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젠더폭력 살해사건 4주기를 맞아 노동·여성단체들이 일터 내 젠더폭력 근절과 서울지하철의 ‘온전한 2인 1조 근무제’ 시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사건 이후 관련 법과 제도가 일부 바뀌었지만 직장 내 성폭력과 스토킹, 2차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국가와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제190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의 비준 등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는 10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신당역 젠더폭력 살해사건 4주기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노조는 일터 내 젠더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위한 사업주 책임 강화와 서울시·서울교통공사의 외주화·인력 감축 중단, 온전한 2인 1조 근무제 시행을 요구했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신당역 사건을 “직장 내 젠더폭력이자 노동자의 생존권을 짓밟은 명백한 노동안전 참사”로 규정했다. 그는 사건 이후 스토킹처벌법 개정과 스토킹방지법 제정이 이뤄졌지만 직장 내 성폭력과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건 당시 피해 노동자가 홀로 역사 순찰 업무를 수행했던 점을 들어 장비나 교육만으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다며 2인 1조 근무를 위한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2026년 7월 현재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조 전체가 2명뿐인 ‘2인 근무조’는 214개로 전체의 20%에 이른다. 정년퇴직에 따른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2027년 1월에는 이런 2인 근무조가 300개를 넘어설 것으로 노조는 전망했다. 노조는 근무조가 2명뿐이면 역사를 지키는 인력을 남겨야 해 ‘2인 1조 순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규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젠더폭력이 줄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됐다. 김세옥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직장 내 성추행·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2022년 17.3%에서 올해 15.4%로 사실상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젠더폭력을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비율도 72.3%였고, 여성 응답자에서는 77%에 달했다.
김세옥 활동가는 직장인들이 2차 피해를 막을 책임 주체로 사용자와 관리자, 고충처리 부서를 지목했지만 직장 내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본 응답은 59.2%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행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정보 접근 제한 등 구체적인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2인 1조 근무와 함께 젠더폭력 자체를 산업안전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젠더 기반 폭력을 사업주가 관리해야 할 유해·위험요인으로 규정하고, 규제의 중심을 피해 발생 이후 신고와 처리에서 사용자의 사전 예방의무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보호 대상을 넓히고 노동자가 위험 평가와 개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 같은 문제가 ILO 제190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 비준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여성위원장은 “일터의 젠더폭력과 괴롭힘을 개인 간 문제나 가해자 처벌에만 맡길 수 없다며, 국가와 사업주의 예방·보호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로 ILO 190호 협약 비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 등은 1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ILO 190호 협약 비준 전략 국회토론회’를 연다. 노동자권리연구소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이용우 의원, 진보당 손솔 의원 등이 함께 주최한다. 토론회에서는 젠더 기반 폭력과 괴롭힘을 막기 위한 국가 책임과 사업주 의무 강화 방안, 신당역 사건 이후 현장의 변화, 공공부문 젠더폭력 대응 제도, 해외 ILO 190호 비준 사례와 한국의 비준 과제 등을 다룰 예정이다. 노동계는 이번 토론회를 신당역 사건 4주기 추모를 넘어 일터 내 젠더폭력을 산업안전과 노동권의 문제로 제도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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