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보육정책을 시장원리에 맡기지 마라

김지희, "보육시설간 경쟁, 보육료 상승으로 이어질 것"

보육의 공공성을 위한 각계의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5일 어린이날을 전후로 여러 사회단체에서 토론회 및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10일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보육예산에 대한 국가정책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보육은 아이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최초의 평등’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국가의 보육정책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정부가 보육예산을 올해 들어 50% 가까이 늘렸지만, 무상교육과 보육공공성과는 이전보다 더 거리가 멀어졌다는 비판이다.

보육료 부담되지만 안심하고 맡길 곳 없어 개인양육서비스 이용

여성부(장관 장하진)는 지난달 13일 2004년 9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실시한 전국 보육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전국 1만 2천 가구, 6,412명의 아동과 전국 보육시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번 조사 결과, 부모들은 육아지원 정책에 바라는 점으로 자녀양육비용 지원(44%), 국공립기관의 확충(18.7%), 보육의 다양성 증대(15.5%)를 들었다. 또 보육비용에 대해 부담스럽게 느끼는 비율이 무려 61.6%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직장 여성의 50%가 자녀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으며 23%는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아동이 있는 가구 중 56.2%가 국공립 시설을 선호한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로 54.1%가 “비용이 저렴해서”를 꼽았다. 하지만 국내 국공립 어린이집은 현재 총 시설의 5.3%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또 0~5살 아동을 둔 여성의 22.6%가 혈연, 베이비시터, 탁아모 등 개인양육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특히 직장여성의 경우 44.5%(중복응답)가 조부모 등 혈연에게 양육을 맡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혈연과 탁아모 같은 개인양육지원서비스를 이용할 때 보육시설보다 이용비를 다소 높게 지불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동 1인당 월평균비용이 16만5000원인 데 비해 혈연에게 보육을 맡길 때 지불하는 비용은 월평균 24만7000원이었다. 탁아모나 베이비시터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더 높아 월평균 44만5000원을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직장여성 10명 중 8명은 월급의 1/3을 보육료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혈연 등 개인양육서비스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고, 이에 따른 양육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보육료 지원 강화’ 정부정책, 오히려 보육료 부담 늘린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의 보육정책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가 보육료의 50%를 지원하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을 조성한다’를 보육정책의 큰 틀로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국공립시설 확충이나 시설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은 채로 개별 아동에 대한 보육료 지원만 하겠다는 점이다.

2005년 보육예산이 전년도 대비하여 약 50% 정도 증액되면서 여성부는 아동별 보육료지원 비율을 높여 수요자인 부모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보육시설의 인건비 지원을 감소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인건비 지원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보육시설의 재정 부족분은 보육료를 현실화하여 충당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됐을 경우 부모들은 50%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상승한 보육료에 따른 부담을 져야한다.

실제로 2005년도 보육료 표준단가비율은 작년도 대비 16% 이상 상승했다. 이는 4월 1일 발표된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비교할 때 무려 5배나 높은 상승률이다. 이렇듯 보육료 단가가 상승한 이유는 여성부가 아동별 지원 정책을 펼치면서 인건비 등 보육시설에 지원하는 비용을 축소하였고, 그에 대한 시설의 손실분을 보육료단가 현실화라는 명목 하에 보육료 상승으로 해소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육료 50% 지원’ 정책의 실체는 국공립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시설의 뵤육료 상승을 부추기는 한편, 이에 따른 보육료 부담을 부모에게 다시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윤경 전국보육노동조합(보육노조) 사무처장은 “정부는 총보육비용을 보육료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보육비용 안에 포함돼있던 인건비, 시설보수비, 운영비가 보육료로 들어가면서 전체 보육료는 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저소득층 부모들은 보육료를 지원 받더라고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된다”면서 “정부 정책이 보육현장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근무조건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지희 보육노조 교선실장 역시 “현재 정부 안은 보육시설 자체적으로 운영은 알아서 하고, 정부는 아동별로 보육료만 지원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이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에서 보육시설 간 경쟁이 초래되면, 결국 보육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지희 실장은 “정부의 아동별 보육료 지원이 당장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의 한 방안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보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보육재정 확충과 국공립 시설 확대 대책 없는 정부안은 공허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보육정책 시장원리에 맡겨선 안 된다

  보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민주노동당 길거리캠페인 [출처: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10일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보육공공성의 문제의식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영유아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연령과 발달에 따라 적절한 교육과 충분한 보살핌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보육정책은 보육료 자율화를 도입,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른 차등 교육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회단체들은 호주에서 육아비용을 자율화한 이후 영리법인이 육아지원시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육아비용이 10년 사이에 400% 이상 인상되었던 사례를 볼 때, 보육료 자율화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 역시 정부의 보육정책이 결국 보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당은 정부가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 강화, 수요자 만족 증진’을 중점과제로 선정하고 이에 따른 아동별 보육료 차등지원 확대, 평가인증제 도입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대해, 그 내용이 “민간 주도의 시장원리를 보육정책에 도입하여 경쟁을 통해 초과하는 보육시설을 퇴출시키고 시장에서 기능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달 27일 발족한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무상보육 실현’을 위한 특별위원회(보육특위)는 정부안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시설별 지원 축소 및 개별 아동 지원 강화로 시설별 아동 유치 경쟁을 통한 보육의 질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안은 국공립시설의 보육교사 인건비 지원 축소와 보육료의 지속적 인상을 초래하며, 아동별 보육료가 지원된다 하더라도 차상위층의 부담을 덜기 어렵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아동 정원에 따른 보육시설의 예산변동 폭이 커지게 되므로 보육 프로그램 왜곡과 보육교사 처우 하락 및 고용불안을 초래하게 되어 오히려 “보육의 질이 하락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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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공공성 , 정부 보육료 지원 , 국공립시설 , 보육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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