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Ricardo Parreira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은 자유주의 교육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오랫동안 품어온 가정을 흔들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세 개에서 네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민족주의적 서사에 점점 더 끌리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극우는 더 이상 세계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만 호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극우는 분노와 불만뿐 아니라 훨씬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감정인 '소속감'을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유럽의 제도권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치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은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현재 전체 720석 가운데 191석, 즉 27%를 극우 성향 정치그룹에 속한 유럽의회 의원(MEP)이 차지하고 있다.
이 결과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나타난 항의표가 아니었다. 유럽 27개국 약 2만 5,0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유럽선거연구 분석에 따르면, 30세 미만 남성의 극우 지지율은 21%를 넘었다. 이 수치는 1989년 이후 모든 선거를 거치며 꾸준히 상승했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창당한 2013년 18~24세 청년층에서 5%의 지지를 얻었지만, 2025년에는 19%까지 상승했다. 프랑스에서는 2024년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National Rally)이 18~34세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었다. 모든 연령대를 합하면 극우 정당은 현재 유럽 전체 득표율의 거의 25%를 차지한다.
극우는 거의 예외 없이 유럽회의주의를 내세우며 유럽연합(EU)의 통합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2025년 발표한 그레이트 리셋 보고서(Great Reset report)는 유럽 전역의 극우 정당들이 지지한 문건으로, EU를 내부에서 해체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처럼 EU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EU는 대체로 가치 선언을 반복하고, 제도 개혁을 추진하며, 경제적 안정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민족주의 운동이 능숙하게 활용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전혀 답하지 못한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
EU가 만든 서사의 공백
민족주의 운동은 정책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다. 이들은 누가 진정한 유럽인인지, 진정한 독일인인지, 진정한 프랑스인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그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으며, 종종 배타적이다. 반면 EU는 여권과 단일시장, 단일통화, 그리고 여러 권리를 제공한다. 모두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이런 지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2004년 저서 『우리, 유럽의 인민인가?』(We, the People of Europe?)에서 유럽 통합은 처음부터 긴장을 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럽 프로젝트가 내세운 보편주의적 수사와 끝내 극복하지 못한 국가·인종·언어에 기반한 배타적 논리가 서로 충돌했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가 추방 계획을 통과시키자 극우 성향 유럽의회 의원(MEP)들이 "그들을 돌려보내라"라고 외쳤다.
지난 수십 년 동안 EU는 문화를 소홀히 다뤘다. 정치·경제 통합이 이루어지면 문화적 소속감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속감을 만들어낼 진정한 문화 전략이 부재한 결과, 극우는 그 서사의 공백을 점차 메워 왔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유럽이 과거에는 문화의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했고, 이에 과감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유럽 문화수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9년 뒤인 1954년 유럽문화협약(European Cultural Convention)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문화 외교를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 목적은 분명했다. 정치와 경제를 재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유럽에는 공동의 문화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이런 인식을 가장 오래 지속한 성과는 1985년에 등장했다. 당시 그리스 문화부 장관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와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크 랑(Jack Lang)은 다른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훗날 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는 사업을 출범시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현재 인정하듯,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유럽 시민들이 공동의 문화 공간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강화하고 모든 유럽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특성을 부각하는 것"이었다.
1985년 아테네가 첫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이후 지금까지 30여 개국, 70개 이상의 도시가 이 타이틀을 이어받았다. 피렌체, 이스탄불, 글래스고, 크라쿠프, 발레타, 티미쇼아라 등은 모두 1년 동안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유럽 공동의 정체성을 키우는 데 힘썼다. 독립적인 평가에서도 이 프로그램은 문화 간 교류와 시민 참여를 촉진하는 데 꾸준히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켐니츠(Chemnitz)의 2025년 유럽 문화수도 유치 홍보물. 아그른페르글라저(Aagnverglaser)/위키미디어 커먼즈, CC BY-SA
당시와 지금을 가르는 차이는 유럽 통합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유럽 프로젝트를 설계한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 장 모네(Jean Monnet), 알치데 데 가스페리(Alcide De Gasperi)는 정치와 경제 제도가 살아남으려면 문화적 정당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다. 문화는 부수적인 요소도, 핵심 과제에 덧붙이는 장식도 아니었다. 문화는 모든 것을 떠받치는 전제이자 토대였다.
그러나 오늘날 EU의 예산을 보면 문화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EU의 대표적인 문화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유럽(Creative Europe)은 2021~2027년 기간 동안 24억 4,000만 유로의 예산을 운용한다. 적지 않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이는 EU 전체 예산의 약 0.15%에 불과하다.
