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전쟁은 다른 주요 경제권 정부들로 하여금 국제 무역 및 통화 체제를 전면 재고하게 했다. 지난 40년간 이른바 세계화 속에서 구축된 국제 무역의 ‘규칙’은 붕괴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영국의 지원을 받아)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뉴햄프셔)에서 설립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유엔(UN) 같은 국제기구와 세계무역기구(WTO)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지난주, 상위 30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싱크탱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파리에서 연례 회의를 개최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 정책과 개별국 간의 무역 합의를 강요하려는 시도는 참석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국제 무역이 다자간 협정이나 기구 없이도 작동할 수 있으며, 분쟁 해결에도 그런 장치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따르면, 미국이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무역 적자가 너무 크고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일방적인 힘이며, 우리는 그걸 갖고 있다”고, 미국 무역대표부 소속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와 회의를 함께한 한 외교관이 말했다. “앞으로 세계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테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흥미롭게도, 다수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점차 트럼프와 미국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국제 무역과 금융의 ‘불균형’(즉 흑자와 적자, 채권과 채무)은 자본주의에 해롭고, 이제는 그런 구조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는 자본의 이윤율 하락이나 어떤 특정 국가의 ‘과도한 부채’ 때문이 아니라, 국제적인 불균형—일부 국가는 지나치게 큰 무역흑자를 내고, 다른 국가는 과도한 적자를 떠안는—에 의해 발생한다는 시각이다.
케인스의 권위 있는 전기 작가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끝난 직후 다음과 같이 썼다. “글로벌 불균형은 2008~2009년의 극심한 신용 경색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도 위험하다. 불균형은 대규모 자본 이동으로 인한 무질서한 반전(reversal)을 일으킬 수 있고, 무역 제한 조치를 촉발할 수도 있다. 만약 신용 거품이 먼저 터지지 않았다면, 2006년 당시의 글로벌 불균형이 달러 위기나 보호무역주의 광풍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불균형이 완화되었지만,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여전히 심각한 잠재적 문제로 남아 있다.”
이제 케인스주의 좌파는, 1941년 케인스가 제안했지만, 잊혔던 아이디어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바로 각국 정부가 국제적인 ‘청산소(clearing house)’를 설립해 무역 흑자나 적자를 국제 통화 단위로 환산된 채권과 채무로 전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단위는 ‘방코르(bancor)’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러한 청산소는 트럼프식의 무정부적인 무역 전쟁과 달리,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케인스는 “국제 청산 연합의 ‘핵심 목적’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국가에 물건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나라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다자간 청산(multilateral clearing) 체계다”고 밝혔다. 이 체계는 국가 간 양자 간 청산(bilateral clearing)의 필요를 제거한다. 모든 국가의 중앙은행은 국제 청산 연합(ICU)에 자국의 방코르 계정을 개설해 무역 흑자나 적자를 반영하게 된다.
케인스 계획의 핵심은, 채권국이 무역 흑자에서 발생한 자금을 보유하거나, 이를 대출해 주면서 고금리를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ICU의 메커니즘을 통해 흑자는 자동으로 채무국에 저금리 당좌대월(overdraft) 형태로 제공된다. 각국 통화는 방코르 단위에 대해 고정되지만, 조정 가능한 비율을 유지하며, 방코르 자체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가치 척도인 금(gold)과 고정된 관계를 맺는다.
지속적으로 무역 흑자를 내는 채권국들은 자국 통화를 절상하고, 외국인 소유의 투자 자산에 대한 차단 조치를 해제함으로써 흑자를 줄이도록 요구받게 된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국제 청산 연합(ICU)은 합의된 쿼터를 초과하는 수준의 잉여(credit)에 대해 점진적으로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게 된다. 연말에 쿼터를 초과하는 모든 잔액은 몰수되어 ICU의 준비 기금(Reserve Fund)으로 이전된다. 반대로, 지속적인 적자를 내는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자본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 이들 역시 과도한 부채(debit)에 대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이자를 부과받게 된다. 목표는 연말 기준으로 모든 국가가 무역 균형을 이루고, 방코르 잔고(채권-채무)의 총합이 정확히 0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케인스는 국제 무역 균형을 맞추는 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무역 조정이 “채무국에는 강제되지만, 채권국에는 자발적이다.” 채권국이 조정을 수행하거나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런 불편도 겪지 않는다. 한 나라의 외화보유액은 0 아래로 떨어질 수 없지만, 반대로 상한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 자본 흐름이 조정 수단일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채무국은 빌려야만 하지만, 채권국은 [대출을] 해야 할 어떤 강제성도 없다.”
이는 실제로 중대한 문제다. 상품과 서비스에서 무역 흑자를 내는 국가들이 왜 자신들이 벌어들인 통화 이익을 어떤 국제 청산은행에 넘겨야 하는가? 그 은행은 그 돈을 적자국에 이전시켜, (표면적으로) 생산과 투자 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국제 자본 흐름을 줄이려 한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 당시, 미국은 주요 흑자국이었고 미국 대표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는 케인스의 방코르 계획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주요 흑자국은 중국과 유럽이며, 미국은 거대한 적자국이다. 하지만 트럼프나 중국이 무역 수익의 분배 권한을, 소위 중립적 관료 집단이 운영하는 국제 은행에 넘기는 것을 지지할 수 있을까?
