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는 한여름이어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다룬 몇 권의 책들을 조용히 읽어보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이번 글은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간단한 서평에 가깝고, 더 자세히 다뤄야 할 가치가 있는 신간들은 제외했다.
먼저, 미국의 경제 패권과 달러를 다루는 두 권의 책부터 시작해보자. 주류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가 ⟪우리의 달러, 당신들의 문제⟫(Our dollar, your problem)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제목은 1971년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존 코널리(John Connally)가 유럽 재무장관들에게 했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 가치를 20퍼센트 절하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때 코널리는 이렇게 말했다.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다.”
자신의 책에서 로고프(Rogoff)는 세계 시장에서 ‘달러 패권(Pax Dollar era)’이 끝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트럼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상품 세계 무역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로고프는 다른 어떤 통화도 무역이나 금융에서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달러 약세의 원인은 미국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공공 부채의 급격한 증가로, 현재 미국의 부채 규모는 GDP의 125%에 근접하고 있다. 로고프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만약 미국의 방만한 부채 정책이 높은 실질금리와 지정학적 불안정성에 계속 부딪히고, 정치적 압력이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억제하는 능력을 제약한다면, 그것은 결국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공공 부채 문제는 항상 로고프가 주장해온 핵심 논지였다. 그는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공동 집필한 책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로 유명(혹은 악명)한데, 여기서 그는 경제 및 금융 위기가 부채, 특히 공공 부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즉, 한 나라의 공공 부채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통화 위기가 발생해 경제 전체가 붕괴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고프와 라인하트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실증 분석은 한 대학원생에 의해 심각한 오류가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위기를 일으키는 것이 높은 공공 부채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문제다. 경기 침체와 경제 슬럼프는 국가의 산출을 감소시키고, 정부 재정을 악화시켜 적자를 늘린다. 주요 선진국에서 공공 부채 비율이 급등한 주된 이유는 사실 민간 부문 위기로 인한 것이다.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부실로 인해 은행 붕괴와 경기 침체가 발생했고, 정부는 이를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부채 발행과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라는 돈 풀기를 단행했다. 이렇게 민간 부문 위기의 부담은 공공 부문으로 전가되고, 이후 다시 긴축 조치를 통해 노동자 계급에게 전가된다. 둘째,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나라의 통화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은 공공 부채의 증가가 아니라 민간 부문 부채의 증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로고프는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민간 부문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경제학자 잭 래스머스(Jack Rasmus)는 미국 제국주의와 달러의 상대적 쇠퇴를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의 신간 ⟪미국 제국주의의 황혼⟫(The Twilight of American Imperialism)은 오는 10월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서 그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지배력의 점진적인 약화 과정을 다루며, 이것이 미국 달러를 금본위제에서 분리시킨 배경이 되었고, 존 코널리(John Connally)의 발언으로 이어졌음을 설명한다.
래스머스는 미국 경제 내부의 모순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21세기에 들어서 미국은 브릭스와 다른 저항 세력들의 도전에 직면하자, 패권을 방어하기 위해 점점 더 전쟁에 의존하게 되었다. 미국 제국은 현재 세기의 첫 10년 중반쯤에 전 세계적 경제 패권뿐만 아니라 지정학적·군사적 영향력 측면에서도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경제, 정치, 사회, 기술, 심지어 문화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미국 제국의 모든 핵심 영역에서 쇠퇴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트럼프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있다. 그는 서반구와 태평양 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브릭스(BRICS),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적·비경제적 대결을 준비하는 한편, 차세대 군사 및 방위 기술을 위한 자금 확보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은 현재 <이코노미스트>에서 활동 중인 던컨 웰던(Duncan Weldon)의 신간으로, 그는 국가들이 세계적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이 비싸고 파괴적이지만 때로는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전쟁은 국가와 엘리트 집단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이다. 웰던은 전쟁의 역사가 현대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나에게 현재 주요 경제권이 복지(welfare)에서 전쟁(warfare)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이들 경제가 점점 더 약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사적 부문에서 일어나는 일이 공적 부문보다 경제 위기와 금융 붕괴의 원인으로서 더 중요하다는 점은 포스트 케인스주의 좌파 경제학자 스티브 킨(Steve Keen)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메시지다. 킨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마르크스의 가치법을 무효하고 무관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킨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을 이윤율의 변화에서 찾는 대신, ‘과도한‘ 사적 부채에 주목한다.
