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폭탄 테러, 대리전이 시리아의 취약한 아사드 이후 체제를 괴롭히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극단주의 세력 내부의 분열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2011년 8월 어느 날 밤, 살라피 극단주의 작전요원들이 어둠을 틈타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넘어왔다. 이들 중에는 이라크 내 알카에다 지부였던 이라크 이슬람국가(ISI) 출신의 숙련된 지휘관들도 있었고, 그들은 국경 너머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받고 선별되어 파견된 인물들이었다.
당시 이들의 임무는 ISI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와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 양측 모두로부터 승인받은 작전이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이들은 ‘자바트 알누스라(Jabhat al-Nusra, 누스라 전선)’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공식화하며, 오늘날까지 시리아 전장을 규정하고 있는 10년 간의 폭력적 분열의 토대를 세웠다.
15년이 지난 지금, 암살과 폭탄 테러는 시리아 전후 질서의 가장 뚜렷한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표적 작전은 새로 등장한 권력 구조의 불안정성과 극단주의 분파의 해소되지 않은 유산, 그리고 다마스쿠스 붕괴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은밀한 네트워크의 생존을 드러낸다.
어떤 작전은 명확한 주체가 드러나고, 어떤 작전은 익명 속에 이루어진다. 이는 살아남은 세포조직 간의 은밀한 전쟁, 내부 복수극, 혹은 국가 연계 보안작전으로 해석되며 여러 이론을 낳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을 하나로 보면, 비활성화되지 않고 형태만 바뀐 채 살아남은 분열한 이슬람 극단주의 질서의 여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의 기원
누스라 전선의 기초는 ‘아우스 알모술리(‘Aws al-Mosuli)’라는 시리아인이 2011년 바그다디에게 제출한 25쪽 분량의 제안서에서 출발했다. 바그다디와 자와히리가 동시에 승인하자, 모술리는 아부 줄라이빕 알우르두니, 아부 아나스 알사하바, 아부 오마르 알필리스티니, 살레 하마, 아부 아흐마드 후두드 등 다섯 명과 함께 시리아로 넘어갔다. 이들은 아부 마리아 알카흐타니로부터 환영받았고, 이 일곱 명이 시리아 내 알카에다 조직의 핵심이 되었다.
2012년 1월, 이들은 누스라 전선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등장했고, 모술리는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Abu Mohammad al-Julani)’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현재는 자칭 시리아 대통령 아흐마드 알샤라(Ahmad al-Sharaa)로 활동 중이다.)
몇 달 만에 누스라는 시리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라카(Raqqa), 데이르에조르(Deir Ezzor), 이들리브(Idlib), 알레포(Aleppo) 일부와 데라(Deraa) 지역까지 장악했다. 이들은 시리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장 세력이 되었다.
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아랍군과 싸웠을 뿐 아니라, 초기 반란 속에서 등장한 다양한 반군 조직들을 흡수하거나 배제하거나 충돌했다. 노련한 전투원, 밀수 경로, 지역 후원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빠르게 확장했고, 외국인 전투원들도 대거 유입되었다. 서방 언론은 누스라의 알카에다 연계에 주목했고, 튀르키예와 카타르 같은 지역 강국들은 서로 경쟁하는 반군 조직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 움직였다.
균열: 줄라니 vs 바그다디
누스라의 급부상은 이라크에 기반을 둔 알카에다 세력과의 갈등을 불러왔다. 2013년 초, 바그다디는 자신의 세력과 누스라 전선을 통합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다마스쿠스 주요 인사 암살, 튀르키예 테러, 비순니파 정화, 알카에다식 통치 체제 수립 등을 요구했다.
줄라니는 이를 거부하며, 누스라는 알카에다 수뇌부에 충성하는 독립 조직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갈등은 곧 공개적인 분열과 시리아 전역에서의 영토 충돌로 이어졌다.
자와히리는 줄라니 편을 들며 합병을 반대했고, 바그다디는 이를 거부하며 알카에다와 결별하고 ISIS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옛 동지들 사이에 이념적·지리적 내전이 시작되었다.
