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팬츠 유행이라는 편안한 코르셋:자본주의적 재생산과 여성

출처:Veii Rehanne Martinez, Unsplash+

2020년대로부터 통 넓고 편안한 바지 와이드팬츠의 재유행이 돌기 시작했다. 2000년 대 초반은 여성에게 스키니진과 하이힐이 최신 트렌드였다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타이트한 실루엣은 여성스러움의 기준이자 사회적 미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그러나 1900년대에 지속적으로 유행했던 와이드팬츠가 최신 트렌드로 재유행을 선보여 패션 업계의 상위권으로 소비하는 하의로 복귀했다. 2026년 현재 와이드팬츠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편안함의 미학으로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몸을 조이지 않는 여유로운 실루엣은 즉,‘편안함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여성 해방에 조금 더 자리잡았다다만 이러한 이면에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논리가 작동하며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지만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자본을 필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편안함의 이데올로기

와이드팬츠는 편안함이라는 해방의 언어로 포장되지만실제로는 또 다른 시장의 규율 형태일 수 있다오늘날 소비하는 패션 산업의 편안함은 단순한 신체적 자유가 아니라소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편안한 모습의 여성의 이면에는 여전히 세련되고 예뻐 보여야 하는 과거의 코르셋이 작동하며이 규율은 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몸을 상품 소비로 통제한다패션 시장 산업은 편안함이라는 감각을 수출하고여성은 그 감각을 소비하며 스스로를 자유로운 소비로 포장하여 규율한다결국편안함의 이데올로기는 표면적으로 해방을 보여주지만실질적으로는 해방이 아닌 과거 코르셋의 형태를 노골적인 통제 대신 자유·자기관리·자기표현의 형태 영역으로 여성의 소비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에 포함된다.

과거의 하이힐·스키니진보다 현재 와이드팬츠가 착용하기 편해져 유행으로 따라와 패션 자유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다만 과연 자유의 폭이 넓어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와이드팬츠의 유행은 그저 과거 코르셋의 형태를 바꾼 새로운 규범적 형태의 편안한 코르셋으로 자본주의 아래에 여성의 자본을 모으는 형태의 새로운 상품적 가치다자본주의 시장에서의 패션 산업계 여성 소비자의 자본은 여성의 몸과 해방의 욕망을 통해 축적하는 새로운 상품적 규범으로 작동한다.

소비를 통한 자기실현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자기실현은 점점 더 소비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나답게 산다’,‘나를 표현한다는 말은 이제 패션과 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슬로건으로 자리를 잡았다이는 자유의 상징으로 보이지만사실상 자본주의 시장에 의해 규정된 모델을 수행하는 일에 가깝다.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이를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 포섭(neoliberal co-optation of feminism)”이라 부르며해방의 언어가 자본주의에 흡수되어소비를 통한 자기실현(self-realization through consumption)’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변했다고 지적한다여성은 자유를 느끼기 위해 소비하고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한다그러나 이 자기실현은 자본이 설계한 욕망의 체계 안에서만 가능하며결국 해방이 아닌 체제의 자발적인 순응을 의미한다.

와이드팬츠의 유행도 이러한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 구조의 일부이다소비를 실현해야만 하는 이 구조 속에서 편암함과 자유로움이라는 착각을 소비해야만 얻을 수 있다결국 이러한 소비를 통한 해방은 편안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코르셋이며자본주의 아래에 존재하는 수동적인 자기실현에 불과하다.

상품물신화와 하이퍼소비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상품물신화(commodity fetishism)의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관계로 전도했다고 보았다사람들은 상품의 배후에 있는 노동과 착취의 관계를 잊고물건 자체가 스스로 가치를 지닌 것처럼 착각한다이때 상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사회적 의미와 욕망의 대상이 된다인간은 더 이상 사람을 통해 관계를 맺지 않고상품을 매개로 관계를 맺는다상품은 인간의 노동을 은폐하고 교환가치라는 형태로 사회적 관계를 왜곡한다한 물건의 가치는 실제 노동의 총량이 아닌 시장에서의 교환관계로 정의된다이 과정에서 상품은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인간의 노동과 관계가 그 안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의 소비를 행복·편안함·자유의 기호를 소비하는 행위로 보았다그는 소비가 단순히 경제활동이 아니라 의미와 정체성을 구매하는 사회적 행위로 말한다현대의 소비자는 상품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그 상품이 상징하는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위치를 구성하며 이러한 현상은 하이퍼소비(hyperconsumerism)하고 말한다하이퍼소비는 필요의 충족을 넘어상품의 기호 자체를 소비하는 상태를 말한다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물건이 가지는 정체성과 가치자유의 상징을 얻기 위해 소비한다따라서 소비는 해방의 행위가 아니라 자본이 만들어낸 기호의 언어 안에서 수행되는 연출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통해 인간의 노동이 은폐된다고 보았다면 보드야르는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마저 상품의 기호속에 흡수된다고 본다결국 현대의 소비자는 자유롭게 소비하는 주체가 아닌 소비를 통해 자유가 증명되도록 강요받는 자본주의의 착취대상즉 소비노동자로 살아간다.

코르셋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코르셋은 사라졌지만그 형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패션 산업 속 여성은 더 이상 생산자뿐만이 아닌 소비노동자로서 존재하며편안함을 추구하는 행위조차 자본의 논리 안에서 수행된다편안함은 더 이상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자본이 설계한 소비의 의무가 된다결국 여성은 해방을 소비함으로써 다시 자본의 순환 속으로 포섭된다와이드팬츠는 과거의 코르셋에서 자본이 만든 새로운 편안함의 코르셋이다결국 진정한 해방은 소비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자본에 흡수된 해방의 언어에서 벗어난다.

[출처]

-“Feminism, Capitalism, and the Cunning of History” (New Left Review, No. 56)

-Baudrillard, J. (1998). The Consumer Society: Myths and Structures (C. Turner, Trans.).

-Marx, K. (1867). Capital: Volume I.

-『자본론』 제1권 1장 4절 —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The Fetishism of Commodities and the Secret Thereof)”

덧붙이는 말

정성결은 대학생이다.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자본과 젠더 의제를 중심으로 일상과 사회 구조를 연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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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소비 와이드팬츠 코르셋 자본주의적 재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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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너무 좋은 칼럼이네요^-^ 와이드팬츠가 편안함의 코르셋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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