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먼도프 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열린 푸틴–트럼프 회담은 중요한 장막을 몇 개 거둬냈다. 이 회담은 미국이 러시아를 동등한 강대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유럽은 미국에게 그저 유용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출처 : 트럼프 공식 페이스북
알래스카 회담은 우크라이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계 두 핵강국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 핵 충돌의 고속열차를 멈추기 위해 신뢰를 재건하려는 시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고려하면 확실한 보장은 없었다. 트럼프가 직접 주도한 이번 고위급 회담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고, 그럼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이 사실상 러시아를 동등한 강대국으로 인정했다는 점만으로도,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의 고위급 외교 복귀를 의미한다.
한편, 유럽은 무력한 지도자들을 줄줄이 워싱턴으로 보내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지정학적 무의미성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트럼프와 푸틴이 알래스카를 회담 장소로 정하기 이전부터 비공개로 합의한 핵심 내용은 여전히 비밀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알래스카 회담을 “10점 만점에 10점”으로 평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게감은 충분하다.
모스크바 측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단과 직접 연결된 3:3 비공식 포맷(당초 5:5로 계획됐으나 재정장관 안톤 실루아노프 등은 별도로 의견만 제시)이 강조한 핵심 합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푸틴이 미국에 직접 강력히 요구한 것은 우크라이나로의 모든 미국산 무기 직송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치명적 무기 지원을 급격히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 단계 이후 공은 유럽으로 넘어갔다. 소식통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우크라이나 전체 예산 800억 달러 중 자체 조달은 20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세수만 620억 달러를 걷는다고 주장하지만, 인구는 약 2천만 명에 불과하고, 전장에서 100만 명 이상을 잃었으며, 산업 기반은 파괴됐고, 마이단 사태 이전의 영토 중 70%도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완전히 허구다.”
따라서 유럽, 즉 나토(NATO)와 EU는 중대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둘 다 동시에 하려 한다면, EU 자체가 더 빨리 붕괴할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직접 남긴 핵심 발언을 비교해보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을 끝내는 최선의 방법은 휴전 협정이 아니라 평화 협정을 직접 체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휴전은 쉽게 무너진다.”
또한 러시아 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분쟁 종식을 위한 러시아 측 조건을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상세히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향후 협상 결과에 대한 책임을 키예프와 유럽에 직접 부과했다는 점이다.”
두 초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수렴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알래스카에서 테이블에 오른 브릭스
알래스카에서 푸틴은 러시아만이 아니라 브릭스 전체를 대표하고 있었다. 트럼프와의 회담이 발표되기 전부터,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먼저 통화했다. 결국 신(新)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의 이번 장을 쓰는 건 러시아-중국 전략 동맹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브릭스 주요 국가 정상들은 촘촘히 연결된 전화외교를 진행했고,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맞서기 위한 브릭스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알래스카에서 푸틴은 작은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의 말이다. “당분간 러시아산 원유 구매자들에 대한 관세는 필요 없다. (…) 다만 2~3주 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예상 가능한 변동성에도 미국과의 고위급 대화를 통해 러시아는 브릭스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직접 추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여기에는 이집트와 UAE 같은 회원국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제재와 관세, 러시아 혐오 확산 때문에 유라시아 경제 통합에서 배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이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은 여전히 시온주의 축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푸틴은 둘 다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의 속내는 명확하다. “키예프의 골칫덩이 배우”를 제거하고 싶지만, 과거 미국식 쿠데타나 체제 전복 전술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러시아 광물 자원과 북극 개발과 연계된 미래 초대형 무역 거래다.
푸틴 역시 국내 비판 세력을 관리해야 한다. 서방 언론이 퍼뜨린 “자포리자와 헤르손 전선을 동결하는 대신 도네츠크를 얻는 빅딜” 시나리오는 완전한 허구다. 러시아 헌법상 불가능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푸틴은 미국 기업들의 러시아 내 진출 허용 여부, 특히 북극 개발과 러시아 극동 지역이라는 연방 우선 전략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문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결국 결론은 단순하다. “돈을 따라가라.” 미국과 러시아 양측 올리가르히(재벌·권력 엘리트) 모두 다시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로 복귀하길 원한다.
출처 : 트럼프 공식 페이스복
패배한 돼지에 바른 립스틱
푸틴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라브로프는 “소련 스타일” 패션으로 회담의 ‘맨 오브 더 매치’로 불렸다. 푸틴은 150분간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배경과 논리를 상세히 설명했고, 장기적 평화의 조건을 명확히 제시했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네오나치 민병대 및 정당 해체, 나토의 추가 확장 금지.
알래스카에서 어떤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든,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전략적 숨통을 트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양측의 영향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합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럽 대서양주의 진영은 공포에 질렸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유럽 정치 엘리트들의 거대한 돈세탁 창구이기 때문이다. 이미 EU의 관료 체계는 회원국과 납세자를 파산시켰지만, 트럼프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글로벌 다수”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의 대서양주의 전략이 붕괴하고 있음을 드러낸 신호탄이다. 미국은 이제 순종적인 유럽을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은 미국산 고가 무기를 수십억 달러어치 사줄 명분을 잃게 된다.
동시에, 미국 재계가 러시아 자원에 군침을 흘리고 있음에도 워싱턴의 진짜 목표는 유라시아 통합 차단이다. 이는 곧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새로운 다극 세계 질서를 설계하는 모든 다자 기구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나토(NATO)는 패배가 명백해지는 상황에서도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그저 “패배한 돼지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심층국가(Deep State)가 다음 ‘영원한 전쟁’으로 넘어가기 위한 출구 전략을 포장하려는 것이다.
푸틴과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브릭스, 그리고 글로벌 다수는 환상에 빠져 있지 않다.
[출처] What really happened in Alaska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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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 에스코바르(Pepe Escobar)는 <더 크래들>(The Cradle)의 칼럼니스트이자 <아시아 타임즈>(Asia Times)의 편집장이며 유라시아를 전문으로 하는 독립 지정학 분석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