누스라 전선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일부는 줄라니에 남았고, 일부는 ISIS로 이탈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Ahrar al-Sham 등 제3 세력에 합류하며 거리를 뒀다.
중앙집권 vs 분권: 극단주의 내부의 균열선
이 분열은 더 깊은 이념적 차이를 드러냈다. 줄라니는 지역 특성에 맞춘 자율 세포조직 운영을 주장한 시리아 전략가 아부 무사브 알수리의 분권형 테러 모델을 따랐다. 반면 바그다디는 엄격한 중앙통제를 주장한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모델을 계승했다.
줄라니는 자와히리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립성을 유지했고, 바그다디는 절대권력을 추구하다 경쟁 세력을 소외시켰다.
합의에 기반한 토착화된 ‘에미리트(emirate)’와 일방적으로 강요된 ‘칼리프 국가(caliphate)’ 사이의 충돌은 피의 숙청, 마을 학살, 도시 내 전투로 이어졌다. 각 세력은 자신들이 신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HTS 탄생과 새로운 이슬람 극단주의 연합
ISIS에 밀려 고전하던 누스라는 ‘자바트 파테흐 알샴(Jabhat Fateh al-Sham)’으로 개명하며 알카에다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는 또 다른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 공동 창립자인 아부 줄라이빕과 아부 카디자가 탈퇴해 후라스 알딘(Hurras al-Din)을 결성했고, 이는 시리아 내 알카에다의 존재를 부활시켰다.
줄라니는 다시 움직였다. 2017년, 파테흐 알샴을 누르 알딘 알젠키, 리와 알하끄, 제이시 알순나, 안사르 알딘 등과 통합해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결성했다. ISIS가 후퇴하자 HTS는 이들리브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구원정부(Salvation Government)’를 세워 튀르키예와의 국경 통제권을 독점했다.
HTS는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경쟁 세력을 억압하고, 소규모 조직들을 강제로 흡수했으며, ISIS와 후라스 알딘 모두와 휴전을 협상했다. 미디어 조직을 확대하고 행정기관도 구축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단순한 영토 통제를 넘어섰다. HTS는 세금 체계를 만들고 NGO를 규제했으며, 통신망을 감시했다. 보안 부서는 경쟁 세력의 지휘관들을 암살하거나 납치했다. 국제 싱크탱크는 줄라니가 서방의 합법적 협상 파트너로 ‘재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창립 세력의 생존자들은 누구인가?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원년 멤버 일곱 명 중 현재까지 활동 중인 인물은 줄라니와 아부 아흐마드 후두드뿐이다. 나머지는 살해당했거나, 축출되었거나, 실종되었다.
줄라니의 알카에다 탈퇴에 반대한 아부 줄라이빕은 체포됐다가 풀려났지만, 데라로 이동하던 중 암살당했다. 아부 마리아 알카흐타니는 2024년 국제연합군과의 협력 혐의로 잠시 구금되었지만, 이는 HTS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후두드는 줄라니에게 카흐타니가 쿠데타를 계획 중이며, 미국과의 연결을 이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석방된 지 몇 주 만에 카흐타니는 선물 상자에 숨겨진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살레 하마는 활동가 살레 하므위와 자주 혼동되지만, 누스라 창립 멤버로 ‘아스 알시라아 피 알샴’ 계정을 운영했다. 그는 내부 규율 위반과 살라피 이념 비판으로 2015년에 축출되었다. 아부 오마르 알필리스티니와 아부 아나스 알사하바는 자취를 감췄고 생사는 불분명하다.
줄라니는 시리아 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가 축출된 이후 권력을 강화했고, 본명 아흐마드 알샤라(Ahmad al-Shara)로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후두드는 ‘아나스 카탑’이라는 이름으로 내무장관이 되었다. 반군 세력은 시리아의 새로운 국가가 되었다.
