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미국에서는 사회보장연금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며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양당이 의견을 같이한다. 그런데 그 ‘조치’에는 거의 언제나 연금 급여를 대폭 삭감하는 방안이 들어간다.
이러한 주장에도 어느 정도 사실은 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사회보장연금 신탁기금은 2033년부터 예정된 급여의 79%에도 못 미치는 금액만 지급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설명은 너무 많은 베이비붐 세대를 너무 적은 수의 노동자가 부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난달 지적했듯이, 이는 문제의 본질을 크게 왜곡한다.
사회보장연금의 문제는 인구구조가 아니라 소득분배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소득이 상위 계층으로 재분배되면서 사회보장연금의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소득이 상위 계층으로 재분배되면 다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사회보장연금에 악영향을 미친다.
1. 급여세 부과 대상이 되는 임금의 비중이 줄어든다.
2. 임금에 비해 연금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3.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회보장연금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달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과세 상한선을 넘어서는 임금소득이 늘었다
사회보장연금 제도를 마지막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했던 1982년에는 과세 대상 임금 상한선을 넘어서는 임금소득이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현재 과세 상한선은 18만 4,500달러다. 그러나 이제는 최고경영자, 월가 금융업 종사자, 고소득 의사와 변호사 등 고액 연봉자에게 소득이 크게 집중되면서 전체 임금소득의 18%가 과세 대상에서 빠져나간다. 이처럼 소득이 상위 계층으로 대규모로 재분배되지 않았다면 현재 사회보장연금의 수입은 거의 10% 더 많았을 것이며, 신탁기금도 훨씬 더 오랫동안 연금을 전액 지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금소득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1980~1990년대에는 소매점 직원이나 조립라인 노동자 같은 일반 노동자에게 돌아가던 소득이 고임금 노동자에게 옮겨간 것이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노동에 돌아가던 소득이 자본으로 더 많이 이전된 것이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이 됐다.
이는 사회보장연금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금 급여는 물가상승률에 맞춰서만 조정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물가보다 빠르게 오르면 임금에 따라 늘어나는 세수도 연금 급여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위해 평균적인 수급자가 15년 동안 연금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간에 임금 증가율이 실제보다 매년 1.0%포인트씩 높았다면 사회보장연금의 수입은 15% 더 많아지는 반면, 지급해야 할 연금 급여는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수입만으로도 향후 예상되는 재정 부족분을 거의 메울 수 있었을 것이며, 현재 신탁기금의 규모 역시 상당히 더 컸을 것이다.
임금이 오른다면 노동자들은 노후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
1960년부터 1990년까지 사회보장연금 세율은 6.0%에서 12.4%로 올라 6.4%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 36년 동안에는 세율이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앞선 30년 동안 사회보장연금 세율이 계속 올랐음에도 대규모 반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회보장연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이 기간 전반부에는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금이 생산성 증가 속도에 맞춰 상승했다면 현재 임금은 실제보다 60% 이상 높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연금을 위해 세금을 1~2%포인트 더 부담할 의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엘리트층은 임금에 관한 약속을 깨뜨렸다: 이제 사회보장연금까지 빼앗기게 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보장연금은 임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제도로 설계됐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노후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일반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의 몫을 제대로 가져가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제도였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랬듯 임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생산성 향상으로 생긴 이익 대부분을 고임금 노동자와 자본이 가져가는 상황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제도를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보장연금 급여까지 삭감한다면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연금을 전액 지급할 여력이 충분하다. 2033년에 예상되는 재정 부족분은 GDP의 약 1.5%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바이든 행정부의 마지막 예산안과 비교해 2027년에 추가로 요구하는 군사비 증가분보다도 적다.
사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이 부족분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정부가 신탁기금이 보유한 국채를 상환할 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신탁기금이 국채를 보유하지 않은 채 정부가 연금 급여를 직접 지급하는 경우와 정확히 같다. 국채는 지급하겠다는 약속일 뿐 실질적인 경제적 자원은 아니다. 국채가 있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연금 급여를 더 쉽게 지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의 상향 재분배는 저절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에게 강요한 결과다
엘리트층은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억만장자 무리에게 막대한 돈이 흘러간 것이 마치 우연히 벌어진 일인 것처럼 가장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시장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완전히 헛소리다. 이들이 우리의 돈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제도를 짜놓은 것이다. 부유층이 자신들에게 부를 재분배한 가장 명백한 수단은 정부가 부여한 특허권과 저작권 독점이었다. 의약품만 보더라도 이런 독점 때문에 매년 비용이 약 6,000억 달러 늘어난다. 가구당 4,50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돈은 제약회사와 그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과 빌 게이츠(Bill Gates)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것도 정부가 오라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소프트웨어에 특허권과 저작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특허권과 저작권 독점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다. 혁신과 창작 활동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이런 독점권의 존속 기간을 줄이고 권리를 약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존속 기간을 늘리고 권리를 강화했다. 독점권을 줄이고 약화했다면 부유층과 최상위 부유층에게 흘러가는 돈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금융 시스템이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것도 의도적인 정책 선택의 결과다. 각 주가 신발이나 의류 판매에 부과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판매세를 금융거래에도 부과한다면 금융 부문의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은행들이 스스로 파산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정부가 반드시 구제해 줄 필요도 없다.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최근 암호화폐 업계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은행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노동법 역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불리하도록 만들고 집행해 왔다. 가장 명백한 사례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를 받는 모든 노동자가 그 대표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하는 계약을 금지한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런 계약을 강제할 수 없는 반면, 노동자가 경쟁업체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약은 강제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다른 노조의 파업을 노조 차원에서 지원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더라도 철강 노동자들이 연대 차원에서 그 자동차 회사에 공급할 철강 생산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정책을 비롯한 여러 정책은 소득을 상위 계층으로 재분배하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의도했던 대로 나머지 사람들의 돈을 가져가 부유층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상향 재분배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보장제도의 재정 기반까지 약화되자, 이들은 사회보장연금을 삭감하려 한다.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에 맞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사회보장연금 급여가 지나치게 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이 우리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 데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보장연금은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꾸준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다수의 의제’에 실린 <사회보장연금을 지지하고 강화하라>(Support and Strengthen Social Security)를 참고할 수 있다. 엘리트층이 사회보장연금 삭감을 관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그들의 거짓말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할 민주당 인사들을 끌어들여 그 거짓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초당적’ 방안을 내놓을 것이다.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미국 사회에는 사회보장연금을 지급할 돈이 충분히 있다. 다만 부유층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너무 많이 가져간 탓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만으로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해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부유층에게 넘겨준 돈 가운데 일부를 되찾아오는 것이다.
[출처] First, They Took Our Wages; Now They Want Our Social Security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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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