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인권운동가 안드리 유누스(Andrie Yunus)를 겨냥한 염산 테러는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대통령 집권 아래 점차 확산하는 권위주의의 한 단면이다. 수하르토(Suharto)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침식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대통령은 점점 더 비판 세력을 국가 통합을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수사는 인권운동을 정치적 파괴 행위의 한 형태로 간주했던 수하르토 신질서 체제의 이념적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출처: 프라보워 수비안토 페이스북
2026년 3월 인도네시아 인권운동가 안드리 유누스를 겨냥한 염산 테러는 화학 화상으로 새긴 경고장이자 공포의 언어로 전달된 메시지였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치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충격적인 단절이라기보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독재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음울한 메아리처럼 다가온다.
안드리를 향한 공격은 2004년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인권운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리브(Munir Said Thalib) 암살 사건도 떠올리게 한다. 두 사건의 유사성은 폭력과 처벌받지 않는 관행, 국가와 연계된 협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지난 28년 동안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성과가 체계적으로 허물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낮에 자행된 테러
2026년 3월 12일, 실종자·폭력피해자위원회(KontraS)의 부조정관인 안드리 유누스를 오토바이를 탄 남성 두 명이 공격했다. 자카르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그는 이들이 뿌린 염산을 맞았고, 범인들은 곧바로 현장을 달아났다.
CCTV에는 공격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드리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 녹음됐다. 그는 얼굴을 포함해 몸의 약 4분의 1에 화상을 입었고, 현재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 사건은 우발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안드리는 공격 직전 인도네시아 군부가 민간 영역에서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이 문제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집권 이후 특히 첨예한 논란이 되고 있다. 프라보워는 군 장성 출신으로, 수하르토 정권 붕괴 이후 인권침해 책임을 이유로 군에서 해임된 인물이다.
공격이 있기 전 몇 주 동안 안드리는 여러 형태의 협박에 시달렸다. 익명의 전화가 반복해서 걸려왔고, 다른 방식의 위협도 이어졌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공포를 조성해 인권운동가들을 위축시키려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안드리는 진상조사위원회(KPF) 활동 때문에도 표적이 됐다. 그는 독립기구인 KPF에서 수개월 동안 활동하며 2025년 8월 시작된 전국 규모의 경찰 폭력과 부패 규탄 시위를 조사했다. 시위대는 약 일주일 동안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 전역의 도시에서 도로를 봉쇄하고 경찰서를 불태웠다.
혼란스러운 시위와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9월에는 프라보워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를 심각하게 검토했다는 소문도 퍼졌다. 정부의 대응은 1998년 독재정권이 붕괴한 이후 시민사회를 겨냥한 최대 규모의 탄압이었다. 안드리는 KPF 보고서 작성에 참여해 보안당국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고, 대규모 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군의 ‘이중 기능’
이 시위가 벌어지기 전에도 안드리는 인도네시아 군법 개정 과정의 불투명성을 비판하며 항의했다. 2025년 3월 15일 그는 시민사회 연대 소속 활동가들과 함께 자카르타의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국회 회의장에 들어가 정부와 인도네시아 하원이 비공개로 진행하던 군법 개정 논의를 중단시켰다. 이들은 국민 참여를 배제한 채 밀실에서 법안을 논의하는 데 항의했으며, 이러한 개정이 수하르토 시대 군의 '이중 기능' 원칙을 되살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중 기능'은 신질서 체제 아래 군에 국가 방위뿐 아니라 국내 정치와 행정에도 개입할 권한을 부여한 정책이었다. 장군 출신인 수하르토 집권기에는 군 장교들이 의회 의석을 배정받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사실상 처벌받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 2004년 제정된 인도네시아 국군법은 군을 민간 영역에서 분리해 본래의 군사 임무로 복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22년이 지난 지금, 그 길은 결국 선택되지 않은 길이 된 듯하다.
인권단체들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곧바로 규정했다. 이는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공격이라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의 사무총장 우스만 하미드(Usman Hamid)는 이번 사건을 "인권옹호자들의 입을 막기 위한 폭력적인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다른 시민사회단체들도 국가 권력에 맞서는 활동가들을 겨냥한 협박이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이번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며칠 뒤 예상했던 일이지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사건에 인도네시아 군인이 연루됐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군 당국은 여러 명의 군인을 구금했다. 군은 이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일탈한 개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군을 비판해 온 사람들은 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한다. 군과 정보기관이 다시 정치적 집행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군사법원은 전략정보국(BAIS) 소속 정보장교 4명을 계획적인 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대위 1명, 중위 2명, 하사 1명은 각각 징역 3년에서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안드리는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계속돼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그의 변호인은 이번 재판을 "눈속임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인권감시단체들 역시 이들 군인 4명이 더 큰 배후를 감추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재판을 비판했다.
출처: 프라보워 수비안토 페이스북
무니르의 그림자
일정 연령 이상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러한 양상은 낯설지 않다. 2004년 실종자·폭력피해자위원회의 설립자이자 군의 인권침해를 가장 용감하게 고발했던 인권운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리브(Munir Said Thalib)는 국영 항공사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국제선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었다.
