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쇼크’ 담론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각 유형은 서로 다른 시간적 관점을 취한다.
○ ‘차이나 쇼크 1.0’은 2010년대 미국 학자들이 과거를 돌아보며 미국의 특정 노동시장이 받은 영향을 요약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다. 이들은 공들인 실증 연구를 통해 그 영향을 규명했다.
○ 2020년대 중반 유럽에서 누구나 입에 올리는 ‘차이나 쇼크 2.0’은 대서양 양안의 정책 전문가들이 쇠퇴하는 유럽 자동차 산업에 닥칠 재앙을 경고하며 제기한 담론이다.
○ 세 번째 유형의 차이나 쇼크 담론은 흔히 ‘차이나 스퀴즈(China squeeze)’라고 부른다. 최근 인도 경제학자 쇼미트로 채터지(Shoumitro Chatterjee)와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Arvind Subramanian)이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 지면에서 제기한 이 담론은 이와 다른, 더욱 사변적인 시간적 관점인 대안 역사의 반사실적 영역을 끌어들인다. 차이나 스퀴즈 논리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혹은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를 묻지 않고 무엇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지를 묻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눈부신 산업화를 이루지 않았고 저숙련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 제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인도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같은 글로벌 사우스 경제가 어떤 경제개발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지를 묻는다.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은 중국이 전기기계와 기타 고숙련 제조업에서 강력한 지위를 구축하면서 이제 ‘차이나 쇼크 2.0’을 일으키는 동시에, 저숙련·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도 계속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흑자는 규모가 크며 지난 15년 동안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실제로 2010년대에는 중국이 저소득국과의 무역에서 기록한 흑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이들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은 이 때문에 저숙련 부문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저소득국 생산자들을 압박한다.
출처: 쇼미트로 채터지·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 「개발도상국을 압박하는 중국의 중상주의(」China’s Mercantilist Squeeze on Developing Countries),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 26-7, 2026년 5월.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이 사용하는 표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조는 필자가 추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개발의 전형적인(canonical) 경로를 보면 각국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이동하고, 먼저 저숙련 제조업을 거친 뒤 고숙련 제조업으로 전환한다(Herrendorf, Rogerson, and Valentinyi 2013). 이를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과거 저숙련 산업을 전문으로 했던 고소득국(HIC)이 제조업 수출시장을 더 가난한 국가에 넘겨주고(cede), 후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1965년 선진국은 의류·가죽·섬유·신발이라는 네 가지 주요 저숙련 제조업 부문에서 세계 부가가치 수출의 약 60%를 차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비중은 감소했고, 처음에는 동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이 이를 이어받았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시장의 약 50%를 차지한다. 문제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더 부유한 선진국들이 그랬듯 가난한 후발국에 수출시장을 계속 넘겨주고 있는지, 아니면 이들과 달리 계속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다.

세 가지 차이나 쇼크 담론 가운데 ‘차이나 스퀴즈’ 논리는 개념적으로 가장 야심 찬 시도를 한다. 무엇보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반사실적으로 상상한 뒤 이를 토대로 중국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모든 반사실적 논증이 그렇듯 이러한 대안 현실을 구성하려면 휴리스틱 모델에 의존해야 한다.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 명제를 제시한다.
첫 번째 기준점은 부유한 국가들이 실제로 산업화를 이룬 역사, 즉 이들이 ‘전형적 경로(canonical path)’라고 부르는 것이다. 각국이 농업에서 경공업과 저숙련 제조업으로 이동한 뒤 가치사슬의 상위 단계로 올라간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이를 비교 기준이자 규범적 기준을 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문별 수출 비중을 두 가지 요인에 따라 조정한다. 첫째는 국민소득으로 측정한 수출국의 기초적인 경제발전 수준이고, 둘째는 해당 산업이 얼마나 국제화됐는가 하는 정도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고소득국이 저숙련 부문에서 높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며, 해당 제품의 국제화 수준이 높아 저소득 경쟁국에 시장을 ‘넘겨주기’ 적합할수록 그 이례성은 더욱 커진다.
이 과정은 어디에서 끝나야 하는가?
여기서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은 두 번째 기준을 제시한다. 이들이 규범적으로 상정하는 세계적 개발 경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숙련 제조업 수출이 각국이 세계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례해 분배된다. 다시 말해 저숙련 제조업에서 특정 국가가 크게 특화하지 않고, 각국이 비례적으로 참여하는 다극적인 세계 개발을 상상한다.
