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21대 대선 기간 녹색당은 기후생태위기와 관련하여 기후정의에 반하는 잘못된 공약 및 주장에 대해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그린워싱 보고서"를 발간했다. 참세상은 이 그린워싱 보고서가 새 정부에서 추진할 ‘기후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5회에 나눠 게재한다. ‘기후’를 명분으로 기후와 환경을 파괴하는 성장 정책이 추진되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 특혜와 지원이 몰리는 현실에서 실질적이며 정의로운 기후위기 해결을 고민하는 독자들의 판단에 좋은 준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Unsplash+, Kateryna Hliznitsova
누구나 ‘기후’를 말하는 시대
누구나 ‘기후’를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고, 심지어 화석연료기업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말합니다. 이런 현실은 그만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행되고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많은 기후정의 활동가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기후 담론’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기후’는 너무 쉽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고, ‘기후’를 명분으로 하는 ‘반기후 기후 정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을 약속한다고 실효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탄소흡수원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숲이나 갯벌을 밀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포스코가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인 듯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내세운 ‘그리닛’(Greenate, 철강 제품과 철강 기술·공정, 수소공급 인프라 시설 등 3개 부문을 통합한 탄소중립 브랜드)’은 탄소중립 효과가 없음을 드러내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가덕도 신공항이 생태파괴와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일자, 어느 국회의원은 자동차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더 크며 항공기 연료를 전기나 수소로 하면 괜찮다는 식의 반응을 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선적인 정책이나 약속, 행동을 ‘그린워싱’이라 부릅니다. ‘기후 담론’의 일상화와 함께 그린워싱의 일상화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린워싱’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 대선에서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과 내용에도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대선 전부터 기후 단체와 언론은 기후 문제가 대선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작년 총선 때부터 ‘기후 정치’, ‘기후 시민’, ‘기후 유권자’ 운동을 벌였던 몇몇 영향력 있는 단체는 이번 대선에서 기후를 단일 의제로 하는 TV토론회를 열어야 한다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기후 단일 의제 토론회’는 아니었지만, 2차 후보 토론회는 사회갈등 극복과 통합, 연금 및 의료 개혁 문제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주제로 삼아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기후를 주제로 한 토론이 벌어졌는데도 평가는 박하고, ‘기후가 실종된 대선’이라는 평가마저 나왔습니다. 그만큼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후’ 없는 대선은 아니었습니다만…
하지만 적어도 두 대선 후보(이재명과 권영국)는 기후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선거와 토론에 임했고,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 공약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기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두 후보는 크나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재명 후보에게 ‘기후’는 하나의 ‘산업’으로, 경제회복과 ‘경제 강국’ 건설을 위한 ‘성장동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말했지만, 그저 ‘기후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려야 할 명분으로만 사용되었을 뿐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권영국 후보는 기후위기가 시민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삶을 위협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 기후불평등 해소와 기후정의 확립이 전제되지 않는 기후위기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로 인해 피해가 집중되는 저소득층, 사회적 소수자, 노동자의 보호, 공공재생에너지의 신속한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 유발에 대한 책임이 큰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 등을 공약했습니다.
이런 공약 상의 차이는 TV토론회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기후가 실종된 대선’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기후위기 대응이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한 탓입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언론은 정작 대선 시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기후 정책의 쟁점을 잡아내고 공론화해야 할 임무를 포기한 채 정쟁만을 좇으며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과 같은 ‘3대 후보’의 발언과 행보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주류 정치인들의 ‘기후 산업’ 육성 정책이 마치 기후위기 대응책인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고, 이와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는 권영국 후보의 기후정의 정책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기후재난을 보도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전해주던 언론의 모습, 대선을 전후해 기후 의제의 중요성을 말하던 언론의 모습에 비추어 봤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언론만이 아니었습니다. ‘기후 시민’ 캠페인을 벌이며 대규모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대선 직전에는 ‘시민의 삶을 지킬 30대 기후 정책’이라는 보고서까지 냈던 싱크탱크들과 기후 단체들은 정작 대선 시기 기후 공약들이 제출되는 상황에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들 중에는 “시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자, 자격 없다!”면서 시민들로부터 784개의 ‘기후 질문’을 받은 단체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기후 대선’을 위해 노력을 했다면, 대선 시기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공론화를 도모하고 누가 자격이 있고 없는지 ‘기후 시민’들이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도 따라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던 탓에 대선에서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 토론을 원하면서 목소리를 냈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그저 SNS에서 ‘홍보’되는 의미 이상을 찾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일부 기후 단체의 무책임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심각해져가는 기후위기는 한국에서도 ‘기후불평등’,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성’, ‘그린워싱’과 같은 개념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2022년부터는 매년 수만 명이 모이는 기후정의행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후환경단체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에너지 협동조합 등 각계각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일부 기후 단체들이 주류 패러다임 안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한다면,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단결된 힘으로 신속하고 정의로운 기후위기 대응의 대안을 찾고 이를 확산하면 될 것입니다.
‘기후정의’ 관점에서 진짜 기후 정책은…
녹색당 그린워싱 감시본부 보고서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감시본부가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그린워싱 정책은 ‘기후’와 ‘녹색’, ‘생태’, ‘정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은폐하고, 생태파괴를 심화시키며, 기후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공공성을 훼손하고 민영화를 촉진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접근은 단지 친환경적인지 혹은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그린워싱’ 개념을 재정의하고 확장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공개될 보고서는 다음의 내용을 다룹니다. 첫 번째로는 이재명 후보가 제안하는 ‘햇빛-바람 연금’에 대한 것입니다. 공공재생에너지운동이 ‘태양과 바람은 모두의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나오자, 이재명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햇빛-바람 연금’입니다. 햇빛과 바람이 모두의 것이니 그로 인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보고서는 이에 대해 분석합니다. 그다음에는 이재명과 김문수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에너지고속도로’를 해부합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기후 공약으로 제시되었지만 실제로는 기후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산업정책이라는 점을 폭로합니다.
세 번째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추진되는 AI와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과 함께 기후위기의 해법처럼 이야기되는 SMR 등 핵발전 문제, 그리고 신공항의 문제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기후위기와 기후불평등을 야기한 대기업에 책임을 물리기는커녕 되려 수익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던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살펴봅니다. 배출권거래제는 지금까지도 제도 정비만 잘하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되는데, 이것이 어떻게 기후 부정의를 양산하면서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키는 ‘그린워싱’인지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