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Unsplash, Nikhita S
인도의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활동 지역에서 학교와 대학을 세우기 위해 대중 기부와 대중의 노력을 자주 동원했다. 이는 물론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 인도 극우 힌두 민족주의 단체)와 같은 파시스트 조직들이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활동과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두 가지 명백한 점에서 후자와 달랐다. 첫째, 공산주의자들은 교육기관을 자신들의 특정한 세계관만을 전파하기 위해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면 자동으로 공산주의 세계관의 가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대중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향상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기관들은 단순한 선전 수단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기관이었다. 둘째,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이 어린 나이에 사상을 주입하려는 목적에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만 세운 것과 달리, 성숙한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상을 토론하고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대학도 함께 세웠다.
이 두 노력은 다시 말해 교육에 대한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표현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배고픈 자여, 책을 집어 들라”고 썼을 때, 그는 인식을 넓혀주는 해방적 활동으로서 교육을 바라보는 좌파의 태도를 표현했다. 파시스트의 교육관은 이에 정반대였다. 그들에게는 대중의 인식 확장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이며 따라서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진정한 교육은 억압되어야 하며, 그 자리를 파시스트 선전이 대신해야 했다. 좌파가 “배고픈 자여, 책을 집어 들라”고 외칠 때, 파시스트들은 나치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책을 불태우는 일을 장려했다.
오늘날의 신파시스트들도 이 점에서 전임자들을 모방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지적 활동과 지식인 집단 전체에 대해 완강하게 적대적 태도를 보인다. 인도뿐만 아니라 유사한 정권이 존재하는 다른 나라들, 심지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우수 교육기관들의 파괴는 이러한 경향의 표현이다. 인도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기 위해 집행국(Enforcement Directorate, 인도 정부 산하의 강력한 수사 기관)의 압수수색을 벌이고, 그들을 “칸 마켓 갱”(그 말이 무엇을 뜻하든), “뚝데뚝데 갱”(나라를 해체하려는 자들), “도심 나살 분자들”(극좌파 세력) 등으로 낙인찍으며 대중의 적개심을 부추기는 일련의 행동도 모두 이러한 경향의 일부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학들을 공산주의자들로 들끓는 공간으로 간주하며 이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며, 이런 편집증은 신파시스트의 교육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모디 정부는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Jawaharlal Nehru University)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려 시도했고, 비스와 바라티 대학교(Viswa Bharati University)를 마비시키려 했으며, 하이데라바드 중앙대학교(Hyderabad Central University)를 전복하려 했고, 자미아 밀리아 이슬람 대학교(Jamia Millia Islamia)를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델리 대학교(Delhi University)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푸네 영화연구소(Pune Film Institute)를 장악하려 했다(이에 맞서 학생들은 오랜 투쟁을 벌였다). 또한 바라다의 마하라자 사이야지라오 대학교(Maharaja Sayajirao University of Baroda)의 순수미술학부도 장악하려 했다. 이 모든 기관은 독립 이후 주로 세워졌으며, 나라가 진정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기관들이었다. 이에 대한 공격은 국내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말살하려는 가장 기괴한 시도의 하나였다. 이러한 사상에 대한 공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컬럼비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 그리고 미국 내 다른 저명한 교육기관들에 가했던 공격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신파시스트들의 사상 억제와 지적 활동 억압 시도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의문이 있다. 바로 과거에 지식인을 고귀하게 여겼던 나라에서 이러한 시도가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에 있는 누구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의 일반 대중이 지식인, 특히 학자들을 매우 존경했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모디 정부의 지식인에 대한 공격이 예상되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이 점에서 미국은 다소 다른 사례다. 미국은 봉건적 과거가 없었기 때문에, 인도와 같은 오래된 사회들이 전통적으로 지식인에게 부여했던 고귀한 지위를 지식인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 요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도입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이 변화를 최소한 세 가지 방식으로 초래했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소득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확대했다. 지식인과 학자들이 고소득층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노동자 대중에 비해 신자유주의 하에서 훨씬 더 나은 생활을 누려왔다.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들 수 있다. 1974년, 인도에서 밀 1쿼탈(quintal)의 공식 최저지지가격(MSP)은 85루피였고, 중앙대학 부교수의 기본 초봉은 월 1,200루피였다. 오늘날 밀의 MSP는 쿼탈당 2,275루피이고, 중앙대학 부교수의 기본 초봉은 월 131,400루피다. 이 수치를 각각 두 계층의 소득 수준 변화를 대략 나타내는 지표로 삼으면, 학자의 소득은 100배 이상 증가했지만, 농민의 소득은 27배로 증가했다. 즉, 이 기간에 양자의 소득 비율은 3배 이상 확대됐으며, 이 기간은 대체로 신자유주의 시대와 일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대중이 학자나 지식인들과 더욱 소외되는 현상은 전혀 놀랍지 않다.
둘째, 자본주의는 기존 공동체를 해체하는 효과를 가진다. 인도에서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은 자본주의 이전 시기부터 존재하던 공동체 의식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도에 전면적인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해체했고, 그 결과 지식인과 노동 대중 간의 틈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셋째, 이러한 개인주의 경향과 동시에 나타난 세계화 현상은 지식인의 상당 부분이 국내 사회로부터 이탈하고 세계적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역시 그들을 국내 노동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신자유주의는 노동 대중과 지식인 사이의 틈을 더욱 벌어지게 했고, 이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세속주의, 관용의 수호자로 기능하던 지식인을 신파시스트들이 공격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신파시즘의 토대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노동 대중이 지식인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된 것이 사회적 위계와 불평등을 지우는 긍정적인 발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평등한 사회란 특권적 지식인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며, 여기서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자 동시에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이것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교육기관을 세운 이유였다). 따라서 평등주의의 이름으로 지식인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것은 사회를 방향 잃은 배로 만들고, 신파시스트나 사기꾼들이 주도권을 쥐게 할 뿐이다. 다시 말해, 소수 집단이 독점하던 사상을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것과 사상 자체를 파괴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실 날카로운 통찰을 지닌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조차도, 예컨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지식인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교양 있는 부르주아”라고 불렀으며, 이들이 사회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갖고 체제를 교정하고 결함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적으로 둔감하고 자기 몰입적인 지식인만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사회적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후기 자본주의의 주요한 모순 중 하나이며,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분명히 신파시즘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그러나 노동 대중과 지식인 사이의 틈을 극복하고 신파시즘의 패배를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일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인해 가능해지고 있다. 지식인은 이 위기의 희생자가 되었고,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전에 누렸던 특권적 지위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학자의 급여가 농민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지만, 신자유주의 위기 상황에서는 이러한 고소득조차 제때 지급되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인도의 학자들이 겪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은 지식인과 노동 대중의 운명이 신파시즘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서로 엮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파시즘 자체는 바로 그러한 위기 속에서 중심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출처] Intellectuals and Neo-Fascism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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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