브레턴우즈에서의 화이트와 케인스의 만남
2025년 현재, 트럼프와 케인스주의자 모두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와 다국적 기업의 세계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케인스주의자들은 국제 무역과 통화 불균형이 세계 경제 불안정의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부 케인스주의자들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고문진의 주장—무역 흑자국, 특히 중국이 국제적 불안정의 주범이라는 주장—까지 수용하고 있다.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자국 제조업에 보조금을 주기 위해 국내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무역 흑자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제조업 무역 흑자를 “무역과 자본 계정을 상대적으로 덜 통제하는 무역 파트너 국가들이 떠안게 했다”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무역 불균형은 중국(또는 최근까지는 독일)의 책임이지, 미국 제조업이 아시아나 유럽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2010년, 스키델스키(Skidelsky)는 “신흥국(중국을 지칭—MR)이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이 많은 이점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을지 모르나, 이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동반한다. 수출 흑자에는 어딘가에서의 적자가 반드시 반대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중국의 흑자가 미국의 적자를 초래했고, 중국의 높은 저축률이 미국의 과잉 소비를 유발했다는 설명이다. 스키델스키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2010년대 중반의 사건 전개를 설명하는 꽤 설득력 있는 서술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저축 ‘과잉’은 미국에서 케인스식 확장 정책을 촉발했고, 이는 세계적인 불균형을 확대했다. 물론 언젠가는 정산의 날이 찾아오며, 이 조정의 부담이 적자국에 떨어지는 만큼, 이는 세계 경제에 강한 디플레이션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스키델스키가 실제로 말하려는 바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조화롭고 균형 있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는 ‘적대적 형제들’ 사이의 경쟁이 끊임없이 지속된다. 국내 시장과 마찬가지로, 더 강하고, 더 조직되어 있으며, 더 생산적인 기술을 보유한 집단이 약자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얻는다. 불균형은 자본주의 축적의 본질이다.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거시적 정책으로 ‘불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국내 경제에서도 작동하지 않았고, 국제 시장에서는 더더욱 가능성이 작다. 국제 불균형은 서로 경쟁하는 다수 자본 간의 불균등 발전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그것이 경제 위기의 원인은 아니다.
실제로 스키델스키는 이를 암시했다. “불균형에는 ‘좋은 불균형’과 ‘나쁜 불균형’이 있다. 세계화의 장점 중 하나는, 저축이 가장 높은 투자 수익률이 기대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불균형은 경제 내 가격 신호의 왜곡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으며, 이는 수정 비용이 큰 자본 흐름 및 소비 패턴 왜곡으로 이어진다.” 이 말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이 본질적으로 불균등하다는 점을 요약하고 있다. 국가 간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이 모두 균형을 이루더라도, 수익성의 불균등한 발전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 수준이 더 높은 국가와 기업은 기술 수준이 낮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여전히 잉여가치를 추출하며, 이는 무역 내 가치의 불균등 교환을 발생시킨다. 국제 불균형의 ‘가치 차원’은 케인스주의 이론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다.
자본주의하에서는 항상 가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는 더 효율적인 생산자가 덜 효율적인 생산자에게 무역 적자를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균등하고 결합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비용이 더 낮은 국가 경제는 국제 무역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로부터 가치를 흡수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자본가들(그리고 트럼프도 나름대로)은 흑자국이 미국에 적자를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보다, 중국이 미국과의 생산성 및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어 미국으로의 이윤 이전이 줄어들고 있고, 이는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을 위협한다고 여긴다(아래의 가치 이전 그래프 참고).
출처: https://hal.science/hal-04367750/document
주요국의 경제 성장 둔화가 흑자국들의 ‘과도한 저축’ 때문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흑자국의 가계, 기업, 정부가 지출을 더 많이 하고(저축하지 말고 소비한다면), 무역 불균형이 사라지고 세계 경제 성장도 더 빨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흥국의 과도한 저축이 주요국의 성장 둔화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주요국에서의 투자 부족이 원인이다.
세계적으로 저축 ‘과잉’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자가 부족했다. 이윤(즉 흑자 저축)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 아니라, 투자가 지나치게 적었다. 1980년대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OECD)의 자본주의 부문은 GDP 대비 투자 비중을 4%포인트나 줄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와 대침체(Great Recession) 이후 그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선진국의 GDP 대비 저축률은 고작 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출처: IMF
1990년대 후반 이후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투자가 감소했고, 성장률은 소비를 자극하고 비생산적인 금융 및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기 위해 신용과 부채 같은 허구 자본(fictitious capital)의 팽창에 의존하게 되었다. 대침체(Great Recession)와 그 이후 미약한 회복의 원인은 소비 부족이나 저축 과잉이 아니라, 바로 투자 붕괴였다.
2011년, 대침체가 막 끝난 시점에 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총재였던 머빈 킹(Mervyn King)은 이렇게 말했다. “외부효과(externalities)를 내부화(즉, 불균형을 해소—MR)하기 위한 ‘게임의 규칙’을 강제할 세계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해결책은 오직 국가 간 협력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안정적인 세계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향후 몇 년이 그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몇 년은, 중국 친구들이 말하듯,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너무 잘해버린’ 결과로 무역 흑자를 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거나, 어렵게 벌어들인 수출 대금을 몰수당하는 데 동의할 나라가 있을까? 중국이 그렇게 하겠는가? 반대로, 무역 적자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거나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도록 강요받는 일을 받아들일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 그렇게 하겠는가?
국제 협력을 통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흐름과는 정반대로, 주요국들은 전면적인 무역 전쟁에 직면하고 있으며(이는 군사적 전쟁 준비와 함께 병행되고 있다), 국제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OECD 연례 회의는 어떻게 결론 내렸을까?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회의 이전과 똑같은 위치에 있다. 즉, 아무 진전도 없다는 뜻이다.”
방코르(Bancor)라는 이상주의적 구상은 1941년에 거부당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케인스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제안된다 해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출처] Bancor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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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