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민간 중심 시장 모델은 이미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6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공공재생에너지 국제심포지엄’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는, 30년 이상 지속되어온 민간 자본 중심의 시장화된 에너지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public pathway)’를 짚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공공재생에너지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정진욱·박지혜·허성무 의원,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 진보당 정혜경 의원의 공동주최해, 세계 각국에서 추진 중인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흐름을 조망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안적 경로를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 참세상
스위니는 "전 세계 기후·에너지 정책의 지배적 흐름이었던 민영화와 ‘넷제로(Net-zero)’가 다수의 국가에서 포기될 위기에 놓였다는 점은 이제 주류 정책 담론에서도 인정되는 사실"이라며 우리 앞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트럼프나 EU처럼 기후정책 자체를 약화하거나 포기하는 길, 둘째는 지금까지처럼 민간 투자자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장 메커니즘을 고수하는 길이다. 스위니는 이 두 가지 경로는 모두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며, 우리의 실질적 대안은 기후 목표는 유지 또는 강화하면서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기반으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공공적 경로'라고 강조했다.
그는 멕시코, 콜롬비아, 미국 뉴욕주 등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즉흥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 '목적 의식적으로' 에너지의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통한 에너지 민주주의를 탈환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운동 역시 이 "에너지를 공공의 소유로 되돌리려는 전 지구적 흐름"의 중요한 일부라고 평했다.
아울러 공공재생에너지의 경제적 강점도 짚었다. 민간 기업은 정부와 맺은 계약을 근거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사업을 진행하면서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게 된다. 반면 정부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전기 판매 수익으로 공공의 자산을 확충하고 계약의 민주적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장점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와 함께 '에너지 요금의 안정성을 통한 에너지 접근권 보장'과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권리 실현' 등을 공공재생에너지의 장점으로 제시하면서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입법이 반드시 이루어지길"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모델의 실패로 드러난 시점이며, 공공재생에너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참세상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이 지체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이 민간 자본 중심으로 설계되어 전력산업 전반의 우회적인 민영화를 강화하는 부정의한 방식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중 98%가 민간 자본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해상풍력 사업 허가의 94%가 초국적 에너지 자본을 비롯한 민간 기업들에 주어진 상황이다. 구 실장은 이러한 민영화 흐름이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를 위협할 뿐 아니라,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발전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파괴할 위험이 높다고 비판했다.
구 실장은 공공이 소유하고 노동자와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공재생에너지’만이 "신속한 재생에너지 확대,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존엄한 일과 삶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 저렴한 자금조달과 편익 공유, 환경파괴와 인권침해 최소화"를 위한 최선의 대안임을 강조했다.
베라 웨그만 영국 그리니치대학교 국제공공노련연구소(PSIRU) 소장. 참세상
베라 웨그만 영국 그리니치대학교 국제공공노련연구소(PSIRU) 소장은 “유럽 에너지 민영화의 실패와 공공적 대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유럽이 20년 이상 추진해온 전력 시장 자유화가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웨그만 소장은 “민영화로 가격은 오르고, 소수 기업의 시장 집중도는 강화됐으며, 수많은 소매 전력 기업이 파산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은 심화됐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마저도 에너지 시장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웨그만은 유럽 각국의 사례를 통해 공공 소유와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인 송·배전망은 자연독점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공공이 운영해야 하며, 이를 민영화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심각한 투자 부족과 가격 폭등, 에너지 빈곤 문제가 발생했다고 경고했다. 반면, 전력망과 발전, 소매까지 공공이 일관되게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는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 유럽 내에서 유일하게 전기요금 인상률을 4%로 억제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공공 소유의 강력한 방어 기능을 입증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영국은 그 반대 사례로 제시됐다. 1980년대부터 에너지 산업 민영화를 선도해온 영국은 민영화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과 에너지 빈곤층의 확대, 민간 주주의 배당금 수취 등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됐으며, “이는 공공재를 시장 논리에 맡긴 결과”라고 비판했다. 덴마크의 경우 지역 협동조합 중심의 풍력 확대에 성공했지만, 그 역시 국유 전력망과 공공투자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최근에는 국영 기업이 해외에서 민간 기업처럼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웨그만 소장은 “공공 소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공공 기업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운영 원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에너지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보아야 하며, 한국은 유럽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공공재생에너지 국제 심포지엄 현장. 참세상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노동조합과 기후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한국사회 에너지 전환의 현실과 공공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눴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공공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불평등한 체제를 넘어서는 능동적이고 대안적인 기획”이라고 평가하며,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폐쇄 예정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의 고용 보장과 정의로운 전환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중적 운동의 조직과 국제 연대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김동주 한국환경사회학회 기획이사는 도민이 주체가 되어 모두의 자원인 바람으로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그 이익을 공동체에 환원한 제주도의 ‘공풍화’ 운동을 소개하며, 제주의 경험을 보완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정치적 의지,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온실가스 수치만 줄이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환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의 안전과 존엄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민간 중심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위험과 불안은 지역에, 이익은 자본에 집중시키는 "위험의 재편"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공공이 주도하고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절실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임국현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정책과장도 참여했다. 임 과장은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방향을 소개하며 재생에너지에서의 공공성 확보 방안으로 경기 여주시 구양리, 전남 신안군 등 주민 이익 공유 사례를 참고해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공공 중심'의 재생에너지 전환보다는 "공공과 민간 부문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에 무게를 뒀다.
