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생산과 소득은 정체되어 있으나 물가와 금리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향하고 있는지 여부다.
2025년 1분기에 미국 국내총생산은 1차 추정치 기준으로 0.3% 하락했다. 이 수치는 다음 추정치에서 상향 조정될 수도 있다. 수출입과 정부지출을 제외하면 국내 민간 부문은 여전히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절벽 끝에 서 있으며, 평균적으로 여전히 15%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가 그 경제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경기침체를 판단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는 이른바 '샘 지표(Sahm measure)'다. 이 통계는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디아 샘(Claudia Sahm)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최근 3개월 평균 실업률을 지난 1년간의 최저 3개월 평균 실업률과 비교한다. 이 차이가 0.5%포인트를 넘으면 경기침체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현재 샘 지표는 약 0.3%포인트 수준에 있으며, 2025년 9월까지 매월 실업률이 0.1%포인트씩 상승해야 기준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지표로 보면 미국 경제는 아직 침체 상태가 아니며, 또 다른 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이 있더라도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필자에게 실업률은 경기의 후행 지표다. 마르크스주의 위기 이론은 이윤에서 출발해 투자로, 그리고 소득과 고용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핵심 선행지표는 이윤이다. 현재로서는 기업 이윤이 증가하고 있으나,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윤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산업·정보통신·운송·화석연료 생산 등 경제의 생산 부문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본격적인 불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미국 기업들은 현재 자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 둔화를 겪고 있으며, 특히 수출 부문에서 그러하다. 관세는 생산 비용을 상승시키며, 기업들은 이를 이윤 감소나 노동자 해고를 통해 감당하거나, 가계에 더 높은 가격으로 전가해야 한다. 또는 그 둘 모두를 감행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차입과 기존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상승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윤 압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씨티은행은 올해 평균 기업 이익 성장률이 단 1%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급작스러운 중단”은 미국 기업 투자 중 7%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1년간 이윤을 올린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설비(capacity)에 재투자하지 않고, 대신 자사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그 규모는 5,0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가계 역시 MAGA 고문들이나 투자은행 경제학자들만큼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다. 소비자 신뢰 지수는 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 루트비히 공유번영연구소(LISEP)에 따르면, 미국 가계 소득 하위 60%에 해당하는 가구에게는 “최소한의 삶의 질”조차 손이 닿지 않는 상태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4.2%로 발표되어 있지만, 이는 경제적 고통 수준을 크게 과소평가한 수치다. LISEP는 빈곤 수준의 임금에 갇힌 노동자들과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까지 반영하며, 이에 따르면 실질적인 미국 실업률은 24%를 넘는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 소득 하위 가계의 평균 연소득은 3만 8천 달러에 불과했으며, 이들이 ‘괜찮은 삶’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연소득은 6만 7천 달러였다. 주거비와 의료비는 폭등했고, 주립 공립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저축액은 무려 122%나 급증했다. 반면 2001년부터 2023년 사이, 소득 하위 60%에 해당하는 계층의 중위소득은 오히려 4% 감소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랑하는 ‘크고 아름다운’ 세금 법안을 맞이하게 되었다.
[출처] Donald Trump’s ‘big, beautiful’ tax bill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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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