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일 밤 9시경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용인신선센터에서 만 52세 남성 일용직 노동자 이모 씨가 가 작업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날 밤 11시경 끝내 사망했다.
쿠팡은 “의료진의 구두 소견”을 언급하면서 고인의 “지병으로 인한 병사”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이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쿠팡 물류센터의 강도 높은 야간노동”을 비롯한 “살인적인 고용구조와 작업환경”이 근본적 원인이라면서 특별근로감독 등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쿠팡 용인신선센터 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고인은 올해 7월 2일부터 쿠팡 용인신선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시작해 총 18일을 근무했다. 이중 14일은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야간노동을 하는 오후조로 일해왔다. 사고 전 2주 동안에는 한 주에 3일씩 야간노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은 신선센터 내 냉동창고에서 상품 분류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계에서는 “노동강도가 높은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야간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에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은 쿠팡 물류센터의 고된 노동강도와 노동자들의 건강에 위협이 됨에도 규제받지 않는 야간노동이 맞물려 발생한 중대재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14일, 쿠팡 안성8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한 사고 등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적응 기간 없이 갑작스럽게 높은 강도의 야간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고, 이같은 “야간 근무 일용직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쿠팡은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이하 ‘쿠팡물류센터지회’)는 22일 오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쿠팡의 산재사망 근절을 위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냉동창고, 오랜 경력자도 꺼리는 고된 현장”… 신선센터 노동자 증언 나와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인이 일했던 쿠팡 신선센터(용인5센터) 동료 노동자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자신을 “쿠팡 용인5센터에서 출고 업무를 했고, 현재도 종종 출근을 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라고 소개한 익명의 노동자는, 이날 자신의 경험을 담은 발언문을 보내와 “쿠팡 신선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일용직 노동의 현실”을 알렸다.
그가 쿠팡 용인 신선센터 오후조 노동자의 업무 일과에 대해 소개한 바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출근 후 오후 5시부터 6시 30분까지 1시간 30분가량 업무를 진행하고,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1시간 휴식 및 식사시간을 가진 후, 7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6시간 30분을 연속으로 근무해야” 하며 “연장을 하게 된다면 7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는 “중간에 휴식시간은 없다”면서 “짧게 10분 정도 화장실을 다녀오는 게 그나마 있는 휴식시간이라면 휴식시간이나,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제가 해야 할 노동을 다른 사원님들이 대신해야 해, 마음 편히 휴식을 가질 수도 없다”고 전했다.
또한 “오후조는 특히 11시 30분부터 마감을 쳐야 하기 때문에 업무의 강도는 새벽이 될수록 점점 높아져, 물량이 쏟아지고 처리해야 할 물건의 양도 더 무겁고 다양해진다”면서 “추운 환경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힘든 강도의 업무를 장시간 연속으로, 그것도 새벽시간에 진행하는 것은 몸에 어쩔 수 없이 무리가 오게 하는 구조”로 “저 역시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으며, 근무 중 여러 차례 어지러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이 일했던) 냉동창고는 영하 18도의 온도에서 45분 근무 후 15분 휴식시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쿠팡 신선센터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원님들도 냉동창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휴식시간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영하 18도의 추운 곳에서 하루 종일 근무하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휴식도 짧은 시간이라 비교적 따뜻한 휴게실까지 가서 쉬기보단 그냥 냉동창고 입구 앞에 앉아 쉬었다가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창고 입구라고 따뜻한 환경이 아니라, 그냥 덜 추운 환경일 뿐”이라는 점도 짚고는, “사망한 분께서 냉동창고에서 몇 차례 근무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새벽 시간에 장시간 추운 곳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육체노동을 했던 것이 몸에 많은 무리를 주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쿠팡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했던 노동자로서 이번과 같은 사망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공포감을 느낀다”, “어찌 보면 저 역시 운 좋게 생존해 지금까지 근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대한민국 일등 온라인쇼핑 회사의 현주소가 노동자들의 생명과 권리를 착취하는 곳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 밝히고는, “쿠팡에서 다시는 안타까운 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쿠팡은 책임지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고용노동부는 진상규명을 위해 앞장서서 근로감독하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병사가 아니라, 쿠팡에 의한 죽음”
정동헌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고인이 일하다 사망한 신선센터는,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현장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로 다른 물류센터들에 비해 휴게시간이 적게 지급되고 업무강도가 강한 곳”이라며 “쿠팡은 ‘병사’라고 얘기하지만 고인의 죽음은 ‘쿠팡에 의한 죽음’이다”라고 짚었다.
그는 “사람 잡는 심야노동과 로켓배송을 위한 속도경쟁에 근본대책이 필요”하고, “산재다발기업, 죽음의 기업 쿠팡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면서, “대통령과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반복되는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겠다”고 밝힌 정부에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및 쿠팡을 안전한 일터로 만들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 “노동자들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한 “쿠팡물류센터지회는 고인의 죽음에 한 치의 억울함이 없도록 함께 하겠다”, “죽음의 쿠팡 물류센터를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쿠팡 용인신선센터 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산재사망 ‘직보’만 받으면 무엇하나”…”죽음의 현장, 시스템 바꿔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한 목소리로 쿠팡에서 거듭되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노동자의 목숨을 로켓배송과 로켓배달의 연료로 삼고 있는 쿠팡은, 기어이 한 노동자의 목숨을 또 연료로 태웠다”면서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직보(직접보고)’를 요구하고,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쿠팡 동탄 물류센터를 다녀가면 뭐하는가”,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는데, 보고만 받고 있는가”라며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비롯해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김 부위원장은 또한 “(노동자가) 지병이 있어서라는 쿠팡식 변명”을 규탄하면서, “(계속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원인은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고, 불안정 일용직 고용 시스템”이라 지적하고,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산재사망도, 퇴근 없는 출근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25만 공공운수노조와 12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영구 불매에 직면하고 싶지 않다면, 구조,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노동자 갈아넣는 살인적 쿠팡에, 특별근로감독 지시해야”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재명 정부는 산재사망 근절 원년을 만들겠다며 모든 부처에 산재 대책안을 제출할 것을 지시하고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면서 “그런데 지난 19일 청도 열차사고로, 20일 쿠팡 용인물류센터에서, 21일 순천 레미콘공장 간이탱크 안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환기했다.
