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이누이트의 오랜 자결권 투쟁

18세기 루터교 선교사들이 도착한 이후그린란드의 이누이트는 자신들이 처음으로 터전을 이룬 땅에서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2026년 1월 17그린란드 누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출처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덴마크 및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린란드를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그곳에 살며 그 땅을 고향이라 부르는 이누이트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서그린란드의 이누이트인 칼라알리트(Kalaallit), 동그린란드의 이누이트인 투누미(Tunumi), 북그린란드의 이누이트인 이누그이트(Inughuit)는 그린란드 전체 인구의 거의 90%를 차지한다그린란드의 총인구는 약 5만 7천 명이며면적은 약 83만 제곱마일즉 21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우리는 북극과 그곳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에서 일하는 북극 인류학자들이다우리가 연구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는 주민들이 스스로를 칼라알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 즉 칼라알리트의 땅이라고 부르는 곳이다영어로는 그린란드로 알려진 이곳은 토착 민족의 나라이며비교적 적은 인구를 가진 이들은 수십 년에 걸쳐 자기결정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칼라알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 영어로는 그린란드(Greenland), 덴마크 왕국의 일부다. 
이 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약 83만 제곱마일(210만 제곱킬로미터)에 걸쳐 약 5만 7천 명이 살고 있다이는 텍사스주의 약 세 배 크기다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의 자치 지역이다.

서쪽에서의 유입

약 5천 년 동안 북서부 그린란드는현재 미 우주군의 피투픽 우주기지(Pituffik Space Base)로 알려진 지역즉 과거의 툴레 공군기지(Thule Air Force Base)를 포함해이 섬의 주요 진입로 역할을 해왔다베링 해협 일대에서 출발한 여러 토착 집단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알래스카캐나다그린란드에 차례로 정착했다.

약 1천 년 전오늘날 그린란드에 살고 있는 이누이트의 조상들은 정교한 기술을 갖추고 이 지역에 도착했다이 기술은 사소한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역동적인 북극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이들은 카약개썰매정교한 작살나무나 뼈에 좁은 틈을 낸 설맹 방지용 고글 등 특수한 기술과 도구를 사용해 동물을 사냥했다또한 동물의 털로 만든 고도로 설계된 의복을 착용해 어떤 환경에서도 몸을 따뜻하고 건조하게 유지했다.

이들의 도구와 의복에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의존하는 존재라는 세계관을 반영하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오늘날 이 지역에 사는 이누그이트 가정들 역시 기후가 따뜻해지는 변화 속에서 사냥과 어업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그린란드 일룰리사트(Ilulissat) 인근에서현지 주민들이 얼음 동굴이 있는 빙산 옆에서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있다. (피어리–맥밀런 북극박물관 소장보도인 칼리지 브라이언 알렉산더 제공)

동쪽에서의 유입

남부 그린란드의 카시아르수크(Qassiarsuk)에서는이누이트가 북부에 도착하던 무렵인 986년에 에리크 레드(Erik the Red)가 최초의 노르드 농장인 브라타흘리드(Brattahlíð)를 세웠다그린란드 국립박물관의 온라인 전시에 따르면그는 아이슬란드로 소식을 보내 다른 이들도 이곳으로 오도록 독려했다이후 여러 노르드 가문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목축 농장을 세웠다.

이누이트가 남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노르드 농민들과 마주쳤다이누이트와 노르드는 교역을 했지만 관계는 때때로 긴장 상태에 놓였다이누이트의 구전 역사와 노르드 사가는 일부 폭력적인 충돌이 있었다고 전한다두 집단은 그린란드의 거대한 빙상을 둘러싼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뚜렷하게 달랐다노르드는 특정 지역에 정착해 살아갔지만이누이트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섬과 만피오르드 일대에서 사냥을 이어갔다.

14세기 초 소빙하기가 시작되고 북반구의 기온이 내려가자노르드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그들의 식민지는 점차 약화됐고, 1500년 무렵에는 완전히 사라졌다반면 이동 생활에 익숙했던 이누이트는 훨씬 유연하게 대응했다이들은 상황에 따라 육상 포유류와 해양 포유류를 모두 사냥했다그 결과 이누이트는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활동의 중심지

그린란드의 현대적 수도인 누크(Nuuk)에는 루터교 선교사 한스 에게데(Hans Egede)의 도착을 기념하는 크고 논란이 많은 동상이 서 있다이 동상은 그가 1721년 이곳에 도착해 자신이 고트호브(Godthåb)’라고 부른 장소에 루터교 선교 기지를 세운 일을 기념한다.