킨은 그의 저서 ⟪경제학 깨부수기⟫(Debunking Economics)에서 주류 경제학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제 그는 ⟪돈과 거시경제: 첫 원리에서부터⟫(Money & Macro from First Principles)라는 신간을 냈는데, 부제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와 다른 엔지니어들을 위한 책”이다. 여기서 그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자유시장 경제학에 기반한 일론 머스크의 경제 아이디어를 해체한다. 킨은 정부 지출보다 민간은행 대출이 경제 안정성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바로 사적 부채 거품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사적 신용이 거품이 되어 결국 붕괴했는가? 그 근본 원인은 단순한 금융 부문이 아니라, 자본 축적과 생산이라는 ‘실물’ 경제 내부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자본의 이윤율 변화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다.
세계 경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위기의 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자유시장’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가장 최근 비판서로는 냇 다이어(Nat Dyer)의 신간, ⟪리카도의 꿈: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현실 세계를 잊었는가⟫(Ricardo’s Dream: How Economists Forgot the Real World)가 있다. 이 책에서 다이어는 현대 경제학이 실물 경제와의 연결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부의 분배, 무역, 노동 역학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연구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은 역사적·정치적·사회적 현실을 무시한 채 수학적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해 과도하게 추상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다이어는 경제학이 역사, 사회학, 정치학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리카도의 접근 방식과 흡사하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여러 저자들이 같은 지적을 해왔다. 그러나 다이어의 책은 여전히 독자에게 흥미롭고 몰입감 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더 폭발적인 책은 퀸 슬로보디언(Quinn Slobodian)의 신간 ⟪하이에크의 사생아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와 민주주의 해체⟫(Hayek’s Bastards: The Neoliberal Project and the Unmaking of Democracy)이다. 이 책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같은 겉으로는 객관적인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어떻게 민영화, 노조 탄압, 공공서비스 파괴, 규제 완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변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책이 더 흥미로운 지점은, 하이에크의 경제학이 단순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극우 세력에게까지 흡수되었다는 점이다. 슬로보디언은 오늘날의 강경 우파 반민주주의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하이에크의 사상을 충실히 따르는 “사상적 사생아(bastard offspring)”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민자 노동을 제외하면 자유무역과 시장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 내부적으로 인종적 차이와 부족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있다. 즉, 서로 다른 인종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운다. 그 근거로, 북반구 에서 정보기술(I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백인의 높은 IQ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슬로보디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세계적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미제스와 하이에크 같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사상적 사생아들은 민주주의로부터의 도피를 설교했다. 그들이 찾은 ‘안전’은 금, 가족, 기독교였다. 국가 화폐로부터 벗어나 손에 무게감 있게 쥘 수 있는 금속에 투자하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나는 하이에크가 그의 저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국가의 통제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자유를 종말로 이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케인스는 하이에크에게 편지를 썼다.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나는 거의 전적으로 당신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깊이 감동한 동의입니다.” 즉, 하이에크의 반(反)사회주의적 입장은 단순히 자유지상주의적 파시스트들의 간판 구호였던 것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군사 쿠데타로 피노체트 장군이 집권한 뒤 칠레를 방문했다. 그는 1981년 독재 체제가 절정에 달했을 때, 비냐 델 마르(Viña del Mar)에서 ‘자유시장’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모임인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 회의를 조직했다. 또한 정부 친화적 신문인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되었다(당시 반정부 신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Mi preferencia personal se inclina a una dictadura liberal y no a un gobierno democrático donde todo liberalismo esté ausente.” (후안 T. 로페스(Juan T. López), ‘하이에크, 피노체트, 그리고 그 밖의 몇몇’(Hayek, Pinochet y algún otro más), <엘 파이스>(El País), 1999년 6월 22일) 대략 번역하면, “나는 모든 자유주의가 배제된 민주적 정부보다 자유주의적 독재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슬로보디안은 이러한 하이에크의 관점이 21세기에 들어 더욱 확산했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그리고 이제는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까지, 모두 이 흐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 체제를 ‘뒤흔드는 디스럽터(disruptors,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방식이나 산업을 변화시키는 주체나 요소 ’라고 불리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사실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의 주체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더 급진적 전선을 구축하는 세력에 가깝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 또한 독재 국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중국의 사례는 하이에크의 ‘사생아들’과는 무관하다. 중국을 다룬 새로운 책 두 권이 최근 출간되었다. 그중 하나인 ⟪떠오르는 중국: 다극 시대 구조적 권력의 변환⟫(China on the Rise: The Transformation of Structural Power in the Era of Multipolarity)에서 에페 잔 귀르잔(Efe Can Gürcan)과 잔 돈두란(Can Donduran)은 영국의 경제학자 고(故) 수잔 스트레인지(Susan Strange)의 개념인 “구조적 권력”을 활용해 중국의 부상을 설명한다.