노동집약적 제조업 부문에서는 한 국가가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저숙련 노동력에서 그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과 대체로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유용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 헥셔-올린(Heckscher-Ohlin) 모형에서는 노동자 1인당 부가가치와 수출성향, 즉 생산량 가운데 수출하는 비중이 국가마다 동일하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
이들은 저숙련 제조업이 전 세계에 고르게 분산되는 방향으로 질서 있게 발전해 나가는 이러한 온건한 자유주의적 전망을 기준으로 현실을 평가하고, 저소득국이 ‘차이나 스퀴즈’를 겪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국이 저숙련 산업에서 충분히 빠르게 빠져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수준과 세계화 정도를 감안해도 중국이 저숙련 제조업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마땅히 그래야 할’ 수준보다 훨씬 높다.

인구와 비교해도 중국의 저숙련 제품 수출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이는 다시 엄청난 규모의 일자리를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그 규모를 수천만 개로 추산한다.
그림 4에 포함한 네 개 산업에서 이러한 초과 부가가치 수출은 2022년 1,100억 달러에 달한다. 부록 그림 D.1에 포함한 모든 저숙련 산업을 합하면 초과 부가가치 수출은 3,65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중국이 저중소득국(LMIC)의 수출을 밀어내는 규모는 상당하다.

이 두 주장에는 강한 구조주의적 관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각국의 개발 경로가 서로 비슷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둘째, 적어도 저숙련 제조업에 관한 한 모든 국가가 대체로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현재 세계의 무역 분포가 이러한 가정이 암시하는 모습과 다르고, 중국이 선진국의 경로를 따르지 않은 채 막대한 수출을 유지한다면 그 원인은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저자들은 그 정책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 결국 저숙련 제조업이 ‘균등하게’ 분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형적 경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설정한 것은 논쟁을 위한 도구였음이 드러난다.
차이나 쇼크를 둘러싼 논쟁의 관점에서는 이런 담론을 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사를 설명하는 논리로 보면 당혹스러울 정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 경로는 규칙적이고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데이비드 피시먼(David Fishman)이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개발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개발은 언제 어디서나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이다. 개발은 하나의 과정이라기보다 하나의 프로젝트(project)에 가깝다. 각각의 개발 프로젝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거셴크론(Gerschenkron)이 가르쳤듯이 불균등·결합 발전은 하나의 경로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낳는다. 유럽과 미국이 비교적 일찍 저숙련 노동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달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 스스로 지적하듯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 환경을 누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처럼 엄청난 차이를 산업정책이나 환율조작만으로 정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자신들도 인정하듯 저숙련 산업에서는 산업정책이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저숙련’ 제조업이 계속 유지되는 현상을 압도적으로 잘 설명하는 요인은 복잡한 공급망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효과일 것이다. 실제로 ‘저숙련’이라는 명칭 자체가 핵심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은 1950년대 유럽과 미국의 섬유 수출업체들이 적시생산(JIT) 물류체계를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기 위해 개발 경로 모델에서 세계화 정도를 제거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중국 공장이 세계에 제품을 공급하는 네트워크 자체가 저숙련 산업화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가리게 된다. 중국은 1970년대식 ‘저가 제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제품주기 전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이 무심코 ‘티셔츠’를 언급한 대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에서는 ‘패스트’와 ‘패션’ 모두가 중요하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와 전례 없이 낮은 비용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한 중국의 성공은 결코 저숙련 작업이라고 할 수 없다.
개발 궤적을 똑같은 과정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숙련·기술·노동이 복합적으로 집적되면서 형성되는 고유하고 의도적으로 구축한 프로젝트로 본다면 저숙련 제조업이 인구 분포에 따라 배분돼야 한다는 가정이 왜 모든 역사적 경험과 배치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수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저임금과 저소득만으로 경쟁력 있는 생산기반을 구축할 수는 없다. 레온 랴오(Leon Liao)가 상당히 타당하게 지적했듯이 “국제무역은 인구에 비례해 배분된 적이 없다. 한 국가의 인구가 많다고 해서 세계 수출에서 그와 같은 비중을 차지할 당연한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수브라마니안이 단독으로 또는 공동저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바로 이 점을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논쟁적인 『포린 어페어스』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글에서처럼 중국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산업적 성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또 하나의 현실, 즉 인도의 상대적 실패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널리 인용되는 『포린 어페어스』 글은 저숙련 제품의 수출 비중을 중국에 대해서만 보여주고 인도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이 다른 글에서 했던 것처럼 두 나라를 함께 놓고 보면 상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중국은 기준선보다 훨씬 위에 있지만, 인구 규모가 거의 비슷한 인도 역시 정반대 방향으로 그에 못지않게 이례적이다. 세계 인구 분포와 수천만 개의 ‘압박받은’ 일자리를 상상하는 문제에서 보면, 실제로 상황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이 중·인 두 나라다. 이 그래프가 드러내는 것은 중국의 ‘반칙’이 아니라 인도의 ‘가장 큰 개발 실패’다. 적어도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은 올해 초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출간한 데베시 카푸르(Devesh Kapur)와의 공저 『인류의 6분의 1: 독립 인도의 개발 여정』(A Sixth of Humanity. Independent India’s Development Odyssey)에서 그렇게 주장한다.