1776년 무렵 교역의 중요성이 커지자덴마크 정부는 왕립 그린란드 무역국(Royal Greenland Trading Department)을 설립했다이 기관은 무역 독점체로서 이후 150년 동안 그린란드 서해안의 공동체들을 폐쇄된 식민지로 관리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누크/고트호브(Nuuk/Godthåb)에 거주하던 일부 칼라알리트 가문은 성직자교육자예술가작가로 이루어진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을 형성했다그러나 통치 권력은 여전히 덴마크 식민 당국이 쥐고 있었다.

한편 소규모 해안 공동체에 살던 칼라알리트 가문들은 동물에 대한 존중과 자원의 공유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경제·사회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동부 해안의 외딴 지역과 극북 지역에서는 식민 지배가 더디게 진행됐다그 결과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나 덴마크계 그린란드인 상인 크누드 라스무센(Knud Rasmussen) 같은 인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현지 주민을 고용하고 교역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16년 덴마크령 서인도제도즉 오늘날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매입하면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이어 1921년 덴마크는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주권을 선언했고이 주장은 1933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에 의해 인정받았다그러나 이 모든 결정 과정에서 그린란드 주민들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세계의 도래

2차 세계대전은 외부 세계를 그린란드의 문 앞까지 끌어들였다덴마크가 나치의 지배를 받게 되자미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그린란드를 방어할 책임을 맡았고 동부와 서부 해안에 군사 기지를 건설했다미국은 군인들과 칼라알리트를 분리하려 노력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고일부 교류와 거래는 계속 이뤄졌다라디오와 방송 뉴스도 퍼지면서칼라알리트는 자신들의 경계를 넘어선 세계에 대한 감각을 점차 갖게 됐다.

냉전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그 변화 가운데에는 새로 건설된 툴레 미 공군기지 인근에 살던 이누그이트 가문 27가구를 카나크(Qaanaaq)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도 포함된다이들은 작은 목조 주택이 지어질 때까지 텐트에서 생활했다.

1953년 덴마크는 헌법의 일부를 개정했다이 개정에는 그린란드의 지위를 식민지에서 덴마크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주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이로써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모든 칼라알리트는 덴마크의 완전한 시민이 됐다이때 처음으로 칼라알리트는 덴마크 의회에 자신들의 선출된 대표를 보내게 됐다.

그러나 덴마크는 동화 정책도 함께 강화했다덴마크 당국은 그린란드어인 칼라알리수트(Kalaallisut)를 희생시키면서 덴마크어와 덴마크 문화를 장려했다그 과정에서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어린이들을 덴마크의 기숙학교로 보내는 정책도 시행했다.

1970년대 누크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 칼라알리트 정치인들이 등장했다이들은 칼라알리수트의 사용을 보호하고 확산시키며그린란드의 사안에 대해 더 큰 통제권을 확보하고자 했다칼라알리수트로 항의 노래를 부른 록 밴드 수메(Sumé)는 이러한 정치적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9년 그린란드 전역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에서칼라알리트 유권자의 상당수가 덴마크 왕국 안에서의 이른바 자치(home rule)’를 선택했다이는 선출된 칼라알리트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가 교육과 사회복지 같은 내부 사안을 담당하고덴마크는 외교와 광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체제를 뜻했다.

그러나 덴마크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향한 요구는 계속됐다. 2009년에는 자치 체제가 자치정부(self-government)’ 정책으로 대체됐다이 제도는 장차 그린란드 주민들이 실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주민투표 이후 협상을 통해 덴마크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명확한 경로를 제시했다자치정부 체제는 그린란드가 광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고 그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외교 사안에 대한 권한은 포함하지 않는다.

오늘날 누크는 분주하고 활기찬 현대 도시다반면 작은 정착지들에서는 사냥과 어업이 여전히 생활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으며삶의 속도도 더 느리다현대의 그린란드는 이런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괄하고 있지만칼라알리트는 자기결정권을 향한 열망만큼은 공유하고 있다그린란드의 지도자들은 이 메시지를 대중에게도그리고 백악관에도 분명히 전달해 왔다.

[출처Greenland’s Inuit Have Spent Decades Fighting for Self-Determination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수전 A. 캐플런(Susan A. Kaplan)는 피어리–맥밀런 북극박물관 및 북극연구센터 관장이며 보도인 칼리지(Bowdoin College) 인류학 교수이다. 제네비브 르무안(Genevieve LeMoine)은 피어리–맥밀런 북극박물관 및 북극연구센터, 보도인 칼리지(Bowdoin College) 큐레이터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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