반면 컬처 액션 유럽(Culture Action Europe)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년 한 해에만 문화 선전에 10억 유로 이상을 지출했다. 이는 EU의 크리에이티브 유럽 연간 예산의 약 세 배에 이른다. 여기에 러시아가 유럽 여론을 겨냥한 미디어 영향력 공작에 추가로 투입한 수십억 유로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 유럽은 가장 중요한 전장에서 상대보다 훨씬 적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
EU가 출범하던 시기의 미디어 환경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의 미디어는 완전하지 않았고 국가별로 분절돼 있었지만, 적어도 1960~1980년대에는 공영방송과 공유된 문화적 준거, 그리고 공통의 의미를 형성하는 공적 공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젊은 유럽인들은 주로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을 통해 세상을 접한다. 그러나 이런 플랫폼은 문화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플랫폼은 감정적 반응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설계돼 있으며, 그 결과 단순하면서도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민족주의 서사는 구조적으로 유리한 출발점을 확보한다.
유럽 문화수도와 같은 사업은 문화가 도시와 제도를 통해 확산하던 시대를 전제로 기획했다. 그러나 문화가 소셜미디어 피드를 통해 움직이는 시대에 맞춰 이를 새롭게 설계하지 않았다.
EU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자료도 이런 불일치를 보여준다. 2021년 유럽의회가 실시한 청년 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64%는 인스타그램, 25%는 틱톡을 주요 정보원으로 이용했다. 또 다른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조사에서는 15~24세 유럽 청년의 79%가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나 콘텐츠 제작자를 주요 뉴스 출처로 활용한다고 답했다.
2024년 발표한 한 연구는 2024년 선거를 앞두고 독일, 스웨덴, 헝가리, 폴란드에서 극우 정당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참여 지표에서 주류 정당을 꾸준히 앞질렀다고 밝혔다. 현재 플랫폼 알고리즘은 부정적이고 도발적인 콘텐츠를 구조적으로 더 많이 노출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에라스무스와 정체성
이것은 정책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교육의 실패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교육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강의실에서 관찰하는 모습은 매우 복합적이다. 베를린에서 살고, 코펜하겐에서 공부했으며, 암스테르담에서 인턴십을 경험한 학생들조차 여전히 "우리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이런 표현은 이동의 경험이 통합이 아니라 단순한 접촉만 만들어냈음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차이를 다루는 방법은 익혔지만, 자신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 상당수는 학생들이 유럽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에 내재해 있다. 학생 교류에 관한 연구는 일관되게 이른바 '선택 효과'를 확인했다.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은 출국하기 전부터 이미 친유럽 성향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에라스무스(Erasmus) 같은 교환 프로그램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보다 원래 존재하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작 유럽의 다양성을 경험할 필요가 가장 큰 학생들, 즉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교육 이동성이 낮거나 국가 중심의 문화적 서사에 더 깊이 뿌리내린 학생들은 이런 경험에서 대부분 배제돼 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에라스무스 교류 양상을 분석한 연구는 학생 이동이 대학의 명성과 경제적 자본을 기준으로 강하게 계층화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명문대 학생들은 다른 명문대로 이동하며 기존의 위계질서를 재생산할 뿐 이를 흔들지 않는다.
결국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교육체계는 대부분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조차 국적은 다양하지만, 사회계층은 놀라울 정도로 동질적이다. 우리는 세계 시민을 양성한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애초부터 민족주의에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낮았던 유럽 청년 일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는 학생 교류가 대학의 학문적 명성과 경제적 자본을 축으로 뚜렷하게 계층화돼 있다. 출처: Ahmed, Unsplash+
더 불편한 질문은 바로 그 집단마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그리고 실제로 균열은 나타나고 있다. 유럽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세 나라에서 공부한 학생들조차 그들의 이력으로 예상할 수 있는 수준보다 브뤼셀(Brussels)에 더 큰 반감을 드러내고, 국가 고유의 문화에 더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 경험은 세계시민적 충성심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차이에 대한 익숙함과, 어떤 제도도 충족시키지 못한 뿌리내리고자 하는 갈망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상태를 만들어냈다. 민족주의 운동은 이런 갈망을 이해한다. 그러나 대학과 경영대학원은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 누가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
유럽의 제도적·서사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주체는 극우만이 아니다. 유럽의 문화적 방향을 바꿀 권한이나 영향력, 역량을 가진 주체는 크게 세 부류다.
1. 유럽연합(EU) 기관
EU 기관은 권한은 있지만 자원과 방향성이 부족하다. 2024년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곧 문화 나침반(Culture Compass)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은 이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유럽 프로젝트에 인간적인 얼굴을 더하는 틀"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문화 나침반(Culture Compass for Europe)에서 영감을 받은 공동선언 「유럽을 위한 문화, 문화를 위한 유럽」(Europe for Culture–Culture for Europe)은 EU 문화정책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의지를 담고 있다.”
Inspired by the Culture Compass for Europe, the Joint Declaration “Europe for Culture-Culture for Europe” sets out a shared political commitment for EU cultural policy.@Europarl_EN, @EUCouncil & @EU_Commission together for culture.
— Creative Europe (@europe_creative) June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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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접근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컬처 컴퍼스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EU 전체 예산의 0.15%에 불과한 크리에이티브 유럽은 문화 전략이라기보다 각주에 가깝다.