인도의 개발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룬 이 책에서 중국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인도의 정치경제가 제공하지 못한 것을 비추는 기준으로 등장한다. 즉 수억 명의 시민에게 대규모 공식 고용을 제공하지 못한 현실을 드러내는 비교 기준이다.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은 1980년대 이후 제조업 세계화를 주도한 나라가 왜 인도가 아니라 중국이었는지 이해하려면, 선진국들이 자유주의적 태도로 국제분업의 자리를 비워줬기 때문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한다. 대신 마오쩌둥 시기 중화인민공화국과 독립 이후 인도의 정치경제를 비교해야 한다. 두 사람은 이렇게 쓴다.
중국과 인도의 대분기는 1978년 덩샤오핑 개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현대사의 큰 역설 가운데 하나는 마오주의가 만들어낸 조건이 이후 산업 세계화를 위한 훌륭한 도약대가 됐다는 점이다. 1980년의 인도와 중국을 비교하면, 교육과 영양 상태가 이렇게 크게 다른 두 나라에서 제조업이 인구 비중에 맞춰 고르게 분포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분명해진다. 다음은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의 자료다. 나는 <차트북> 초기에 이 자료를 다룬 적이 있다.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이 강조하듯, 놀라운 사실은 인도의 성장률이 1980년대부터 빨라졌는데도 구조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도의 공식 고용은 처참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 왜 그런가. 두 사람은 인도가 초기에 뒤처진 출발을 한 데 따른 경로의존적 효과가 치명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언급하는 요인은 길고 무겁다.
우리는 인도 역사 각 단계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다섯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1980년 이전 두 가지 핵심 정책의 유산, 즉 농업을 소홀히 한 것과 국내 민간 부문을 옥죈 것이 결정적이었다. 광범위한 농업 성장이 실패하면서 농촌 산업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농촌 산업화는 지역 수요를 충족하는 데 초점을 맞췄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노동집약적이었을 것이다. 이후 1980년 이후 호황이 왔을 때는 초기 민주주의 체제에서 너무 일찍 도입한 규제와 광범위한 노동보호, 그리고 민간자본 일반과 특히 대자본에 대한 뿌리 깊은 이념적 반감이 기업 규모를 키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 마찬가지로 1991년 이후 개혁도 폭넓기는 했지만 제조업에 필수적인 비교역재 투입요소, 즉 토지·물류 인프라·전력까지 충분히 포괄하지 못했다. 낮은 투자(물류 인프라), 규제(토지), 주정부의 독점 공급 지속(전력), 그리고 남아 있던 사회주의적 요소가 결합해 비용을 효율적 공급 수준보다 75~100% 높게 유지했다. 여기에 공급 측면에서는 정부가 공식 노동시장을 지배하면서 숙련도가 낮은 직종의 임금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다. 이 때문에 민간 부문이 노동집약 산업에서 이 노동력을 고용할 유인이 줄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업과 서비스 수출이 급성장하자 네덜란드병 효과를 통해 임금이 더 올랐다. 즉 성공한 하나의 교역재 부문이 숙련도가 더 낮은 또 다른 교역재 부문, 곧 제조업을 죽이고 잠식했다. 따라서 계획경제 시기의 희소성을 유발하는 정책, 너무 이른 민주주의와 간디식 대규모화 기피, 비효율적이고 독점적인 핵심 비교역재 공급, 거대한 정부, 그리고 지나치게 성공한 숙련집약 서비스업이 차례로 인도의 비숙련 노동 고용 기회를 약화시켰다. 고용 실패는 지나치게 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 정량화하기 어렵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학적 요인도 제조업과 공장 일자리를 약화시켰다. IT 부문의 성공을 보자. 더 나은 노동환경을 갖춘 도시 지역, 예컨대 냉방 시설이 있는 사무실과 좋은 학교, 매력적인 여가시설을 갖춘 곳에 자리 잡으면서 공학·경영 졸업생들이 몰려가는 더 매력적인 일자리가 됐다. … 제조업과 여성 고용을 생각해보자. 인도 사회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어렵게 만들고, 이는 인도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사실에 반영돼 있다(제13장 참조). 특히 공공장소에서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괴롭힘 때문에 여성들이 먼 거리를 이동해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여기에 여성용 기숙사와 숙소를 짓는 데 까다로운 규제가 더해지면서 공장이 여러 교대제로 운영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공장은 여성 노동력이 많은 지역에 자리 잡아야 한다. 기업은 의류공장을 여성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옮기거나 대규모 기숙사를 지어 여성을 공장으로 데려올 수 있지만, 비용이 올라간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할 이유가 있다면, 여성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 건설에 주택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요인 때문에 기회가 열렸을 때, 그 기회의 일부가 중국의 조정에서 비롯됐음에도 인도는 이를 활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다음은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이 2020년대를 설명한 대목이다. 이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와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일방적인 ‘차이나 스퀴즈’ 주장과 현기증이 날 정도로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2022년 의류, 즉 전형적인 노동집약 산업에서 인도의 세계 수출 비중은 3.1%였고 중국은 32%였다. 이는 극도로 실망스러운 결과다. 중국은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부문에서 수출시장을 비우기 시작했고, 이후 지정학적 변화로 투자자들이 대체 투자처를 찾으면서 추가로 더 많은 공간을 비웠기 때문이다. 정점 이후 현재까지 중국은 세계 수출 비중을 약 7.5%포인트 잃었고, 이는 2022년 기준 약 430억 달러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인도의 수출 비중은 3% 수준에서 정체됐지만 베트남과 방글라데시는 각각 3.5~4%포인트 상승했다. 중국의 손실은 인도의 저숙련 수출과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1991년 이후 역동성과 번영을 위한 조건이 마련됐고, 더 흥미롭게도 세계 수출 기회가 열렸는데도 인도는 마치 고임금 경제처럼 행동했다. 역동성의 혜택은 숙련 노동만 누릴 수 있었다. 인도는 물리적으로 풍부한 비숙련 노동력을 경제적으로 비싼 자원으로 바꿔 사용을 억제한 셈이다.
