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이론 3부: 인플레이션의 가치론

이 글에서는 현대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들을 다시 검토한다. 1부에서는 주류 이론을 살펴봤고, 2부에서는 비주류 이론과 그 밖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다뤘다. 이번 3부에서는 굴리엘모 카르케디(Guglielmo Carchedi)와 내가 발전시킨 인플레이션 가치론을 제시한다.

우리가 보기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마르크의 가치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존의 주류 이론과 비주류 이론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이론 대부분도 가치 창출의 역할을 빠뜨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 분석에는 커다란 공백이 생긴다. 마르크스에게 가치란 인간이 추상적인 형태로 노동력을 지출한 것이며, 노동시간, 즉 노동자가 자본을 위해 일한 시간으로 측정한다. 이는 상품 생산에 실제로 투입한 노동시간을 뜻한다. 그러나 모든 추상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노동은 비생산적이다. 기본적으로 상업과 금융 부문의 노동, 군수산업과 부동산 부문의 노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생산적 노동은 이미 생산한 가치를 재분배할 뿐이다. 반면 생산적 노동은 새로운 가치와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따라서 우리의 인플레이션 가치론에서는 생산 부문에서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가치를 측정한다.

가치를 실현하려면 서로 다른 상품을 교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화폐가 교환수단의 역할을 한다. 화폐는 교환을 가능하게 하며, 따라서 가치를 나타낸다. 화폐가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화폐의 변화는 가치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내가 1부에서 설명했듯이 통화주의 인플레이션 이론과 가치론의 핵심적인 차이다. 통화당국은 통화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이고, 현금 보유나 차입에 적용되는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방식으로 가치 변화에 대응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가치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시장에서 상품 가격이 변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반면 우리의 인플레이션 가치론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유통되는 화폐량의 변화와 가치 생산량의 변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로 정의한다. 이 차이는 노동자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중요해진다.

우리는 일정 기간 생산적 노동에 투입한 노동시간을 가치로 정의하고 측정한다. 또한 통화 공급량은 실제로 유통되는 화폐량을 기준으로 정의하고 측정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급된 화폐가 모두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그중 일부를 축장해 예비자금으로 보유한다. 또 다른 일부는 금융자산(채권, 주식 등)이나 부동산(토지, 건물)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다. 이렇게 사용한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한 유통 과정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통화 공급량을 측정할 때 은행이 중앙은행에 보유한 지급준비금 규모와 일정 기간의 화폐 유통속도를 반영해 통화 공급량(은행예금)을 조정한다. 화폐 유통속도는 통화가 얼마나 자주 거래에 사용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유통속도가 1보다 크다면 일정 기간 같은 화폐를 두 번 이상 사용했다는 뜻이므로 전체 유통 화폐량이 늘어난다. 반대로 화폐 유통속도가 1보다 낮다면 화폐 보유자들이 공급된 화폐를 재화와 서비스 시장에 투입하기보다 더 많이 축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요소를 반영해 조정하면 일정 기간의 유통 화폐량을 측정할 수 있다.

통화 공급량의 변화율과 금융자산의 축장 및 투기를 반영해 조정한 통화량의 변화율 사이의 차이를 이용하면 축장과 금융 투기의 규모를 측정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통화 공급량(은행예금 등으로, 미국 금융통계에서는 M2)의 변화율과 조정된 유통 화폐량의 변화율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축장과 투기를 반영해 조정한 M2가 일반적으로 M2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당시에는 화폐 유통속도가 대체로 1을 웃돌았고 축장과 금융 투기의 규모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특히 2008년 이후부터 2010년대에 걸쳐 통화 공급량 증가율과 실제 유통 화폐량 증가율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졌다. 이 시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른바 양적완화를 시행한 때였다. 연준이 공급한 화폐의 상당 부분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쓰이기보다 축장되거나 금융자산 투기에 흘러 들어갔다. 이 기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사실상 0%까지 떨어진 반면, 금융자산 가격은 급등했다.

출처: FRED, 저자 계산

인플레이션의 가치율을 구하기 위해 조정된 통화 공급량의 변화와 경제의 생산 부문에서 일한 노동시간의 변화 사이의 차이를 측정한다.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는다. 유통 화폐량의 증가율이 새롭게 창출한 가치의 증가율보다 높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반대로 유통 화폐량의 변화율이 가치 증가율보다 낮아지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유통 화폐량의 변화율과 노동시간의 변화율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면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그 격차가 좁아지면 인플레이션이 하락한다(디스인플레이션).

그렇다면 이 두 요인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며, 둘 가운데 어느 것이 결정 요인이고 어느 것이 그에 따라 결정되는 요인일까? 먼저 우리가 창출된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하는 생산적 노동시간부터 살펴보자. 분석 대상 전체 기간(1949~2022)에 걸쳐 미국 경제의 생산 부문에서 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은 증가했다. 노동자 1인당 노동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취업자 수가 그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침체로 노동자들이 해고된 시기(1957~1958, 1974~1975, 1980~1982, 1991, 2001, 2008~2009, 2020)에는 예외였다. 이 시기에는 전체 노동시간이 감소했다.

출처: FRED, 저자 계산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투자가 증가하면서 고용한 노동에 비해 불변자본(생산수단)의 비중이 커진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는 것은 그 반대로 투자한 자본 한 단위당 창출되는 가치가 감소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투자한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한다. 1949~2022년 전체 기간을 살펴보면 자본 이윤율의 하락과 투자한 자본에 비해 노동시간 증가세가 둔화되는 현상 사이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출처: FRED, 저자 계산

연간 인플레이션 가치율은 조정된 통화 공급량의 연간 변화율과 생산적 노동시간의 연간 변화율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1949~2022년 전체 기간에 조정된 통화 공급량은 연평균 6.6% 증가했고, 생산 부문의 노동시간은 연평균 1.4% 증가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가치율은 연평균 5.2%(6.6%-1.4%)를 기록했다.