저자들은 스트레인지의 접근법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이 방법이 매우 절충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시각의 통찰을 종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저자들은 중국의 부상은 공격적인 정치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경제 발전’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에게 이 결론은 너무 자명해 보인다. 그 이상으로, 이 책은 중국 부상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제공하지 못한다.
중국 경제학자 란샤오환(Xiaohuan Lan)은 그의 저서 ⟪중국은 이렇게 작동한다⟫(How China Works)에서 훨씬 더 핵심을 짚는다. 이 책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다. 란은 중국의 부상이 자본주의 부문의 성장 때문이라기보다 주로 국가(stat의 역할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계획경제를 옹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중국에는 소련식 계획경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논의는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결론이 중국 공산당(CP)의 정책과는 다소 엇나간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중국의 경제 운영 방식이 소련식 중앙계획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중국 정부는 여전히 국가와 민간 부문 모두가 따라야 할 발전 목표를 제시하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란샤오환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 시스템은 세 가지 주요 구성 요소를 가진다. 막대한 자원과 높은 자율성을 가진 지방정부, 강력한 조정 및 통제 능력을 가진 중앙정부, 우수한 인적 자본을 갖춘 잘 조직된 관료 체계. 여기에 더해, 나는 국유 금융 부문과 전 산업에 걸쳐 존재하는 대형 국유기업도 중국 경제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추가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몇몇 신간들이 출간되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최근 자신의 신간에서 자신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간의 대화를 기록한 책을 출간했다. 피케티는 전 세계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0년 전 주류 경제학계를 강타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21st Century)으로 명성을 얻었다. 한편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뉴스위크>(Newsweek)에서는 그를 “록스타 도덕철학자”라고, <뉴 스테이트먼>(New Statesman)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철학자”라고 묘사한 바 있다.
그들의 책 ⟪기울어진 평등: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Equality: What It Means and Why It Matters)에서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은 세계의 불평등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에 대해 토론한다. 그들은 부유층과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숨기는 것을 막기 위한 자본 통제를 원한다. 피케티는 또한 4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 정부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폐지된 누진소득세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와 샌델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일종에 합의하는 듯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보건·교육을 포함한 공공 서비스 제공을 확대하고,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성을 강화해 “경제 전반의 의사결정 과정에 더 넓은 참여를 보장”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결국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의 회귀처럼 보인다. 즉,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혁해 더 공정하고 관리 가능한 체제로 만들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1970년대 자본주의의 전후 황금기가 종말을 맞았을 때 이미 처참히 실패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을 불평등으로 보는 관점의 문제는, 왜 불평등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피케티의 2014년 대표작에서도 드러난 한계였다. 불평등은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누진세 강화나 공공 서비스 확충 같은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 자본주의적 축적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착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I. 로빈슨(William I. Robinson)은 곧 출간될 신간 ⟪시대적 위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소진⟫(Epochal Crisis: The Exhaustion of Global Capitalism)에서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거시적 분석(big picture analysis)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다음 달 초 출간될 예정이다.
윌리엄 I. 로빈슨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모순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갱신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소진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전례 없는 다차원적 위기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다는 주장을 이론적·실증적 증거를 통해 제시한다. 그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 예컨대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일시적으로 자본주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 회생은 일시적일 뿐이며, 로빈슨이 제시하는 시간적 전망은 수십 년 단위에 불과하다.
로빈슨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위기 이론의 기본 원리를 검토하며, 이러한 소진의 정치적·생태학적 구성 요소를 함께 분석한다. 그는 구조적 위기의 근원이 축적 과정의 지속적 진행을 가로막는 장애물, 즉 이윤 창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로빈슨에 따르면, 축적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사실상 “과잉 축적” 위기, 즉 수익성에 비해 과도한 자본 과잉생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로빈슨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없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급투쟁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 한, 이 체제는 수십 년간 계속 존속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생물권의 붕괴와 사회 재생산의 대규모 붕괴가 도래하여 자본의 재생산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시점에 이르면,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로빈슨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세계 자본주의의 ‘시대적 위기’는 정치와 분리해 이해할 수 없으며, 체제의 운명은 사회적·생태적 투쟁과 맞물려 있다.
[출처] Dollar decline; the failures of mainstream economics and epochal crisis – review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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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