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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표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홍보포스터. |
86년 5월, 떠들썩한 교육주간을 보내고 그 달 31일 서울의 공개 4단체는 서울 명동성당 사도회관 2층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하여>라는 자살 학생들의 위령제를 올렸다
당시는 해마다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었다. 왕따는 아직 교육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졸면 죽는다!’라는 급훈이 붙을 정도로 입시 경쟁은 극에 달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어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는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압축되었다.
이런 풍토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바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라는 유행어를 남긴 서울사대부여중 3학년 학생의 자살이었다. 86년 1월 5일 쓴 장문의 유서가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은 물론 우리 교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학생들의 죽음의 행렬은 상반기 내내 계속되었다. <선언>은 그러니까 이런 학생들의 고통을 아파하며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선 교사들의 양심선언이었다. 학생들의 죽음과 교사들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교육감이나 정권은 반교육의 상징 그 자체였다.
위령제는 YWCA사우회가 주관했다. <선언>을 주도한 Y중등교협이 당국의 표적이 되어 있으니 여교사들의 모임인 YWCA사우회가 맡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다. 그날 서울지역 교사 350여 명이 행사장을 꽉 채웠다. 그러나 사우회 회장 성명순(석관중)은 장학사가 남이섬으로 납치했고, 사회를 보기로 한 김영애(수유여중)는 교장이 학교에 억류하였다.
당시 총무를 맡았던 이화연(현 고척고)는 자기 모임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모임은 여성유권자연맹 교사팀으로 잠시 활동하다가 그 단체가 보수화되면서 83년 6월에 여교사의 특성을 고려하여 YWCA로 자리를 옮겨 만들었어요. 주요 회원은 김한조 이상길(이상 제7화) 박희설 성명순 차봉숙(참교육의 함성으로 작사) 등이었고요.” 이들은「하늘의 절반,」교육법 등을 공부하면서 여교사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가고 교직 내에서 여교사의 올바른 위치와 정당한 역할을 정립하고자 노력하다가 서울교협 발족 이후 해산하고 지역교협으로 들어간다.
그날 행사는 비나리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서울지역의 ‘교육민주화 실천대회’였다. 이는 <교육민주화선언>에 실천의 내용이 없다는 지적과, 교사들의 치열한 반성과 실천이 없는 선언은 한낱 공허한 구호로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서 기획되었다. 참석 교사들이 ‘5.10교육민주화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육민주화 달성에 앞장서기 위해’ 채택한 결의문은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 교육관을 찾아 부단히 연찬하며, 자유로운 교수활동과 자율적인 교사단체 활동을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학사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지시 일변도의 교직원회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관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특히 학교 예산의 심의 등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의 인간다운 삶과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타율적인 보충수업과 심야학습을 거부한다.” 그 밖에 학생자치활동 지원, 정당한 교육활동과 교사단체 활동 징계 거부, 해직교사 조속 복직 요구를 담았다.
이 자리에서 5월 15일 해직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민주교육실천협의회는 <민주·민족교육운동선언>을 발표, 교육내용의 반민주·반민족성 배격, 민주·민족 교육 실천, 학생회, 교원단체, 민주적인 학부모 조직 등을 촉구하였다. 김남선(강남여중)은 “10년 경력의 교사로서 후배교사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참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이 날의 감동을 나타냈다.
이 집회는 6월 이후 충청, 호남, 영남 등 각 지역에서 전개된 민주교육실천결의대회의 견인차가 되었다.



80년대 대표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홍보포스터.