이에 대해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과거 정부들이 이름만 바꾸어 추진해온 민간 자본 중심의 시장주의적 에너지 전환 정책의 흐름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가 재생에너지 외주화를 강제하는 RPS 제도, 재생에너지 투자 유인이 부족한 경영평가 시스템 등 에너지 공기업 확대의 제약 요인을 걷어내고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적극적 정책 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전환은 계속 지체되고 부정될 것"이라 경고했다.
플로어 토론에서도 "민간과 공공의 조화"를 강조한 정부 입장에 대한 질의와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의 한 활동가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한전이 아닌 SK, GS 등 대기업 계열의 민간 사업자를 중심으로 거래되고, 그 과정에서 민간 기업들이 높은 수수료를 취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런 구조가 과연 공공과 민간의 조화로운 발전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한, 한전이 매일 수백억 원의 이자를 지불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로, 수익성 있는 에너지 사업은 민간에 넘기고 손실은 공공이 떠안아온 구조적 문제를 꼽으며, 한국사회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고도 짚었다.
기후정의동맹 한재각 활동가도 올해 12월로 예정된 태안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폐쇄와 관련된 현황을 환기하면서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바로 앞바다에 해상풍력단지가 새로 조성되지만,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수많은 노동자들이 신규 해상풍력 발전소로 재고용돼 일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공공이 앞에서 길을 닦지만, 결국 민간 자본이 사업을 소유하고 이익을 가져가고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 대한 책임은 피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공공주도'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이라 지적하고 발전노동자와 기후운동의 연대가 만들어낸 공공재생에너지가 진정한 대안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입법 운동에 노동자 시민의 너른 연대를 호소했다.
"세계는 지금, 공공재생에너지". 참세상
심포지엄의 마무리 발언에서 션 스위니는 2000년대 초 독일의 발전차액지원제도(Feed-in Tariff)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지만, 결국 전기요금 부담 증가로 인해 저항을 초래한 사례를 들며 ‘정책 전염(policy contagion)’ 현상을 지적했다. 이후에는 경쟁입찰제도가 또 다른 대안으로 부상했으나, 그 표면적 효과는 사실상 저금리 덕에 가능했던 것이며 현재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런 정책을 ‘좋은 것’이라 여겨 차용하지만, 실제 그 안에 내재된 결함은 간과된다"고 짚었다. 또한 그는 민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정부 기조에 우려를 표하며, "빈번한 전력구매계약(PPA) 재협상과 취소가 공공전력회사의 재정위기를 낳는 등 전 세계적으로 공공과 민간의 관계는 매우 긴장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진정한 해법으로는 "한전의 재통합과 지역·지방정부가 전력 운영에 참여하는 ‘통합된 공공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을 위한 입법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이 법이 논의되고 통과된다면,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중대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 힘을 실었다.
베라 웨그만은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열정과 활발한 토론에 감사를 표하며, 다섯 가지 핵심 메시지를 전했다. 우선"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터빈 등 핵심 기자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포함한 ‘공급망’ 문제를 전략적으로 바라봐야" 하며, 이러한 "핵심 산업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당장 재생에너지로만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스·석탄·원자력 등의 에너지도 얼마간은 필요하다"면서 그것들도 "공공이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안정적 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에너지 접근권의 보장"을 강조하며, "에너지 빈곤과 불평등 심화를 막아야 한다"고 짚었고, 넷째로는 "어렵지만 어디서, 누가 에너지를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감축'의 문제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기후환경운동이 세대와 부문을 넘어 함께 연대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 연대가 국제적으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구준모 활동가는 "공공과 민간의 조화를 강조하는 현재의 논의가 완전한 민영화보다는 나을 수 있지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지체되고 부정의한 전환의 실효적 대안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속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이제 정부가 균형자적 역할에서 벗어나서 공공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한 공격적 변화에 나설 시점"이라 짚고는, 공공재생에너지의 핵심은 "공적 소유뿐만 아니라 민주적 운영, 공적 투자라는 세 요소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구 활동가는 공공재생에너지가 "관료적이고 시장주의적인 기존 공공부문의 속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공공적 가능성을 실현하자는 것임을 깊이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면서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한층 더 성장하고,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참여자들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민간 자본 중심 에너지 전환의 세계적 실패를 함께 확인하고, 에너지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전 지구적 실천의 일환으로서 한국사회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필요성을 톺아봤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는 이번 토론을 시작으로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혁을 끌어낼 너른 연대가 모아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광화문에서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국민동의청원'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본격적인 입법 운동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