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Q+ 지지 복싱 코치, 미국에서 추방 위기

출처: Jia Li

브루클린의 시프셰드베이에 있는 한 우즈베크 식당에서 우리는 플로프(plov), 만티(manti), 샤슬릭(shashlik)을 먹으며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여름이었다그가 굳이 주문하겠다고 한 치킨윙은 식어 있었고나는 배가 음식과 배향 사이다 몇 병으로 부풀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내 시선은 그의 뒤에 걸린 TV 화면으로 향했는데러시아 뉴웨이브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접어 넣어둔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러시아어로 번역한 편지였다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당신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저는 트랜스젠더예요.” 나는 엄마가 나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있었던 일화를 포함시켰다엄마는 그때 내가 남자아이일 거라고 확신했었다출산 당시 엄마는 여기 아들이 나오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했다나는 그에게 사실을 숨겨온 것에 대해 사과했고내가 불안을 느끼게 된 배경을 설명했으며최근에 겪은 몇 가지 경험들도 덧붙였다.

그는 나를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작은 키릴 문자로 쓰인 편지를 읽으려고 눈을 가늘게 뜨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내 심장은 너무 크게 뛰어 내 몸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그는 편지를 금방 내려놓고 나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자기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다고.

이건 나한테 문제 안 돼넌 그냥 사람이야내 친구

나는 탈라프 마미르카노프(Talap Mamyrkanov)를 그가 글리슨 체육관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만났다나는 2021년부터 그곳에서 코치로 일해 왔다이 체육관은 1937년 바비 가글리아르디(Bobby Gagliardi)가 아일랜드계 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비 글리슨(Bobby Gleason)으로 바꾸고 세운 곳으로미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복싱 체육관이다지금까지 제이크 라모타(Jake LaMotta),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로베르토 두란(Roberto Duran),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을 포함해 136명이 넘는 세계 챔피언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출처: Jia Li

브루스 실버글레이드(Bruce Silverglade)가 1982년 글리슨 체육관의 공동 소유주로 합류했을 때그는 체육관의 사회적 포용성과 접근성을 확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체육관은 오랫동안 다양한 국적의 트레이너와 복서들이 함께하는 다민족 공간이었지만성별·계급·장애와 관련된 다양성은 부족했다글리슨 체육관은 철저히 복서들을 위한 체육관이었고아마추어 혹은 프로 복싱의 전통적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1983미국 아마추어 복싱의 공식 기구인 USA 복싱이 여성 복싱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기 10년 전브루스 실버글레이드는 글리슨 체육관에서 여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당시 체육관에는 락커룸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브루스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설득해 주 2이틀 동안 체육관을 일찍 문 닫아 여성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1987년 체육관이 브루클린으로 이전했을 때는 여성 회원 수가 충분히 늘어나 있었고여성 전용 락커룸을 별도로 마련할 수 있었다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존 커뮤니티에 통합되었다브루스의 리더십 아래글리슨 체육관은 체육관 내 다양성을 더욱 넓히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척했다여기에는 저소득 청소년을 위한 자선 프로그램재향군인 무료 회원제장애인을 위한 적응형 복싱 수업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모든 시도는 나의 통합과 접근성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었다. 2017년 나는 트랜스 복싱(Trans Boxing)’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처음에는 트랜스젠더 및 젠더 다양성(GV, gender variant) 사람들을 위한 주간 단체 복싱 수업으로 시작했지만참여가 점차 꾸준해지면서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됐다시간이 지나면서 프로젝트는 단순한 운동 수업을 넘어 발전해 나갔다참가자와 지지자들이 협업을 통해 출판물다양한 예술 전시팟캐스트워크숍을 만들어냈다이 프로젝트는 스포츠에서 성별을 규제하려는 반동적 태도에 맞서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트랜스 시각에서 복싱의 역사문화실천을 탐구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내가 브루스에게 프로젝트를 체육관으로 옮겨오자는 제안을 했을 때그는 즉시 열정적으로 동의했다브루스 역시 나처럼이 프로젝트가 글리슨 체육관이 50년 넘게 지지해 온 프로그램의 자연스러운 확장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이 시점까지 트랜스 복싱은 글리슨 체육관의 여성 프로그램처럼체육관의 영업시간 이후 또는 공원커뮤니티 센터 등에서 수업을 진행해 왔다참여는 자유로웠고사람들은 커뮤니티와 자신감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훈련에 임했다.

출처: Jia Li

이번 글리슨 체육관에서의 트랜스 복싱 프로젝트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고 다양한 맥락 속에서통합을 향한 훨씬 더 강한 헌신을 요구했다나에게도 개인적직업적으로 엄청나게 큰 도약이었다나는 긴장했고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체육관에서 코치로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불안했다.

