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관세는 특정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 맥락이란 미국 정부가 더 높은 관세로 발생하는 세수를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들도 트럼프 관세로 인해 미국 시장을 잃게 되면 자국 내 시장 확대를 통해 이를 보전할 수 없다. 이러한 확대는 정부 지출 증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재정적자나 부자 과세를 통해서만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현행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국가가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엔 금기 사항이다. 따라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총수요의 축소를 의미하며,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즉,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늘리더라도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악화시켜 미국과 다른 나라 전체를 합친 생산 수준을 낮춘다는 사실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제 세계 총수요가 어떻게 줄어드는지를 보자.
출처: Marek Studzinski, Unsplash
관세는 수입품 가격을 임금 대비 상대적으로 올려, 최소한 일부는 수입품이 국내 생산품으로 대체되도록 만든다. 물론 모든 수입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일부는 사라진다. 남는 수입품에는 정부가 관세 수입을 올리는데, 이는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즉 대다수 노동자 계급이 부담한다. 다시 말해 관세는 수입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세수를 발생시키는데, 이는 노동자 계급에서 정부로 구매력이 이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은 구매력을 거의 전부 상품과 서비스에 쓰므로, 정부가 이 세수를 다시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쓴다면 해당 국가의 총수요 수준은 줄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총수요는 줄어든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트럼프 관세로 발생한 세수는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쓰이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자들에게 막대한 세금 감면을 해왔고, 관세 수입은 이런 감면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쓰인다. 즉, 관세 수입은 전혀 지출되지 않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만 쓰이므로, 정부가 거둔 모든 달러는 미국 내 총수요를 줄인다. 다른 나라 정부 지출이 늘어나 미국의 수요 감소를 상쇄하지 않는 한, 세계 전체적으로 총수요는 줄어 세계경제의 침체를 심화시킨다. 미국 내부에서는 총수요가 줄더라도 국내 생산이 수입을 대체하며 늘어날 수 있다. 즉, 미국 내 경기침체는 관세로 완화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세계 전체—미국과 다른 나라를 합쳐—에서는 활동 수준이 줄어든다.
이는 단순히 미국이 “실업을 수출한다”거나 “근린궁핍화” 정책을 쓴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미국의 국내 생산이 관세 덕분에 100만큼 늘어난다면, 세계 다른 지역의 생산은 100이 아니라 120이나 150만큼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전체적으로는 생산 수준이 축소된다. 즉, 미국의 활동은 늘리면서 세계 전체 활동은 줄이는 경우다.
이 결론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관세에 보복하더라도 전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 역시 국내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얻은 관세 수입을 재정적자를 줄이거나 부자 감세에 쓰면, 이들이 소득의 작은 일부만 소비하기 때문에 세계 총수요는 더 크게 줄어든다. 다시 말해 보복 관세는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수요와 생산을 되돌릴 수는 있어도, 세계경제 전체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치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를 더 심화시킨다.
그러나 관세에 대한 통상적인 논의는 이 마지막 지점을 전혀 짚지 않는다. 관세를 단지 수요와 생산을 다른 나라에서 자국으로 돌리는 수단으로만 본다. 하지만 관세가 노동자 계급의 희생으로 얻은 세수를 정부가 전혀 쓰지 않고 단지 저축으로만 남겨두는 상황에서 부과된다면, 이는 세계 전체 수요와 생산을 줄이는 추가 효과를 낳고,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를 복합적으로 악화시킨다.
이 위기 맥락에서 미국의 역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자본주의 세계의 지도자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 여론에 따르면 미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협조적 접근을 주도해야 했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케인스는 이런 국제적 협력 행동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벌어지는 일은 정반대다.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해 자신만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려 하지만, 그 방식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위기 해결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세계를 희생시켜 미국만 빠져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가 악하거나 어리석어서 “깨달은” 해결책을 외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이 자본주의의 본성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계획된 체제가 아니므로 직면한 위기에 “합리적” 해결책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은 단순히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은 위기에서 빠져나오면서 세계,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더 깊은 위기로 몰아넣는 모습은 각종 무역 협상에서의 요구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은 우선 상대국에 매우 높은 관세를 위협하고, 협상국이 여러 미국 상품을 무관세로 받아들이면, 위협했던 것보다 낮은 관세로 타협한다. 실제로 여러 나라와 이런 식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인도의 경우, 미국이 발표한 주요 수출품(섬유, 보석, 의약품)에 대한 관세에서 일부 양보를 얻기 위해 미국산 유제품, 과일, 견과류 등을 무제한 수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수입품과의 경쟁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백만 인도 농민에게 고통을 안길 것이다. 이는 미국 농민이 더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부당하고 차별적으로 이 보조금을 금지 보조금 목록에서 제외했다.
신자유주의는 나라를 농민의 이익과 제약·보석·의류 생산자의 이익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책은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체제 자체를 초월하는 것, 즉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출처] A Less Noticed Implication of Trump Tariffs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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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