방향 전환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EU는 문화외교를 거의 전적으로 대외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며 유럽의 가치를 제3국에 확산하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유럽 내부에서도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에라스무스+
두 번째 핵심 주체는 EU의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프로그램이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EU가 가진 가장 강력한 성공 사례다. 『공동시장연구저널』(Journal of Common Market Studies)에 발표한 연구는 에라스무스 참가 경험이 자신을 유럽인으로 인식하는 정도를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에라스무스는 무(無)에서 유럽 정체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을 지지하는 젊은 남성들은 대체로 에라스무스 참가자가 아니다. 에라스무스의 원리를 대학을 넘어 직업교육과 중등교육, 지역사회 교류까지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유럽이 가장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분야일 것이다. 문제는 이동성 자체가 아니라 그 혜택이 닿는 범위다.
3. 대학과 경영대학원
이들 기관도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재직하는 학교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흔히 '세계 시민'과 '문화 간 리더'를 양성한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국제적 이력과 진정한 문화적 소속감은 같은 것이 아니다.
유럽인이라는 경험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국제적 이동이 이루어진다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20개 국적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문화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직 운영의 성과일 뿐이다. 차세대 유럽 지도자를 양성한다고 자처하는 교육기관이라면 무엇이 유럽을 하나로 묶는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유럽의 문화적 전환
2025년 봄 유로바로미터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75%가 자신을 EU 시민이라고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또한 15~24세 청년의 거의 60%가 EU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고무적인 수치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시민이라고 느끼는 것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제도를 신뢰하는 것과 공동의 프로젝트에 문화적 충성심을 갖는 것도 다르다. 그리고 EU를 가장 신뢰하는 집단인 교육 수준이 높고 이동성이 큰 청년층일수록 문화적 정체성 형성은 거의 우연에 맡겨져 있다.
극우는 지금의 상황에서 두 가지 핵심을 정확히 이해했다. 첫째, 정체성의 문제는 번영이나 권리 체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둘째, 정치의 문화적 차원을 무시하는 제도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세력에게 언제나 밀릴 수밖에 없다. 유럽의 극우 정당은 더 나은 경제정책을 제시해서 유럽의회 의석의 27%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제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루마니아였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소속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Călin Georgescu)는 2024년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승리했다. 그는 정교회 정체성, 국가주권, 서구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정신적 독자성을 중심으로 한 틱톡(TikTok) 친화적 문화 서사를 적극 활용해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후 선거는 무효가 됐지만, 그 사실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상당수 루마니아 유권자, 특히 많은 청년은 기존 정당의 정책에서는 찾지 못한 것을 하나의 문화적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루마니아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예외적인 사례는 아니다. 감정적으로 호소력을 갖춘 유럽의 문화 서사가 부재하면 다른 서사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는 교훈
EU 문화정책은 지정학적 차원도 너무 늦게 인식했다. EU의 문화 예산이 정체되는 동안 러시아는 수십억 유로를 선전에 투입했고, 그중 일부는 유럽 내부를 겨냥했다.
한편 중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광범위한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유럽의 대학과 도시에서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확산하고 있다.
반면 EU의 문화기관들은 유럽 내부의 소속감 형성까지 자신들의 역할에 포함되는지조차 논의하고 있다. EU는 문화외교를 정치적 과제가 끝난 뒤 대외적으로 가치를 확산하는 부차적 수단으로 여겨 왔다.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유럽의 지정학적 경쟁자들은 문화를 무역에서 도로가 갖는 역할만큼이나 영향력의 기반으로 인식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선거 주기를 넘어서는 긴급성을 띤다. 컬처 액션 유럽(Culture Action Europe)은 현재 유럽의회 문화교육위원회(Committee on Culture and Education)에 상당한 의석을 확보한 극우 세력이 이미 EU 내부의 문화 논쟁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젠더 선전(gender propaganda)'이라는 표현을 일상화하고, 이주 관련 프로젝트 지원을 문제 삼으며, 다양성과 포용 대신 국가 중심의 배타적인 유럽 문화를 내세우고 있다.
시급한 문화외교의 필요성
브이-뎀 연구소(V-Dem Institute)의 『민주주의 보고서 2026』(Democracy Report 2026)에 따르면 2025년 세계 국가의 거의 4분의 1이 권위주의화(autocratisation)를 겪었으며, 그중 여러 나라는 유럽에 속해 있었다.
다른 문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속감을 떠받치는 기반은 진정으로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데 관심이 가장 적은 세력이 구축하거나, EU의 분열과 실패를 바라는 세력이 해체하게 된다.
전후 유럽의 문화 정책을 이끈 멜리나 메르쿠리는 오늘날 EU 지도부가 잊어버린 사실을 분명히 이해했다. 유럽이 시민의 충성심을 얻으려면 기술관료적 성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럽은 시민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는 문화외교가 지금의 상황에 비해 너무 부드러운 수단인가가 아니다. 문제는 유럽이 상대가 줄곧 사용해 온 유일한 무기를 앞으로도 계속 외면할 여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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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즈 토르주(Deniz Torcu)는 IE대학교(IE University) 세계화·비즈니스·미디어학 겸임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