출처: FRED, 저자 계산

전체 기간을 보면 통화 공급량 증가율은 하락한 반면, 노동시간 증가율은 완만하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가치율은 전체 기간에 걸쳐 하락했다. 사실상 디스인플레이션, 즉 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2010년대 말까지 디스인플레이션이 장기적인 추세로 이어졌다.

출처: FRED, 저자 계산

그러나 1949~2022년 전체 기간은 두 개의 하위 기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49~1981년이고, 두 번째는 1982~2019년이다. 첫 번째 기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 가치율이 상승해 인플레이션 국면을 형성했다. 두 번째 기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 가치율이 하락해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을 형성했다. 첫 번째 기간에는 조정된 통화 공급량이 노동시간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 가치율도 가속했다(위 그림 참조). 특히 1970년대에는 노동시간이 정체하거나 감소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위 노동시간 그림 참조).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 가치율은 급격히 상승한 반면 노동시간은 매우 느리게 증가했으며, 1974~1975년과 1980~1982년 경기침체기에는 오히려 크게 감소했다. 이 때문에 경제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가치 증가세가 둔화하자 통화당국은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통화 공급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유통 화폐량의 증가세가 빨라졌다. 그러나 노동시간 증가세는 빨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에는 인플레이션 가치율이 연간 10%를 웃돌았다(위 그림 참조). 이에 당시 폴 볼커 의장이 이끌던 미국 통화당국은 정책 방향을 급격히 전환해 통화정책을 긴축했다. 1980년대 말에는 유통 화폐량 증가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세가 빨라지는 현상은 디스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는 현상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대침체가 끝난 뒤 201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사라졌다(위 그림 참조).

가치의 변화는 취업자 증가에 따른 노동시간 확대와 이윤율 하락에 따른 노동시간 증가세 둔화라는 객관적 요인에 좌우된다. 반면 유통 화폐량의 변화는 경제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객관적 변화에 통화당국과 금융 부문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대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연방준비제는 경제가 약화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통화정책을 긴축한다.

우리가 보기에 물가를 좌우하는 객관적 요인은 가치 창출의 변화이며, 바로 이 요인이 통화당국의 주관적 대응을 결정한다. 통화당국은 통화 공급량을 늘리면 경기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화폐를 공급하면 투자 감소와 GDP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국은 새롭게 창출되는 가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화폐량을 늘린다. 따라서 통화당국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현대 경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상시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다만 물가 상승률은 달라질 수 있는데, 첫째로 새로운 가치, 즉 노동시간의 증가율이 변하고, 둘째로 통화당국이 유통 화폐량의 증가율을 얼마나 크게 조정해 대응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 즉 노동시간의 변화가 인플레이션 가치율을 움직이는 주된 요인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가 있을까? 첫째, 자본 이윤율과 노동시간 변화 사이에는 비교적 높은 상관관계(0.66)가 나타난다. 둘째, 노동시간 변화와 유통 화폐량 변화 사이에도 비교적 높은 상관관계(0.60)가 나타난다. 물론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유통 화폐량의 변화가 가치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변화가 유통 화폐량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볼 만한 강력한 근거가 있다.

여기에 통계적 인과관계 검정 결과도 덧붙일 수 있다. 가치(노동시간)의 변화와 유통 화폐량 변화 사이에서 인과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그레인저 인과성 검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가치의 변화가 유통 화폐량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null hypothesis)’은 기각돼 두 변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유통 화폐량의 변화가 가치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은 기각되지 않아 인과관계가 없음을 시사했다. 이는 가치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움직이는 객관적 요인이고, 통화 투입은 이에 대한 당국의 주관적 대응이라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결과다.(그레인저 인과성 검정(Granger causality test) 결과는 요청하면 제공받을 수 있다.)

요약하면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토대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모형뿐이다. 우리는 경제 전체의 유통 화폐량 변화율과 가치의 변화율, 즉 상품 생산에 투입한 노동시간의 변화율 사이의 차이를 측정해 인플레이션 가치율을 산출한다. 가치의 변화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힘이 맞물린 결과다. 한편으로 자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노동자 수가 늘거나 하루 또는 연간 노동시간이 길어져 전체 노동시간이 증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노동시간 증가세가 둔화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가치론에는 이 연재 2부에서 마브루데아스(Mavroudeas) 등이 강조한 수익성과 투자 증가의 역할뿐 아니라, 역시 2부에서 샤이크(Shaikh)가 제기한 화폐의 역할도 함께 들어간다. 이 두 요소를 결합해 우리의 이론을 도출한다. 현대 경제에서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으로 이루어진 통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화폐를 관리한다. 통화당국은 경제 상황에 대한 자체 판단에 따라 통화 공급량을 조절한다. 이것이 주관적 요소이며, 객관적 요소인 가치 증가와 결합해 인플레이션을 결정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함의가 나온다. 공식 소비자물가지수(CPI)GDP 디플레이터(GDP deflator)로 측정한 인플레이션율은 모두 우리가 산출한 인플레이션 가치율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그러나 1949~2019년 연평균 인플레이션 가치율은 5.2%, 소비자물가지수 기준 3.4%GDP 디플레이터 기준 3.1%보다 훨씬 높다.

이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가치 기준, 즉 상품을 얻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측정할 경우 공식 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보다 훨씬 적게 상승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문제는 4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본다. 또한 4부에서는 2020년 팬데믹 경기침체가 끝난 뒤 인플레이션이 왜 급등했는지, 그리고 1982~2019년의 디스인플레이션 시기가 끝난 뒤 이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다룬다.

[출처] Part three a value theory of inflation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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