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와 석유

베네수엘라 공습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 : 백악관

미국 군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지 몇 시간 만에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매우 큰 석유 기업들이 들어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심각하게 망가진 기반 시설을 복구한 뒤국가를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트럼프는 이번 공격과 마두로 납치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미국의 통제 아래 두는 데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그는 이 석유를 우리의 석유라고 표현했다.

<전 세계 확인 매장 원유 보유량> 2023년 기준, 전 세계 확인 매장 원유 보유량은 약 1조 7,300억 배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캐나다 네 나라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런던에 본부를 둔 에너지 연구기관 에너지 인스티튜트(Energy Institute)에 따르면베네수엘라는 약 3,030억 배럴전 세계 매장량의 약 17%에 해당하는 석유를 보유하고 있으며이는 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매장량에도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여전히 잠재력에 크게 못 미친다한때 1970년대에 하루 350만 배럴전 세계 생산량의 7%가 넘는 수준까지 정점을 찍었던 생산량은 2010년대에 하루 200만 배럴 아래로 떨어졌고지난해에는 평균 하루 110만 배럴에 그쳤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 미국은 한때 베네수엘라 원유의 주요 구매국이었으며, 수입량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우고 차베스의 집권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에 부과한 미국의 제재 이후 수입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은 2000년대 이른바 셰일 혁명 덕분에 현재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다그러나 그 결과 세계는 점점 석유 과잉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공급이 수요 증가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수요 증가가 둔화는 이유는 주요 경제권 대부분에서 경제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에너지 생산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을 당시기준유인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약 60달러로 5년 만의 최저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  2020년 초 팬데믹 시기에 가격이 급락한 뒤, 2022년에 정점을 찍었고, 이후 하락과 등락을 거쳐, 2025~2026년에는 배럴당 약 60달러 수준으로 내려온 흐름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세계 주요 석유 기업들에 자신이 이제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고 있으며그들이 투자에 나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석유 기업들은 그렇게 확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전 셰브론 임원인 알리 모시리(Ali Moshiri)는 베네수엘라의 여러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20억 달러를 조달하겠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하지만 이는 일종의 도박에 가깝다이미 미국 정부로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시추와 생산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셰브론 같은 기업조차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석유 산업의 시추 기반 시설은 심각하게 노후화되어 있고생산되는 원유는 중질유이기 때문이다이 초중질유를 채굴하려면 비교적 수명이 짧은 유정을 다수 시추해야 하는데이는 미국 셰일 오일 생산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이후 이 점성이 높은 원유를 파이프라인으로 수송하고 수출·정제할 수 있도록더 가벼운 원유나 나프타와 혼합해야 한다중질유 생산에는 증기 주입이나 경질유와의 혼합처럼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고급 기술도 필요하다게다가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대부분 오리노코 벨트에 집중되어 있는데이 지역은 국토 동부에 있는 광대한 오지로 약 5만 5천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이미 석유 공급 과잉은 추가 탐사와 채굴의 수익성을 잠식하고 있다미국 셰일 산업은 2010년대에 누적 손실이 거의 5천억 달러에 달했다모든 것은 손익분기 가격에 달려 있는데미국 셰일 오일의 평균 손익분기 가격은 배럴당 약 60달러로 추정된다이러한 상황은 전 세계 석유 공급이 수요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석유 공급이 2025년에 하루 300만 배럴, 2026년에 추가로 하루 24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반면수요 증가는 2025년에 하루 83만 배럴, 2026년에 하루 86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호르헤 레온(Jorge León)은 생산량을 2030년대 초까지 하루 200만 배럴로 거의 두 배 늘리려면 1,15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는데이는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지난해 자본 지출을 합친 금액의 약 세 배에 해당한다이런 세계적 수급 상황에서그것도 기준유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할 중질유로 엑손과 셰브론이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나선 배경에는 석유 말고도 다른 요인들이 있다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1820년대의 먼로 독트린이 한층 강화된 형태로 되살아났다는 것이다당시 먼로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이 라틴아메리카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되며이 지역은 이제 미국의 영향권이라고 선언했다오늘날 트럼프 체제하에서는 세계화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로 대체되었고그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제국주의의 확고한 뒷마당으로 설정하고 있다이는 어떤 국가도 미국의 정책과 이익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미국 자원을 특권적으로 이용하고 경쟁자들에게는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논리다그 결과 이 지역에서 커져온 중국의 영향력과 투자는 차단되어야 한다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이 하루 1,13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그중 30만 배럴에 불과했지만중국 기업들은 이미 베네수엘라의 석유 시추 산업에서 일정한 발판을 확보하고 있었다.

나는 2024년 마두로의 논란 많은 재선 당시에도 지적했듯이베네수엘라 자본주의는 에너지 부문의 수익성과 긴밀히 결합해 있었고이 부문은 2010년 이후 유가 폭락과 미국의 제재로 인해 사실상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베네수엘라: 순자본 스톡 대비 이윤율(EWPT 시계열)>  마지막 구간에서는 이윤율이 1.7% 수준까지 떨어진 모습이 표시되어 있다.

차베스 집권기인 2000년대에 노동계급이 누렸던 성과는 유가가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러나 이후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이는 차베스의 사망 시기와 거의 겹쳤다초인플레이션이 생활 수준을 파괴하면서 마두로 정부는 노동계급 지지층을 잃었다그 결과 마두로 정부는 점점 노동계급의 지지가 아니라특별한 특권을 누리던 군부에 의존하게 되었다군부는 군 기지 내 전용 시장 등에서 물자를 구매할 수 있었고대출과 자동차·아파트 구매에서 특혜를 받았으며상당한 임금 인상도 누렸다또한 환율 통제와 보조금을 악용해예컨대 인접 국가에서 값싸게 구입한 휘발유를 막대한 이익을 남기며 되팔았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모든 것이 유가에 달려 있었다는 점이다비석유 부문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거나 전혀 발전하지 않았고그마저도 민간 기업들의 손에 있었다국가가 통제하는 독립적인 투자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여기에 미국의 제재와 정부를 끊임없이 흔드는 전복 시도가 더해지면서차비스타 혁명의 운명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주는 교훈이다. 1980년대 이후 이 지역에서 진행된 탈산업화와 원자재 수출 의존의 심화는 농산물금속석유 등 가격 변동성이 큰 상품 시장의 등락에 모든 경제를 종속시켰다미국 제국주의의 그늘 아래서 국내 자본과 경제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는어떤 독자적인 경제 정책도 추진하기가 불가능하다.

[출처Venezuela and oil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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