나는 복서로서 공식적인 경험이 거의 없었다경기에도 두 번밖에 출전하지 않았다첫 경기는 NYPD 복싱팀이 코니 아일랜드에서 주최한 비공식 경기(‘스모커(smoker)’라고 부르는 승인되지 않은 복싱 시합)였다당시 상대는 전 푸에르토리코 국가대표 유도 챔피언 출신의 여성 NYPD 경찰관이었다두 번째 경기는 <데일리 뉴스>가 주최한 골든 글러브 토너먼트였고나는 112파운드 여성부 체급에서 전설적인 스타렛 시티 복싱 클럽 출신의 경험 많은 선수와 맞붙었다하지만 그 경기 이후이미 있던 손목 인대 손상이 악화되어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고, 2017년을 끝으로 경쟁 무대에서 은퇴하게 됐다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자나는 바로 의료적 전환을 시작했다호르몬 대체 요법(HRT)을 시작했고이어 2018년에 상체 절제술을 받았다.

나는 여전히 홈 체육관이었던 뉴 베드 스타이 복싱 센터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2020년 팬데믹으로 체육관이 문을 닫자우리 중 일부는 체육관 코치와 함께 브루클린의 여러 공원에서 훈련을 계속했다트랜지션의 선물은 내가 복싱을 하는 방식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복서로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기량스타일감정적 성숙그리고 정신적 태도에 대한 열망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복싱이 더 즐거워졌고나는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졌으며새로운 시도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였다성별 구분을 강조하지 않는 환경 덕분에복싱을 경쟁 중심이 아니라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프로젝트 초기 몇 년 동안 나는 종종 외부인처럼 느꼈다어색했고나 자신과 내 파이터들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적이었다체육관의 문화가 우리를 받아들이고 나를 코치로서 인정해 주기 전까지는항상 깨지기 쉬운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점차 확고한 자리를 잡아갔고나 자신도 변했다나는 나만의 스타일과 감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고파이터들을 키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되면서 코칭에 대한 열정과 흥미가 더욱 커졌다.

아마추어와 프로 복싱을 통틀어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위한 제한적인 규정 때문에 경기 출전은 불가능했지만나는 여전히 꾸준히 훈련하고 스파링을 이어갔다그러나 2022오랫동안 함께한 코치와의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여러 요인이 있었지만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 트랜지션을 받아들이는 그의 어려움 때문이었다처음에는 서툴지만 애정 어린 어색함 같았던 태도가 결국 굳어져분노와 냉소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해 말나는 처음으로 탈랍(Talap)을 체육관에서 보게 됐다겨울밤이었고바깥은 이미 어둡고 추웠다안은 형광등 불빛으로 밝았고습하고 시끄러웠다체육관은 늘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그는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에 뉴욕 양키스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처음 두 시간 동안은 다른 코치인 레온(Leon)을 따라다니며 지켜보기만 했고누구에게도 웃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처음엔 나는 그가 레온 제자 중 한 명의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용히 집중하는 태도와 품격 있는 태도가 눈에 띄어나는 손을 내밀며 혹시 코치세요?”라고 물었다그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나 코치!”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서로 교대 근무를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인사를 나눴고서로의 훈련 방식과 파이터들에 대해 칭찬을 주고받았다그의 성격은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고 친절했고나는 체육관에서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을 점점 기대하게 됐다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커피 브레이크를 함께했고하루 종일 대화를 나눴으며밤이면 같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곤 했다.

출처: Jia Li

탈랍이 자신의 제자들을 직접 훈련시키기 시작했을 때그의 열정과 강렬한 집중력그리고 다른 코치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훈련 방식이 나를 더욱 끌어당겼다나는 일주일에 며칠씩 그의 파이터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탈랍의 배경은 올림픽 아마추어 복싱에서 수십 년 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온 소련식 복싱이었다이 스타일은 기술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회피 중심의 방식으로나 같은 체격이 작은 압박형 파이터보다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복서들에게 더 잘 맞는 스타일이었다하지만 나는 탈랍의 접근법에 큰 호기심을 느꼈고나 자신이 원리를 제대로 배워서 제자들에게 이 스타일의 핵심 요소를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랐다.

스파링 중에 그는 나를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브로너 알 철 같아! (여기서 은 고환을 뜻했다.) 진짜 남자야!” “그가 널 무서워했어!”

하지만 그는 내가 왜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 미쳤어너 싸워야 해진짜로 싸워야 해네가 배운 지식네 힘을 시험해야 해.”

출처: Jia Li

나는 탈랍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금지된 약을 복용 중이라고 둘러댔다어느 날 링에서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가슴에 옅게 남은 두 개의 긴 흉터를 가리키더니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짧게 대답했다. “나중에 설명할게.”

