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어딨어!”
2025년 1월 20일 새벽,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폭동이 개인적으로는 계엄 사태에서 가장 충격을 준 장면이었다. 국회 상공에 헬기가 뜨고 군인들이 창문을 깨고 본회의장까지 난입한 장면도 그 못지않지만, 그건 어쨌건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수괴(首魁)’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에서 수긍하진 못하더라도 이해의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서부지법 폭동은 다르다. 내란을 저지른 윤석열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분노한 일반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해 서부지법을 둘러싼 경찰력을 무력화시키고 담을 넘고 문과 외벽을 깨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 수색하듯 법원 건물을 쏘다녔다는 게 아닌가. 그뿐일까. 이들의 폭동은 유튜브를 통해 고스란히 중계됐고, 또 누군가는 그 영상을 보고 슈퍼챗을 쏘며 재밋거리로 여겼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폭도들의 면면은 더 큰 충격을 줬다. 서울대 출신의 이른바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 치과의사와 약사, 복지센터 대표, 공인중개사, 물리치료사, 간호조무사 실습생, 대학생 등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웃집 극우 파시즘’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기록과 분석이다. 그래야만 사회 안전망도 재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특화된 이들이 바로 저널리스트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 ‘언론’ 이야기다.
엠키타카 MKTK YouTub 화면 캡처
법원,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에 대한 1심 선고…정윤석 감독도 ‘유죄’
서부지법 사태 후 “폭동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라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뜨거웠고,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폭동을 선동했던 유튜브 영상은 거꾸로 범행의 증거로 활용되면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과 인근 편의점에서 구매한 라이터 기름을 법원 안에 뿌리라고 지시하고 방화를 시도한 ‘투블럭남’, 소화기로 법원 통제장치와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며 7층까지 진입한 ‘녹색점퍼남’,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로 법원 출입문 셔터를 훼손한 윤 모 씨와 7층에 난입해 판사실 문을 부순 이 모 씨 등이 특정됐고, 폭동에 가담한 128명이 기소돼 법의 심판대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1일 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김우현 부장판사)는 ‘투블럭남’ 심 씨를 포함한 49명의 피고인에 대한 1심 선고를 진행했다. 그 결과, 법원의 방화를 시도한 심 씨에 대해 특수건조물침입·특수공무집행방해 및 현존건조물방화미수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하는 등 전원에게 유죄를 결정했다. 법원은 심 씨에 대해 “비록 미성년자였더라도 죄질이 매우 무겁다”라고 5년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피의자 83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는데, 그중 높은 형량을 받은 것이다. 심 씨는 본인의 형량을 듣고 “인생 망했다”라면서 또다시 난동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인과응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날 유죄를 선고받은 피의자 중 절대 1심이 확정돼선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다. 정윤석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포털 검색창에 ‘정윤석’이라고 치면 그가 그동안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나온다. 넷플릭스 <페르소나: 설리>(2023년), <밤섬해적단서울불바다>(2017년), <논픽션 다이어리>(2014년) 등 여러 작품을 찍었으며, 해당 작품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꾸준히 영상작업을 해왔던 사람이라는 얘기다.
정윤석 감독은 실제 20년간 용산참사를 비롯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가장 고통스러운 참사 사건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 왔다. 정윤석 감독은 해당 영상들을 본인의 작품 제작에 사용하거나, 때로는 언론사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정윤석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 갔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폭도들과 함께 8월 1일 법정에 피의자 신분으로 섰다. 그리고 법원은 정윤석 감독에게 2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법원은 정윤석 감독에 대해 “피고인은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거리를 두고 후문 울타리 쪽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만 하다가 체포됐을 뿐 다중의 위력을 보일 만한 행위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라면서도 “담장 밖에서도 촬영이 가능했고, 침입 없이도 다큐 제작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kbc광주방송>)라고 벌금 200만원이라는 유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표현의 자유 내지 예술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알 권리를 위한 보도 목적이 명백한 언론 기관과 비교해 수단과 방법이 상당한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오마이뉴스>)라고 덧붙였다.
서부지법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정윤석 감독은 무죄여야 한다!
법원이 정윤석 감독에 적용한 혐의는 ‘일반건조물침입죄’다. 솔직히 정윤석 감독이 피의자가 됐다고 했을 때만 해도 냉정히 ‘건조물침입죄는 맞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언론인들이 공익적 기사를 썼다고 하더라도, 기사 작성을 위한 위법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직전, 당시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현 방통위원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MBC의 정수장학회 지분을 매각해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의 ‘반값등록금’을 지원하자는 비밀회동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기사는 충분히 ‘공적인 관심 대상’이라는 점에서 공익 보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들의 대화를 녹음해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유예(2심) 했다. 이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다. 2005년 이른바 ‘삼성 X파일’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징역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 선고유예)를 받았다. 2009년 군부대 내 유흥주점 운영 실태를 고발한 MBC 김세의 전 기자도 ‘초소 침입죄’로 유죄(징역 1년, 선고유예 2년)를 확정받은 바 있다.
정윤석 감독이 ‘건조물침입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건 그동안의 통상적인 관례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정윤석 감독은 ‘무죄’ 판결을 받아야만 했다. 법원의 판결문은 더욱더 그래야 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정윤석 감독이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윤석 감독의 기록을 언론사 기자와 철저히 구분했다. ‘다큐멘터리는 담장 밖에서도 제작할 수 있었다’, ‘예술 표현의 자유가 있더라도 알 권리를 위한 보도 목적이 명백한 언론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전제가 틀렸다. 재판부는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거꾸로 물을 수 있다. 법원이 생각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는 언론사만이 수행할 자격이 있는 건가? 당연히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동안 정윤석 감독이 해왔던 수많은 기록과 행보는 이미 그가 저널리스트라고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는 ‘그래도 서부지법에 들어간 건 맞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맞다. 그래서 필자 또한 ‘건조물침입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이때도 정윤석 감독은 무죄여야 한다. 서부지법 내부를 취재한 JTBC 기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둘의 차이가 있다면 단 하나. 한 명은 언론사 소속의 정규직이고 다른 한 명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라는 것뿐이다. 법원이 정윤석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이유다.
“정윤석 감독의 항소를 응원합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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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