아사드 이후의 그림자 전쟁
아사드가 축출된 직후, ISIS와 HTS 사이에는 암묵적인 휴전 상태가 유지되었다. ISIS는 공격 대상을 소수 종파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주도 시리아민주군(SDF)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2025년 11월, 시리아 신정부가 국제연합군에 합류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ISIS는 새 정권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성명에서, ISIS는 이들리브와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시리아 군인들과 정부 인사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ISIS는 새로운 군대를 “배교자 집단”이라 부르며, 차량 폭탄, 급조폭발물(IED), 암살 공격을 동원해 작전을 확대했다.
일부 공격은 책임을 주장한 집단이 없었다. 교회 폭탄 테러와 미군 병사 2명이 사망한 타드무르(팔미라) 작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이 공격의 배후로 ISIS를 지목했지만, 시리아 내무부는 범인이 내부 요원이었으며 극단주의에 감염돼 해임 절차를 밟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슬람주의 운동 전문가 마헤르 파르갈리(Maher Farghali)는 《더 크레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작전이 모두 ISIS 소행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후라스 알딘 같은 집단이나 무소속 무장세력들이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는 시리아의 무장 세력이 여전히 얼마나 분열해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위장 조직과 전략적 부인
ISIS 계열 이념을 따르지만 정체는 불분명한 그림자 조직 ‘사라야 안사르 알순나(Saraya Ansar al-Sunna)’의 등장은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이 조직은 여러 고위급 공격의 책임을 주장하면서도, ISIS와의 공식 연계를 부인했다.
파르갈리는 이런 위장 조직들이 ISIS가 직접 책임을 지는 부담 없이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해주며, 정치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모집 체계를 간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대리조직들은 폭탄 테러를 수행하면서도 ISIS 본부의 개입을 가리고, 시리아 신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하되 보복을 유도하지는 않으려는 전략을 쓴다.
파르갈리는 이런 공격이 ‘통제되지 않는 자발적 행위’라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이 공격들이 명확한 표적 패턴을 따르고 있으며, HTS에서 Ahrar al-Sham까지 과거 분파 내에 깊숙이 침투한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후 폭력, 종파 학살, 국제 제재
초기 내분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국방부 산하 무장 세력들은 일시적인 안정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폭력은 이제 시리아 내 소수 종파로 향하고 있다. 특히 알라위파와 드루즈 공동체가 표적이 되고 있다.
2025년 3월, 무장 단체들이 해안가 알라위파 마을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 7월에는 드루즈 공동체가 밀집한 수웨이다(Suwayda) 지역에서도 유사한 만행이 벌어졌다. 이 사건들은 국제 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초래했다.
영국과 유럽연합은 25사단과 술탄 술레이만 샤 여단의 사령관 모하메드 알자심(일명 아부 암샤), 그리고 함자 사단의 사이프 알딘 불라드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들 부대는 튀르키예가 후원하는 시리아국가군(SNA) 소속이며, 살인, 고문, 강제이주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미 아프린(Afrin) 지역에서의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유엔 차원에서는 줄라니와 후두드만이 테러 리스트에서 제외되었고, 나머지 시리아 신정부의 군 지휘관들은 여전히 국제 테러리스트로 지정되어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시리아의 새 통치자들은 이념 갈등, 은밀한 경쟁, 내재한 무장 네트워크라는 유산에 직면해 있다.
그들이 맞서는 것은 백지 상태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내부 배신과 충성의 이동으로 점철된 오래된 전장이다.
현재의 지속적인 폭력은 극단주의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은 분열, 파벌 정치의 구조, 그리고 외부 세력과 국내 권력 모두에게 여전히 유용한 그림자 세력들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시리아의 정치 전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국경을 지키고 헌법을 쓰는 데 달려 있지 않다. 문제는, 아직 어둠 속에서 작동하는 병렬 구조들을 국가가 진짜로 통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출처] Fragmented and armed: The hidden wars of post-Assad Syria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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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더 크래들(The Cradle)에 실린 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