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오른 조선 하청 노동자, 97일 만에 "이겨서 땅으로"..."차별·혐오 사라지는 날까지 함께 싸울 것"

"이 땅의 비정규직들, 이 땅의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자랑스러운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일원으로서,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로서,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 나가겠습니다! 투쟁!"

19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 앞, 30m 높이 CCTV 철탑에 올랐던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마침내 "이겨서 땅을 밟았다". 올해 3월 15일, "조선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과 노동자 손해배상 보복조치 철회, 노조법 2·3조 개정" 등을 요구하며 고공에 오른지 97일 만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따르면 한화오션 하청 노사는 지난 17일 2024년 단체교섭 의견 접근을 이뤘고, 19일 합의안에 대한 노조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친 뒤 노사 간 조인식을 진행했다. 지난해 시작된 2024년 단체교섭이 해를 넘겨 마무리된 것이다. 이번 교섭의 주된 합의내용은 △상여금 50% 인상 △상용공 확대 △취업 방해 금지 △산재 예방 활동 등이다.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는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단체교섭이 타결됨에 따라 김형수 지회장은 19일 오후 2시 30분경 크레인을 타고 철탑 아래로 내려왔다. 앞선 오후 1시 40분경에는 장창열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과 이김춘택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이 철탑으로 올라 2024년 임금 및 단체협약서에 서명을 진행했다. 

크레인을 타고 지상을 향하는 김형수 지회장은 힘차게 금속노조의 깃발을 흔들었다. 철탚 아래에는 고공농성에 연대해온 노동자·시민들이 자리해 "김형수 고생했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자"고 외치며  김 지회장을 반겼다. 현장에는 조선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기리며 만들어진 노래인 ‘윤식이 나간다’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형수 동지"를 힘껏 부르며 내려오는 크레인을 바라보던 '말벌 동지'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김형수 지회장 현장 발언 영상. 참세상

땅을 밝은 김형수 지회장은 지친 몸을 일으켜 노동자·시민들 앞에 다시 섰다. 

그는 "지난해 4월 시작된 2024년 임단협 투쟁이 1년 2개월 만에 마무리됐으나 원청 한화오션은 끝까지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면서 "2025년 교섭에서는 반드시 원청 한화오션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고 말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또한 "이제 윤석열은 사라졌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막을 사람도 더는 없다"면서 "하루라고 빨리 몸을 추스르고 원청을 상대로 한 2025년 단체교섭과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복무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고공에 남아있는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과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지부장에 대한 마음도 밝혔다. 김 지회장은 "불굴의 의지로 529일간 고된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박정혜 동지, 127일 동안 고공에 있는 우리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에게 먼저 내려오게 되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두 동지가 땅을 밟을 때까지 함께 연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김 지회장은 또한 "오늘의 결과는 연대 투쟁을 함께 만들고, 광장에서 고공농성 투쟁 의제와 윤석열 파면을 함께 외쳤던 동지들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말벌 동지'들을 비롯해 지난 97일동안 고공농성에 연대해온 여러 노동자·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형수 지회장은 "이 땅의 비정규직들, 이 땅의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자랑스러운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일원으로서,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로서,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 나가겠다"고 힘 주어 말했다. 

이야기를 마친 김 지회장은 녹색병원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이날 김형수 지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이날 농성 해제 직전에 노동조합 측과 협의를 통해 영장 집행을 유보했다. 그러나 경찰은 병원을 향하는 후송차에 함께 탑승해 김 지회장에 대한 구인 상태를 유지하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 병원에서 약식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공용물건무효와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다. 

차별과 혐오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 계획을 밝히는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금속노조와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이날 이번 단체교섭 결과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800%와 비교하면, 불황기에 삭감된 550%를 생각하면 아직 초라하기만 하나, 숙련노동자의 유지, 재생산은 안중에 없고 오직 다단계하청 물량팀과 저임금 이주노동자 고용만 늘리고 있는 한화오션의 탐욕에 브레이크를 걸고, 상용직 하청노동자 고용확대, 임금인상, 차별해소가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값진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97일을 고공에서 투쟁하고 땅으로 내려온 조선소 하청노동자 김형수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10만 조선하청노동자와 함께, 탄핵 광장에서 하나가 되어 연대한 시민들과 함께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더 크고 더 넓고 더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며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과 "광장의 요구였던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재명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또한 "지척에 있는 세종호텔 노동자 고진수는 127일째,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 박정혜는 529일째 고공에서 투쟁하고 있다"면서 "세종호텔의 노조파괴 정리해고에 맞서 원직 복직을 쟁취하고, 니토옵티칼의 먹튀에 맞서 고용승계를 쟁취할 때까지 내가 고진수가 되고 네가 박정혜가 되어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연대를 호소했다. 

97일만에 땅을 밟아 연대 시민들의 손을 맞잡은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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