또한 “쿠팡에서는 2020년부터 오늘까지 무려 23분이 돌아가셨고, 4년간 발생한 산재는 무려 7천 건에 달한다”면서 “이처럼 매년 쿠팡에서 엄청난 산재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쿠팡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며 정부의 책임을 짚고는 “이재명 정부는 20일 발생한 쿠팡 노동자 사망에 대한 근본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노동자를 갈아넣는 살인적인 쿠팡의 고용구조와 작업환경, 노동조건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지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 국민 생명 지킬 책임 다해야”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우리 산재 사망 노동자 유족들은 더 이상 쿠팡에서 사망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는 30대 초반에 삶이 멈출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다 근육파괴로 세상을 떠난 고 장덕준, 같은 공간 바로 뒤에서 남편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밀려 나오는 물건 처리에 급급해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던 고 김명규의 아내, 새벽 7시까지 업무를 마감해야만 다음 물량을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에 개처럼 뛰고 있다고 카톡방에 글을 남기고 과로사로 우리곁을 떠난 고 정슬기” 등 쿠팡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호명했다.
김미숙 대표는 “(기업들이) 사람의 생명을 계속 죽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개탄하고, “쿠팡의 극악무도한 폭력”을 규탄하면서 “하루빨리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길 바란다”고 힘 주어 당부했다.
쿠팡 용인신선센터 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사망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며, 쿠팡의 안전조치 등 안전관리 책임 이행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 관계자는 “(사측은) 근무자에게 방한복 등 착용과 안전교육, 사전 체조 등 안전조치를 실시했다”면서 “경찰이 지병 등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며 “병원 의료진은 병사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동조합에 따르면, 쿠팡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020년 이후에만 23명에 이르고, 지난 4년간 쿠팡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7,000여 건에 달한다.
아래는 쿠팡물류센터지회에서 파악한 2020년 이후 쿠팡 사망자 명단이다.
2020년 이후 쿠팡 사망자 명단
(2025년 8월 22일 기준, 쿠팡물류센터지회 파악)
2020년 1월. 쿠팡 동탄 물류센터 일용직 여성 노동자 최 모 씨(50대) 야간근무 후 사망 (과로 추정)
2020년 3월. 쿠팡 안산 1 캠프 배송노동자 A 씨(40대) 야간배송 중 사망 (과로 추정)
2020년 5월. 쿠팡 인천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B 씨(40대) 야간노동 중 사망 (과로 추정)
2020년 6월. 쿠팡 천안 물류센터 도급업체 노동자 박 모 씨(39세) 유해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사망
2020년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 계약직 청년노동자 장덕준(20대) 야간노동 후 사망 (과로 산재 인정)
2020년 11월. 쿠팡 마장 물류센터 하청노동자 최 모 씨(50대) 근무 중 쓰러져 사망 (과로 추정)
2021년 3월. 쿠팡 구로캠프 관리자 C 씨(40대) 귀가 후 사망 (과로 추정)
2021년 3월. 쿠팡 송파 1 캠프 야간 배송노동자 이 모 씨(40대) 고시원에서 사망 (과로 추정)
2021년 3월. 쿠팡 인천 지역 배송노동자 김 모 씨(40대) 배송 중 사망 (과로 추정)
2022년 2월. 쿠팡 동탄 물류센터 노동자 노 모 씨(50대) (뇌출혈, 과로 추정)
2023년 1월. 쿠팡 인천 3 캠프 하청노동자 D 씨(50대) (과로 추정)
2023년 1월. 쿠팡 광주 물류센터 노동자 정 모 씨(40대)
2023년 2월. 쿠팡 인천 4센터 노동자 F 씨(50대)
2023년 2월. 쿠팡 목천 물류센터 하청 화물노동자 송 모 씨(60대)
2023년 10월. 쿠팡 군포 물류센터 택배 노동자 박 모 씨(60대) (과로 추정)
2024년 5월. 쿠팡 남양주 2 캠프 배송노동자 정슬기 씨(40대) 야간노동 후 자택에서 사망 (과로 산재 인정)
2024년 7월. 쿠팡 경산 퀵플렉스 택배 노동자 G 씨 폭우에 휩쓸려 사망
2024년 7월. 쿠팡 제주 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H 씨 분류작업 중 쓰러져 사망 (과로 추정)
2024년 7월. 쿠팡 화성 동탄 택배 노동자 I 씨(50대) 야간노동 후 사망 (과로 추정)
2024년 8월.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주 J 씨 캠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2024년 8월. 쿠팡 시흥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김 모 씨(40대) 근무 중 사망 (과로 추정)
2025년 3월. 쿠팡 안성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진 모 씨(50대) 새벽 근무 중 쓰러져 사망 (과로 추정)
2025년 8월 20일 오후 9시 09분경 쿠팡 용인물류센터 50대 일용직 노동자 작업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