무니르는 오랫동안 군이 자행한 강제실종, 초법적 살해, 부패를 기록하고 폭로해 왔다. 그의 암살은 치밀한 사전 계획과 국가기관의 공모, 그리고 끝내 완전한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가 연루된 작전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보여준다. 이 사건은 동남아시아에서 권력층이 처벌을 피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조종사 폴리카르푸스 프리얀토(Pollycarpus Prinyanto)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신뢰할 만한 증거들은 인도네시아 국가정보국(BIN)이 사건에 연루됐음을 가리켰다. 그럼에도 지휘계통 전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을 기획한 배후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폴리카르푸스 역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지만 실제로는 그중 일부만 복역했다.
폴리카르푸스는 코로나19로 사망하기 직전, 고(故) 독재자 수하르토의 아들 토미 수하르토(Tommy Suharto)가 이끄는 정당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토미는 2002년 대법관 샤피우딘 카르타사스미타(Syafiuddin Kartasasmita)를 살해하도록 청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2006년 석방됐다.
많은 사람은 무니르의 암살이 막을 내리는 권위주의 체제가 마지막으로 내지른 발악이자, 인도네시아가 이제 극복하고 지나갈 과거의 잔혹한 흔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사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속선상의 한 지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협박
안드리를 향한 공격은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2025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특히 군의 권한 확대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점점 더 심한 괴롭힘과 감시, 협박에 시달렸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허위정보 유포도 이어졌다. 실종자·폭력피해자위원회도 군 차량이 사무실 주변을 감시하는 등 반복적인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긴장 고조는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 일련의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네시아 군법 개정이다. 개정법은 현역 군인이 민간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수하르토 정권 붕괴 이후 확립된 민간에 의한 군 통제 원칙을 정면으로 흔드는 조치다.
2025년 8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은 군의 '이중 기능'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정부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고문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러한 대응은 시민들의 우려를 더욱 키웠다. 안드리는 바로 이러한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활동에 참여했고, 그 결과 처벌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 세력의 직접적인 표적이 됐다.
지금의 상황을 특징짓는 것은 폭력 자체만이 아니라, 그런 폭력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정치적 분위기다. 수하르토의 사위이기도 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점점 더 비판 세력을 국가 통합을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해 왔다. 그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하고,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거론하며 그들의 의도를 의심했다. 이러한 수사는 반대 세력을 체제 전복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인권운동을 정치적 파괴 행위로 취급했던 신질서 체제의 이념적 논리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수하르토 집권기에는 공개적인 폭력과 은밀한 협박이 결합된 방식으로 탄압이 이루어졌다. 군과 연결된 비밀 조직들이 활동가를 납치하거나 강제실종시키고 살해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는 국가가 죽음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벌어진 이른바 '페트루스(Petrus, 신원불명의 살인범에 의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에서는 수백 명의 젊은 남성이 좀도둑이라는 이유만으로 즉결 처형됐다. 몸에 문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음의 특공대가 표적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국가가 공포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방치됐고, 때로는 린치당한 것처럼 매달려 공개됐다. 목적은 사회 전체에 극도의 공포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안드리 유누스를 향한 공격은 이러한 방식과 섬뜩할 만큼 닮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 사람만을 공격했지만, 그 장면을 모두가 보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고를 보내려 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후퇴
1998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이행은 군이 정치에서 물러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며, 과거의 인권침해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취약하지만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합의는 이제 무너지고 있다. 군의 권한이 다시 확대되고, 활동가들이 낙인찍히며, 반대 세력을 겨냥한 공격을 국가가 묵인하거나 심지어 공모하는 듯한 모습은 민주주의 규범이 체계적으로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가 '신질서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수하르토 시대의 독재가 그대로 복원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적 유사성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두 체제 모두에서 군은 정치의 중심축을 차지한다. 두 체제 모두에서 정부는 반대 의견을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리고 두 체제 모두에서 활동가를 향한 폭력은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행된다.
오늘날 다른 점은 민주주의라는 외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선거와 언론의 다원성, 법률이 보장하는 형식적 권리가 유지되는 한편, 비자유주의적 통치 방식도 동시에 공존한다. 이러한 혼합체제는 어떤 면에서는 노골적인 독재보다 더 교묘할 수 있다. 법과 질서라는 언어 뒤에 숨어 탄압을 은밀하게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인권운동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탄압을 견뎌 왔다. 신질서 체제를 버텨 냈고, 민주화 개혁을 이끌어 냈으며, 처벌받지 않는 관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책임 규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누스를 겨냥한 이번 공격과 같은 사건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고, 협박과 공포에 의존하는 정치와 분명히 결별하지 못한다면, 반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은 앞으로도 계속 좁아질 것이다.
무니르 암살 사건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만약 안드리를 공격한 사람들 역시 같은 처벌 면제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면, 그것은 많은 인권활동가가 이미 우려하는 현실을 확인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오르데 바루 바루(Orde Baru Baru)', 곧 '새로운 신질서'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출처] Indonesia’s Army Is on the March Against Democratic Right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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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G. 반(Michael G. Vann)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새크라멘토 역사학 교수이며, 『하노이의 대규모 쥐 사냥(The Great Hanoi Rat Hunt): 프랑스령 식민지 베트남의 제국, 질병, 그리고 근대성(Empire, Disease, and Modernity in French Colonial Vietnam)』의 공저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