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위장에 면죄부로 화답한 노동부

'보여주기'와 '생색내기사이 그 어딘가

2025년 5월 19우리에게는 MBC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문화방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되었다이번 특별근로감독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잃은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서울서부지청이 공동으로 실시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이번 근로감독의 범위에는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에 대한 괴롭힘 행위 유무뿐 아니라 ㈜문화방송 전반의 조직문화인력 운영 상태 등도 포함되었다고 한다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김문수 대통령 선거 후보도 "내가 이번에 오요안나 사건 있을 때 MBC에도 내가 바로 이거는 근로자가 아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아니냐 이런 고용노동부 판결을 끌어냈다"고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근로감독 결과를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특별근로감독은 실망스러움을 넘어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된 본질적인 원인을 배반하였다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의 본질은 방송사가 기간제법상 계약직 사용 제한을 피해 2년을 초과하여 고용하고 싶으면서도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자 '위장 프리랜서고용을 하면서 발생한 괴롭힘 사건이다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신분이었다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할 수 있었으며그 경우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인 MBC는 조사기간 동안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만 하고조사 결과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면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따라 후속 조치가 가능하다.

위장 프리랜서 고용이 없었다면 괴롭힘 자체는 막지 못했더라도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어쩌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적용되었다면괴롭힘 신고를 고려해 가해행위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MBC는 기상캐스터 사이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였고괴롭힘을 묵인하였다. MBC가 괴롭힘에 책임이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를 포함한 기상캐스터 전체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그러면서기상캐스터가 포함된 보도·시사국 프리랜서 35명 중 25명은 근로자라고 판단하고임금체불 등 기타 노동관계법 위반을 적발했다고 한다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에 대한 괴롭힘으로 촉발된 근로감독이 기상캐스터 직군만 비껴간 것이다.

2025년 5월 19일에 발표된 MBC 특별근로감독에 대한 고용노동부 보도참고자료

노골적으로 퇴행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 기준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故 오요안나를 포함한 기상캐스터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로 ① MBC와 계약된 업무 외에는 문화방송 소속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하지 않은 점② 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하거나엔터테인먼트사에 회원 가입을 하고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이나 개인 영리활동을 하여 왔으며그 수입이 전액 기상캐스터에게 귀속되는 점③ 기상정보 확인원고 및 CG초안 작성 등 주된 업무수행에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기상캐스터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점④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에 적용을 받지 않고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으며방송 시작 23시간 전 자유롭게 출근하고 방송이 종료되면 별도 절차 없이 자유롭게 퇴근한 점⑤ 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도 없으며기상캐스터 간 상호 조율을 통해 업무 대체 후 휴가를 실시하고방송 출연 의상비를 기상캐스터가 직접 코디를 두고 지불한 점을 제시하고 있다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도급·위임·프리랜서(프리랜서는 법률적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많이 쓰이는 계약의 명칭이기에 사용하였다등의 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상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를 마찬가지로 수행한 사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이는 단지 회사의 업무 분장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판단 이유는 판단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노동 사건은 개별·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동일한 직종직군이라 하더라도 노동 실질에 따라 계약 형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노무법인의 예를 들면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고용되어 근무하는 노무사와파트너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노무사가 있다어떤 A노무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문제가 될 때 파트너 계약을 체결한 노무사의 사례를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그런데 다른 기상캐스터가 외부기획사 또는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한 사실을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근로자성 부정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게다가 전속성 역시 '업무시간 내 전속성'으로 한정하여 판단해온 것이 벌써 몇 년 전인데단지 타 방송에 출연하거나 개인 영리활동을 한 것을 부정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회사원이 주말에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거나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더라도 근로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듯판단 기준은 다른 방송사에서 '기상 캐스터업무를 수행하였는지가 되어야 한다.

업무에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하지만이는 공개된 자료만 보더라도 거짓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MBC 소속 기상캐스터들은 국장과 논의 결과라며 원고를 작성할 때 사용해야 하는 단어이미지 그래픽날씨뉴스 진행 형식 등에 대한 결정 사항을 공지받아 이에 따라야만 했다어떤 기상캐스터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2006년 12월에 나온 대학입시학원 종합반 강사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결 이후전문성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근로자성 부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노동위원회 판정과 판결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특히 방송 노동자의 경우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상 이 중 일부분만 따로 떼어 내어 독립된 사업자에게 업무위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MBC 소속 프리랜서 PD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였다이를 MBC 특별근로감독에서 고용노동부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의 '명시적적용을 받지 않거나출퇴근 시간이 '명시'되지 않은 것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가 없는 것 따위는 부차적이고 형식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노무관리를 통해 얼마든지 형해화할 수 있으며계약서에 출퇴근 시간을 명시하지 않으면 되고고용노동부가 방침을 주었으니 별도의 휴가 절차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방송 출연 의상비를 기상캐스터가 직접 지불한 것도 마찬가지다회사가 지원을 해주지 않아 주유비를 본인이 부담하면 근로자가 프리랜서가 되는가방송 노동자라면핵심 업무인 프로그램 제작 및 방송 업무에 필요한 장비를 본인이 부담하는지스탭들을 스스로 고용하여 인건비를 부담하는지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해 그 결과에 보수가 책정되는 등 독립사업자로서 사업을 영위하는지로 판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2025년 5월 19일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 사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 사진

근로감독인가컨설팅인가?

통계로 확인된 비임금노동자가 862만 명에 달하는 지금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와 보도자료로 제시된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누군가를 고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들에게 엄청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이른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기준이 공개된 것이다형식과 부차적 요소에 매우 큰 비중을 두어 판단하며십수년간 쌓아온 대법원 판례 법리는 외면하고, ILO(국제노동기구)의 사실우선의 원칙은 무시한다는.

앞서 살펴본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기준을 대부분의 근로자성 사건에 그대로 반영한다면 노동청에서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은 바늘 구멍에 몸을 맞추는 것이 될 것이다그리고 그 판단 기준들은 계약서의 문구로또는 노무관리 과정에서 형식적 구분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이쯤 되면 이번 근로감독의 목표가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었는지아니면 컨설팅을 통해 노무관리 방향성을 제시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MBC는 '위장 프리랜서사용에 대한 면허를 받은 셈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고용노동부는 자랑스러워했고, MBC는 안도했으며유족은 절규했다그리고 방송사들은 분주해졌을 것이다고용노동부 김민석 차관이 방송사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 추진 등 근로감독을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근로감독은 여러모로 역대 최악의 근로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문제의 본질을 놓쳤고오히려 방송사들에 비임금노동자 위장에 대한 힌트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근로감독 결과가 널리 알려진 만큼 방송 노동자가 아닌 다른 직종에도 판단 기준들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MBC는 가해자로 지목된 단 1명만을 계약해지하면서 책임을 면했다이처럼 꼬리 자르기로 사용자책임 지우기에 나선 MBC근로감독으로 죄를 면해준 고용노동부는 공범이다방송사의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와 사용자책임 회피에 대한 면허를 고용노동부가 발급해준 셈이다누가 고용노동부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었는가?

그러니 단호하게 말한다이렇게 근로감독할 것이면하지 마라.

덧붙이는 말

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

태그

특별근로감독 MBC 프리랜서 고용 기상캐스터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