여기서 내가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의 인도 개발 궤적 해석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맥락에서 중요한 점은 ‘차이나 스퀴즈’라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카푸르와 수브라마니안이 가차 없이 열거한 인도 내부의 무거운 제약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인도에 집중하는 이유는 인도가 중국과 대비되는 가장 중요한 사례이며, ‘차이나 스퀴즈’ 담론에서 암묵적으로 상정하는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지는 더 일반적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불완전고용의 중심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나이지리아의 개발을 가로막는 주된 문제가 베이징의 산업정책과 저평가된 위안화가 만들어낸 중국의 값싼 경쟁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미국 노동계급이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중국과의 경쟁인가, 아니면 미국 자체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인가.
유럽의 ‘차이나 쇼크 2.0’ 담론에서도 그랬듯, 핵심은 세계를 정상으로 놓고 중국만 병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산업 황무지, 독일 자동차 산업, 인도의 불균형한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사하지 않은 채 중국만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병리화는 그 자체로 논쟁적 제스처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차이나 쇼크’나 ‘차이나 스퀴즈’ 같은 개념은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를 따라 표현한 ‘비대칭적 투쟁 개념(asymmetrische Kampfbegriffe)’, 즉 ‘비대칭적 대립 개념’ 또는 ‘비대칭적 전투 개념’에 해당한다.
‘차이나 스퀴즈’ 같은 주장이 세계 다른 지역의 엘리트들에게 자국 개발 프로젝트를 되살리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기능을 한다면, 그 자체로는 상관없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담론을 있는 그대로, 즉 동원을 위한 개입으로 봐야 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공론장 한 축, 이른바 ‘산업당(industrial party)’은 지난 20년 동안 바로 이런 반사실적 경제사 문제에 집착해 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에서는 중국의 기술 애국주의자들이 현대 기술을 들고 명나라(1368~1644)로 시간여행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를 상상하는 대규모 대안역사 담론이 발전했다. 그렇게 해서 18~19세기의 ‘대분기’를 피할 수 있었을지를 상상한 것이다. 물론 환상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자극제이기도 했다. 그 메시지는 서구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 대안역사는 극도로 민족주의적이지만, 서구에서는 최근까지 그 존재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산업당 지지자들은 자유주의적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이들은 국제개발의 ‘자연스러운 사다리’를 상정하고 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들은 세계 경제개발의 현실정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의 메시지는 동료 중국인을 향했다. 대안 서사의 구호는 이랬다. 이제 우리가 국가 발전 경로에서 추진력을 얻고 전진하기 시작했고, WTO 가입 초기에도 우리에게 배정됐던 열등한 위치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인문주의적 상상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덩샤오핑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국이 개발의 냉혹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당을 ‘굴욕의 세기’를 안긴 이들에게 상징적으로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태어난 문화적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차이나 쇼크’의 여러 시간성, 즉 회고적·전망적·반사실적 시간성을 생각하면 산업당 담론은 가장 사변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차이나 쇼크를 상상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렇게 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강력한 중국이 전혀 충격이 아니라 현대사의 규정적 사실인 세계를 상상한 것이다.
[출처] Chartbook 464 The"China squeeze" - the politics of development counterfactual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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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