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당은 불확실한 미래와 사회적 불만을 느끼는 젊은 남성들의 좌절을 반페미니즘이라는 정서적 언어로 포착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젠더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소속감과 간단한 해답을 제공하며,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와 인플루언서들이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분열을 보여주며, 성평등을 공공의 가치로 재구성하고 다양하고 민주적인 남성성을 제안하는 새로운 사회적 담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폴란드 대선에서 중도 자유주의 성향의 트샤스코프스키는 극우 민족주의자 카롤 나브로츠키에게 패배했다. 자유주의 정권은 법치와 개혁을 약속했지만 부패, 무능, 기득권화로 실망을 안겼고, 하층·중간 계급의 불만은 ‘국민 우선’을 외치는 반(反)엘리트 정치에 쏠렸다. 이번 결과는 폴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1989년 이후 자유주의 질서 전반의 실패가 부른 중·동유럽의 구조적 균열을 보여준다.
1955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29개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여 탈식민과 제국주의 저항을 공통 의제로 삼으며 ‘반둥 정신’을 선언했다. 회담은 냉전과 신제국주의 속에서 제3세계 연대를 위한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비동맹운동(NAM), 아프리카-아시아 연대기구 등 다양한 정치·문화적 흐름으로 계승되었다. 오늘날 반둥은 글로벌 사우스의 연대와 해방 정치의 역사적 기반으로 소환되지만, 그 정신은 신자유주의적 왜곡 속에서 비판적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해리 브레이버먼(Harry Braverman)은 『노동과 독점자본』(1974)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을 분절하고 탈숙련화하며, 기술을 인간 해방이 아닌 통제로 전환시키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노동의 기계화와 서비스화가 가져온 노동의 저하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해방의 잠재성을 낳는다고 보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늘날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과거의 교훈과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직시해야 함을 시사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극심한 감시, 고립,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자, 수치와 처벌의 체제에 맞선 익명의 예술적 저항이었다. 이 시는 감옥 내 참혹한 현실을 고딕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포착하며,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연민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100년 후 뱅크시의 벽화와 함께 재조명되는 이 작품은, 형벌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예술의 힘으로 증언한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디아스포라와 점령의 현실 속에서 추방된 민족의 정체성과 기억, 저항, 귀환의 열망을 독창적으로 담아내며 세계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에밀 하비비, 가산 카나파니, 이사벨라 하마드, 안와르 하메드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은 올리브나무, 열쇠, 유령 등의 상징을 통해 상실과 연결, 희망을 서사화하며 유배된 삶을 다층적인 장르와 감정으로 조명한다. 특히 하비비의 유머, 카나파니의 사실주의, 하메드의 공상과학적 상상력은 억눌린 현실에 대한 문학적 저항을 확장하고 있다.
1948년 시온주의 무장 세력은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 이상을 강제 추방하고 500개가 넘는 마을을 파괴하며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한 '나크바(재앙)'를 실행했다. 이 과정은 유엔 분할안 발표 직후 체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점령, 포위, 귀환권 부정 등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은 580만 명에 달하며, 매년 5월 15일은 나크바를 기억하고 저항하는 날로 기념되고 있다.
우루과이의 정치가 고(故) 호세 '페페' 무히카(José 'Pepe' Mujica)는 자본주의는 단순한 소유 관계가 아니라 좌파가 연대의 문화와 함께 맞서야 하는 일련의 문화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비주의와 이기주의를 넘어선 연대의 문화, 절제의 삶, 자율적인 사회를 새로운 좌파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투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히카는 좌파가 실패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문화와 윤리를 바꾸는 창조적 실험에 나서야 한다며, "혁명은 다른 문화를 함께 만드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루터교 목사이자 기자인 안젤라 덴커는 저서 ⟪White Jesus의 제자들⟫에서 백인 남자아이들이 기독교 민족주의와 혐오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과정을 분석하며, 그 중심에 ‘백인 예수’ 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이미지가 백인 남성 중심의 기독교 권력 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소년들의 분노와 소외감을 타인에 대한 증오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통렬히 비판한다. 덴커는 역사적 예수를 복권함으로써 소년들이 억압받는 자들과 연대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책은 체계적 대응보다 개인적 접근에 치우쳤다는 한계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