그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개인적인 삶과 각자의 과거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되었다탈랍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자란 이야기아마추어 복싱 선수 시절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던 경험그리고 그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는 다섯 아들을 모두 직접 훈련시켰고아이들이 복싱과 MMA 대회에서 경기하는 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탈랍이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과거 코치들과의 경험 때문에그가 알게 된다면 우리가 누려왔던 편안한 관계를 잃거나아예 그를 잃을까 봐 불안했다탈랍은 복서로서또 코치로서 나의 능력에 엄청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그의 지도와 지지는 나에게 새로운 자존감을 심어주었다무엇보다도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다그에게 사실을 말할 용기를 내기까지 몇 주가 걸렸고나는 그동안 편지를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다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고그래서 이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내가 커밍아웃한 뒤 우리의 관계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그는 나를 받아들였고파트너로서 함께하기로 했다우리는 체육관에서 한 팀이 되었고제자들을 함께 훈련시키고브라이튼 비치에서 달리기를 시키며시합 중에는 같은 코너에서 협력했다나는 탈랍의 코칭 자격증 등록을 도왔다그는 너무 기뻐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마에 키스했다.

탈랍의 지지는 내 트랜스 및 논바이너리(non-binary) 파이터들의 훈련뿐만 아니라그들이 체육관에서 느끼는 소속감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그는 내 제자들을 자신의 제자들과 똑같은 열정과 집중력으로 훈련시켰다지난해 나는 여성부 리그에서 뛰는 한 트랜스남성 파이터를 그의 첫 번째 시합에 대비해 준비시켰다탈랍은 한결같이 안정적인 지도를 제공했고우리에게 그들의 성별 표현이나 출전 자격을 캐묻거나잘못된 호칭을 사용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종종 의아했다왜 그는 굳이 나와 내 제자들 편에 서기로 선택했을까우리를 지지하는 기둥이 되기보다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쉬웠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아마도 그는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이다서로의 정체성과 배경은 다르지만 — 나는 트랜스이자 백인이었고그는 아시아계 무슬림이었지만 — 우리 둘 다 이주민이었다.

복서와 코치라는 호칭처럼그와 내가 속한 정체성 범주 — 이민자와 트랜스젠더” —는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를 뜻한다본래 주어진 조건의 한계를 거부하고전혀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정체성은 개인이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고 믿기를 요구하며충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현실을 스스로 주장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3월 19수요일이었다그날 체육관에서 나는 시계를 보며 계속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자동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목소리를 듣는 게 끔찍했다그의 SNS를 확인하며제발 어떤 흔적이라도 있기를 기도했다그날 체육관에 온 그의 파이터들 모두 연락받은 게 없다고 답했다다음 날나는 온라인 수감자 조회 시스템을 통해 그를 찾았다그는 2년 넘게 정기적으로 해오던 이민청 보고 중에 구금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나소 카운티 교도소에 구금되었다내가 전화를 걸자 교도관은 차갑게 소리쳤다. “아니요통화 못 해요그는 추방될 겁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그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지금 비행기에 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몇 시간 후그는 뉴저지의 한 구치소로 옮겨졌고이후 다시 바타비아 연방 시설로 이송되었다나는 일을 쉬고다음 2주 동안 변호사들과 지원 단체에 전화하며 매달렸다결국 그의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탈랍의 외부 옹호자가 되었고그 과정에서 탈랍이 러시아에서 수십 년간 박해와 차별을 겪다가가족에게 보복이 가해질 위험 때문에 2019년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1년 넘게 구금된 뒤, 2021년에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그의 변호사는 사건 재개를 신청했고판사는 지난 5월에 이를 허가했다새 심리는 8월 19일로 잡혀 있었다.

출처: Jia Li

그가 구금된 직후나는 바타비아에서 탈랍을 면회했다두꺼운 유리창 너머로수화기를 뺨에 붙이고 축 늘어진 채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나는 이번에는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15살 소년 오스카가 쓴 편지를 읽어주었다그는 몸을 곧게 세우더니내가 편지를 읽는 것을 멈추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그의 두툼한 볼살이 눈 아래를 밀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고눈을 깜박이자 눈물이 곧바로 흘러내렸다그러고는 말했다.

이 아이 좋다똑똑하다강하다성장한다.”

나중에 그의 또 다른 친구가 전해주기를그날 밤 탈랍이 전화를 걸어와 오스카의 편지를 들으니 마치 날개가 생겨서 감옥을 둘러싼 펜스를 훌쩍 넘어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탈랍은 나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그의 파이터들을 훈련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부끄러워하지 마그들에게 전화해훈련하러 와야 한다고 말해안 오면 안 되는 거야.” 20명이 넘는 그의 제자들 중탈랍이 없는 동안 체육관에 남아 훈련을 계속하는 건 몇 안 되는 헌신적인 파이터들뿐이었다.

출처: Jia Li

나머지 사람들은나는 안다모두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탈랍 마미르카노프(Talap Mamyrkanov)를 지원해 달라.

[출처LGBTQ+ Advocate Talap Mamyrkanov Faces Deportation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놀란 한슨(Nolan Hanson, he/they)은 뉴욕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복서이자 코치이며, 트랜스 복싱(Trans Boxing)의 설립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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